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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7315552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의심하는 자들과 회의론자, 구도자들은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의 대상은 왜 ‘인사이더’인가?
제 1장
의심과 의문은 어떻게 다른가?
의심하는 사람이 항상 의문을 품는 것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 항상 의심하지는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2장
처음 의심을 품었을 때가 가장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믿고 싶은 의심자보다 의심하고 싶은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제 3장
마더 테레사와 한 주를 보낼 것인가, C. S. 루이스와 한 주를 보낼 것인가?
제 4장
영적 어둠을 왜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부재를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되 그것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C. S. 루이스의 글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제 5장
십자가의 요한이 쓴 글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영혼의 밤을 왜 축복으로 여겨야 하는가?
제 6장
마더 테레사가 겪었던 영혼의 밤을 통해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가?
제 7장
고난의 시기에 소망이 어떤 믿음의 토대가 되는가?
의심보다는 소망이 우리 삶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소망하는 자를 사랑하시는가?
제 8장
의심을 하더라도 왜 신앙 공동체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
교회 가는 것이 별 볼 일 없는 듯해도 교회에 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 9장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왜 문제가 되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하나님 자체를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도를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가?
제 10장
당신이 믿는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자신과는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고 무조건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11장
왜 학문적 지식만으로 기독교 신앙을 비판할 수 없는가?
지식이 탁월한 학자가 당신의 신앙에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을 따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12장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 불신자보다 못한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높임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상과 관계없이 선을 행하는 사람을 격려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제 13장
하나님은 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14장
겨울 영성은 왜 영적으로 심오한가?
영적 생활에서 여름과 겨울을 모두 거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15장
이 책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왜 쉽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씨름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우리 편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부록 1
진리는 왜 중요한가?
상대주의가 의심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올바른 방식으로 의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부록 2
의심이 왜 자연스러운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의심하는가?
리뷰
책속에서
열정과 의욕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다. 수업에 집중하고 학구열도 넘치지만 이러한 상태는 기껏해야 몇 주밖에 지속되지 못한다. 바로 이 몇 주가 한 학기의 봉우리에 해당된다. 그러나 학기 초의 열정이 식고, 생활도 단조로워지고, 해야 할 공부도 어렵다 보면 곧 흥미를 잃고 시들해진다. 골짜기로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부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나타난다. 굴곡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늘 봉우리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 골짜기의 삶을 성실하게 견뎌 내는 사람이다. 따라서 학업 성취도는 침체기에 빠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보다 침체기에 빠졌을 때 얼마나 잘 견뎌 내느냐에 좌우된다. 학교생활뿐 아니라 영적 생활에도 굴곡이 있다. 그러므로 침체기에 빠졌을 때 당황하지 말고 신실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드렸던 예배는 곧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과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파스칼이 생각했던 존경심의 표시는 극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이 아니라 일어서는 것, 모자를 약간 벗는 것처럼 삶의 모든 영역에 흩어져 있는 사소하고 하찮은 행동이었다. 나는 거기에 ‘교회에 가는 것’을 하나 더한 셈이다. 유럽에서 맞이한 바로 그 주일 아침,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아침을 먹고, 걸어서 교회에 가고,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우리는 그 수고를 감당했다. 우리는 우리의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을 표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다른 어느 곳에서 이러한 경의를 표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아닌 어느 곳에서, 또 예배가 아닌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겠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불신자들보다 우월한 도덕성을 지니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진짜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단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소명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고 성경과 교리를 배우며 함께 신앙고백을 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위치한 이러한 양육 환경으로 새신자들은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미덕과 악덕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