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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58072317
· 쪽수 : 384쪽
책 소개
목차
저자 서문 | 강요하는 역사가 아닌, 생각하고 탐구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역사
그림작가 서문 | “역사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1_ 신화로 역사가 열리다 상고시대
▶고대인은 왜 청동거울을 목에 걸고 다녔을까? ▶단기 원년 BC 2333년이 중국 신화를 바탕으로 산출된 것이라는데, 과연 사실일까? ▶기중기도 포클레인도 없던 시대에 300톤짜리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역사는 두부처럼 ‘자르는’ 사람 마음이라고? ▶본격적인 삼국이 시작되기 전, 한반도 중.남부에 78개의 나라가 있었다는데…? ▶기자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고구려, 백제, 신라보다 낙랑이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까닭은? ▶부여에서는 심한 가뭄이 들면 왕의 목을 잘랐다는데, 정말 그랬을까?
2_ 누가 진짜 강한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첫 번째 왕은 과연 ‘동명성왕’이었을까? ▶애절한 사랑시 「황조가」를 지은 유리왕은 신하들을 생매장한 폭군이었다는데…? ▶태조왕은 93년이나 나라를 다스렸다는데, 과연 사실일까?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를 정치적으로 철저히 이용한 뒤 죽게 만들었다? ▶가야의 선주민이 진시황도 두려움에 떨게 했던 흉노족이라고? ▶고구려 고국천왕의 왕비 우씨는 과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음탕한 여자였는가? ▶고구려사는 왜 한국사인가? ▶백제의 풍납토성에서 고구려 유물이 발견된 까닭은? ▶ 근초고왕은 백제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다는데…? ▶삼국시대 목간은 고대사의 신비한 비밀을 푸는 최고의 열쇠이다? ▶광개토대왕에 대한 역사 기록은 왜 온통 영토 확장에 대한 것뿐일까? ▶고구려 벽화 전시회의 부작용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되었다는데…?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은 과연 조작되었는가? ▶수백 년 뒤 고구려의 패망이 장수왕 탓이라고? ▶개로왕은 과연 바둑으로 나라를 망쳤을까? ▶이차돈은 법흥왕의 왕권 강화를 위한 희생 제물이었다? ▶무령왕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까닭은? ▶걸출한 인재였던 온달을 기득권을 쥔 귀족과 역사가들이 바보로 만들었다는데…? ▶화랑 중에 동성연애자가 많았다는데, 과연 사살일까? ▶희대의 로맨스 주인공 서동이 사실은 원효대사였다고? ▶고구려는 사실 육군 못지않게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나라였다? ▶연개소문은 과연 고구려를 대표하는 영웅인가, 멸망을 초래한 독재자인가?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3_ 무늬는 통일 실상은 분단 남북국시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주장한 발해가 고구려 때문에 잊혀졌다고? ▶원효는 실제로 해골 물을 마셨을까? ▶『화랑세기』 필사본은 진본인가, 가짜인가? ▶일본의 목조사유상과 우리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쌍둥이처럼 닮은 까닭은? ▶경순왕 김부가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의 포석정 습격 사건을 도모했다? ▶일본 승려 엔닌이 당나라에서 신라인인 척한 까닭은?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도 한때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백수였다? ▶경문왕이 데리고 잤다는 뱀은 개혁세력인 ‘6두품’을 상징한다는데? ▶신라의 왕자라고 주장하던 궁예가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내세운 까닭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지렁이의 아들이라고?
4_ 호족이 세운 나라를 천민이 지키다 고려시대
▶왕건의 유언을 기록한 훈요십조는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다? ▶허약하다고 알려진 고려 혜종은 어떻게 맨손으로 자객을 때려잡을 수 있었을까? ▶고려시대 사람들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는데? ▶서희는 어떻게 세 치 혀만으로 거란의 80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고려 문인들 사이에 팬클럽을 몰고 다니던 소동파가 사실은 반고려주의자였다? ▶거란의 2차 침입은 패배한 전쟁이었나? ▶반란을 일으킨 이자겸의 집안이 고려 말까지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김부식이 정지상의 유령에게 살해당했다는 데 사실일까?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후유증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났다는데…? ▶무신정권에 의해 축출된 의종의 정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동국이상국집』의 저자 이규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어용지식인이었다는데…? ▶정권을 틀어쥔 무신들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을까? ▶세계 최강의 몽골군을 천민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꺾었다는데… ? ▶고려의 왕들은 왜 그토록 몽골의 공주와 혼인하지 못해 안달했을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와 퍼뜨렸다는 것은 사살이 아니다? ▶기황후는 과연 악녀였을까? ▶공민왕이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게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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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연표
리뷰
책속에서
무령왕의 생애 자체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삼국사기』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아들이라고 재미없고 간단하게 적고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좀더 자세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에 따르면 무령왕의 아버지는 고구려 첩자 도림에게 속아 국고를 탕진하고 장수왕에게 수도는 물론 목숨도 빼앗긴 개로왕이라고 한다.
백제의 한성이 점령되었을 때 왕비(개로왕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개로왕의 동생 곤지는 형수를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던 중 산통이 왔고 한 섬에서 아이를 낳아 이름을 사마斯摩라고 지었다.
왜 왕비는 일본으로 달아난 것일까? 당시 백제는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살해되는 등 멸망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무령왕은 일본에서 자라게 되었다.
한편 백제에서는 개로왕의 뒤를 이어 문주왕이 즉위해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옮겼지만 나라 안은 불안정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개로왕 이후의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은 모두 암살당하고 말았다. 귀족 간의 치열한 세력 다툼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 머물고 있던 무령왕은 마흔한 살의 나이로 백제에 돌아와 왕이 되었다. 그는 백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력을 회복시켰으며 왕권을 강화해 멸망 위기에 빠져 있던 백제를 살려냈다. (167쪽, '2장 삼국시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