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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위로하는 애벌레](/img_thumb2/9788958208655.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8208655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3-12-10
목차
작가의 말
애벌레 그림을 그리며
1. 천상의 색을 빚다 : 주홍박각시 애벌레
2. 영원한 대지 속으로 들어가다 : 대왕박각시 애벌레
3. 당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애벌레를 위한 헌사 : 매미나방 애벌레
4. 외계인 같은 나의 특별한 친구에게 :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5.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
6. 이토록 넓고 자애로운 나무의 품에서 : 반달누에나방 애벌레
7.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 거세미나방 애벌레
8. 그는 진짜 외계생명체였는지 몰라 : 현무잎벌 애벌레
9. 하늘을 나는 마법의 집, 설계자 : 차주머니나방 애벌레
10. 가만히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다 :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11. 탱자나무에서 만난 애벌레와의 대화 : 큰빗줄가지나방 애벌레
12. 천상의 예술가, 비상하다 :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
책속에서
새로운 애벌레가 집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풍요롭고 든든해진다. 두세 종 정도만 키우기 때문에 애벌레의 방은 복잡하지 않다.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나머지 공간은 일정하게 경계를 만들어서 애벌레가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지간해서는 애벌레를 가두지 않는다. 그래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애벌레를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고 할 뿐이다.
애벌레 방으로 들어온 지 5일째 되는 날, 그 푸른 애벌레는 줄기에 거꾸로 매달린 채 단식을 하였다. 입고 있는 옷이 작아져서 더 크고 넉넉한 치수로 갈아입을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새 옷을 갈아입는 행위가 애벌레들에게는 성인식이다. 은근히 기대되었다. 어떻게 달라질까. 애벌레는 그런 성인식을 통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변신한다.
밤이 깊어가자 바람이 심해졌다. 나는 걱정이 되어 한동안 애벌레를 지켜보았다. (…) 나무에서 살아가는 애벌레는 이럴 때가 가장 두렵다. 이럴 땐 그냥 흔들려야 한다. 그래야 편하다. 오로지 자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저 바람의 일부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애벌레는 온몸이 찢겨질 것처럼 흔들려도 담담했다. 그러면서 바람이 잦아든 뒤에 찾아오는 깊은 고요, 그 평화를 떠올리면서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