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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9130771
· 쪽수 : 51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부
2부
3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 달 전에 군대에 다시 불려와 대위로 진급한 30대 초반 사내들이 열의 없이 대답했다.
강민준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머리가 곱슬곱슬한 데다 피부가 희어서 주위에 있는 다른 군인들보다 다소 앳되어 보였다. 눈동자가 유난히 까매서 영리한 인상이었지만, 입술을 한쪽으로 삐죽 올리거나 어깨를 자주 으쓱하는 버릇 때문에 진중하다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어쨌든 강민준은 그 순간 준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최근 한 달간 백번 넘게 했던 푸념을 속으로 한 번 더 되풀이하면서.
‘이거 다 꿈 아닐까? 군필자라면 누구나 꾼다는 군대 다시 가는 악몽. 여기서 눈을 뜨면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고 뭐 그럴 수는 없을까?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 내가 싸이도 아니고…… 제대할 때 비상소집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평화유지군에 사람이 모자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장교가 더 먼저 소집될 거라는 루머도 알았지만, 설마 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줄이야. 평화유지군이고 나발이고 진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남한에서 1년 더 복무하라고 해도 돌아버릴 텐데 북한 땅에 배치된다니.’
그는 미친 나라에서 태어났다. 미친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언제라도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가끔 그런 경쟁과 전투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어 보였다. 극한상황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한번 그렇게 황폐해진 내면에 어떤 덕성이 다시 깃들기란 매우 어렵다.
어린 리철에게 가치 기준을 제공하고 그를 도덕적으로 재무장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비록 그 가치와 도덕이 군대만의 질서, 군대만의 논리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리철은 규칙과 명령을 따랐고, 복종 속에서 편안해졌다. 그는 무리에 속해 있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짖고, 뛰어다녔다.
“계영묵이, 우리 길게 한번 잘해보자. 같이 자본주의의 더러운 돈 한번 시원하게 벌어보자.”
‘자본주의의 더러운 돈’이라는 말은 일종의 농담이었다. 최태룡처럼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자본주의에 대한 최태룡의 태도는 ‘숭배’에 가까웠다. 최태룡은 계영묵에게 자본주의의 장점에 대해 길게 설명한 적도 있었다.
“세상에 좋은 게 다 한정돼 있잖아. 어차피 그 좋은 걸 모든 사람이 다 누리진 못해. 그런데 한번 가져보라고, 시도는 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게 자본주의야. 세상이 사람들한테 다 덤벼봐, 그러는 거야. 얼마나 좋아. 이기면 되잖아. 그 기회를 두 번, 세 번도 줘. 진다고 바로 뒈지는 것도 아니잖아. 세상에 이런 체제가 어디 있나? 사회가 끝없이 싸울 기회를 주겠다는데 난 싸우는 게 싫소,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싸우지 맙시다, 이게 말이 돼? 끝없이 싸울 기회라는 건 끝없이 이길 기회라는 말인데 말이야, 왜 안 싸워?”
계영묵도 최태룡의 생각에 동의했다. 자본주의는 솔직해서 좋았다. 지상낙원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가능할 것 같아서 좋다고도 생각했다. 이전까지 계영묵을 둘러싼 세계는 오래갈 수 없는, 근본적으로 작동이 불가능한, 부품이 몇 개 빠진 기계 같은 것이었다. 신천복수대도 그랬고 조선인민군도 그랬고 김씨 왕조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