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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9130818
· 쪽수 : 280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양과 강철의 숲
리뷰
책속에서
건반은 총 여든여덟 개가 있고 각각의 건반에 한 줄부터 세 줄까지 현이 연결되어 있다. 강철 현이 똑바로 뻗고 그 현을 때리는 해머가 마치 목련 봉오리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등이 꼿꼿하게 펴졌다. 조화를 이룬 숲은 아름답다.
완만한 산이 보였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에서 보던 풍경이다. 평소 의식하지 않아도 그곳에 있으니까 딱히 시선을 주지 않았던 산. 그래도 폭풍우가 물러간 아침이면 묘하게 선명히 보일 때가 있었다. 산이라고 생각했던 대상 안에 사실은 수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흙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흐르고 풀이 자라고 동물이 있고 바람이 분다.
뿌연 경치 한 지점에 초점이 정확히 맞았다. 산에서 자란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뒤덮은 녹색 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풍경까지 보였다.
지금도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였는데, 이타도리 씨가 조율하고 정돈하자 단숨에 윤택해졌다. 선명하게 뻗는다. 다랑, 다랑, 단발적이었던 소리가 달리고 엉켜 음색이 된다. 피아노가 이런 소리를 내던가. 잎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산으로. 이제 막 음색이 되고 음악이 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좋아한다거나 기분이 좋다거나 하는, 내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소한 기준은 언젠가 변하고 만다. 하지만 그때,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이타도리 씨가 피아노를 조율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저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더 알고 싶지만 아마 어렵겠지, 이렇게 속 편히 따지기나 할 수 있는 대상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바랄 수도 없었다. 잘 모르겠는 것에 이유를 가져다 붙여 자신을 납득시키는 행위도 우습게 느껴졌다.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중얼거렸다. 포기할 이유가 없다.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확실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