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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9136612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첫 번째 이야기 - 삶의 끝에 서서
작은 행동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
우리 삶에 정해진 법칙이란 없다는 것
인사조차 나눌 틈이 없는 작별도 있다는 것
똑똑한 사람 행세는 괴로운 낙인이라는 것
갈대의 부드러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
믿음은 순도 100퍼센트라는 것
감추고만 싶은 진심도 있다는 것
미지근한 사랑이 오랫동안 따뜻하다는 것
적응이란, 고집을 버리는 과정이라는 것
진짜 성공은 하모니라는 것
사랑은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
시간이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
추억은 지혜의 보따리라는 것
두 번째 이야기 - 삶의 끝에서 다시 만난 것들
누구나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
불안과 두려움 없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
위해주는 마음이 차이를 만든다는 것
때로는 고개를 쳐들고 맞서야만 한다는 것
남들보다 즐거워할 자격이 있다는 것
착한 사람이 가장 강하다는 것
성취의 절반은 책의 덕분이었다는 것
움켜쥔 손을 펴야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나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혼자 아픈 사람은 없다는 것
세상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어쨌거나 다 지나간다는 것
세 번째 이야기 -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
기적은 꽤나 가까이에 있다는 것
고마움을 되새기면 외롭지 않다는 것
나는 한 편의 드라마로 시작되었다는 것
이별은 또한 홀로서기라는 것
줄 것은 항상 넘친다는 것
최후까지 행사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
슬픔도 힘이 된다는 것
절망조차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
스스로를 조금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다른 이의 마음에 심은 씨앗은 크게 자란다는 것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피를 흘리는 순간에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
나보다 가슴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
에필로그 - 어떤 영혼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는 것
리뷰
책속에서
시한부를 선고받은 뒤, 삶의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하루하루가 마치 인생의 처음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처럼 하나하나,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삶의 끝에 와서야.
지금에야 깨닫게 된 것들을, 암에 걸리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만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랬더라면 내 삶을 더 행복한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뭔가를 잡기 위해서는 아주 먼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십중팔구 그런 믿음이란 것이 ‘턱도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혹은 모든 게 끝난 뒤에야 그보다 훨씬 값진 일을 지나쳐버렸음을 후회하곤 한다.
이제부터 삶의 끝에 와서 내가 알게 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생각이다. 어떤 이야기는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고통 덕분에 내가 더 많이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니, 세상일이란 게 원래 그런 모양이다.
서른 살에 세계 100대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그 반짝거림을 채 즐기기도 전에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나의 삶은 그로 인해 새로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건재하고, 내게는 오늘을 살아갈 이유들이 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다른 이유가 생길 것이다. 그런 이유를 하나씩 깨달아가며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더 강한 나로, 거침없이.
니체를 자주 인용하지는 않으나, 이 말만큼은 밑줄을 그어가며 읊고 싶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
_프롤로그 중에서
병원에서 암으로 판명되어 수많은 검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CT(컴퓨터 단층촬영, computed tomography)와 MRI(자기공명영상, magnetic resonance imaging) 같은 첨단 장비로 온몸의 구석구석 검사를 마친 뒤 이동용 응급침대에 실려 병실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남편의 얼굴이 천장을 가리며 나타났다.
남편과 간호사들이 시트를 한 자락씩 들어 나를 침대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첨단 장비 위에서 한참 동안 오들오들 떨며 누워 있다가, 푹신한 침대로 돌아와 이불까지 덮으니까 겨우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침대의 어딘가가 이상했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 입원실 온도가 낮지는 않았지만, 침대 속에는 그 이상의 안온함이 있었다. 흡사 누군가가 누워 있다가 방금 빠져나온 듯한 감촉. 바로 짚이는 게 있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이봐, 당신. 내 침대에 누워 있었지?”
남편이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집에서 하던 장난을 병원에 와서까지 하다니.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끼어들었다.
“조금 아까 침대에 눕는 걸 보고 제가 경고를 했죠. ‘보호자가 환자 침대에 눕는 건 규정 위반’이라고요.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집사람이 유난히 추위를 타기 때문에 내 체온으로 미리 덥혀놓아야 한다’고요.”
그 순간, 나는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혼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이 말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렇게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내 자리에 누워 있던 남편. 그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거의 매일, 그런 따뜻한 마음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장난이라고 단정해버리고는 짜증만 냈다니.
어쩌면 내 마음의 문이 좁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그럴듯한 선물이나 받아야 남편이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를 앙다물었는데도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맥도널드가 어디선가 두툼해 보이는 커다란 면양말을 가지고 들어왔다. 응급실 당직 의사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내 발에 신겨주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의사가 남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대단한 애처가시군요. 부럽습니다.”
간호사들도 내 양말을 보면서 쿡쿡 웃었다. 그들이 웃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 순간 고통이 공격해오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진통제가 드디어 효력을 발휘했는지 끔찍했던 고통이 차츰 사라졌고 머리를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 발치를 보자, 왼쪽 양말과 오른 쪽 양말에 각각 두 개씩 글자가 프린트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결하면 이런 글이었다.
“불리불기不離不棄
헤어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두 짝이 다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양말에, 이런 기막힌 글을 프린트해놓은 사람은 누굴까? 나는 양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0년을 살면서 양말에 적힌 글씨를 그렇게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나 아래보다는 위를 보는 것에 익숙하도록 교육을 받아왔으니까.
시련을 극복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도모했던 일들이 무너져 내리거나 뜻하지 않은 운명과 마주쳤을 때, 자신을 일으켜 세워줄 단 한마디를 떠올려보라. 그 한마디가 삶을 역전시킬 수도 있다.’
양말에 적힌 네 글자를 보는 그 순간,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유서가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양말에 적힌 그 한마디를 나의 신조로 삼기로 결심했다.
양말이라니, 마치 인생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지도, 삶을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서른과도 헤어질 수 없고, 나를 결코 포기할 수도 없다.
‘절대 포기하지 말 것.’
나는 스스로에게 단 하나의 절대 명령을 내렸다. 고통이 무지막지하게 몰아쳐 왔을 때 비명이 나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유서 따위는 두 번 다시 쓰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그것도 중환자의 몸으로 서른 살의 연말을 보내게 될 줄은 상상해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확 바뀌어버린 운명도 내 몫인 것은 틀림없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