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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9092333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4-04-29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아분열이 유발하는 두려움과 무지, 그로부터 올라오는 수치심, 수의처럼 우리를 뒤덮어 말려 죽이는 그 미스터리는 항상, 언제나 문학의 관건이었다. 그리고 또한 좋은 책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 글에 암묵적으로 내재하는 그 힘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 그 힘은 산문의 신경 어딘가에 붙들려 담겨 있다. 그것은 어김없이(흡사 원초적 무의식에서 나오듯) 우리를 끈질기게 사로잡는 어떤 상상이었다. 균열이 아물고 부분들이 합체되고 연결에의 갈증이 기가 막히게 해갈되어 잘 작동하게 된 인간 존재의 상상이었다. 과거에도 또 지금도, 내 생각은 같다. 위대한 문학은 통합된 실존이라는 업적이 아니라, 그 위업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다.
안다, 나도 안다, 그런 일은 없었다는 걸—그날의 기분으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차라리 내 기억과 얽히고설킨 이 심리적 혼돈에 몸을 던져 완전히 침잠해버리면 다시 빠져나왔을 때 자유로운 여자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나 혼돈에 가까이 다가가기 무섭게, 나도 뒤라스처럼 홱 방향을 돌려 회피해버리곤 했다. 뒤라스와 달리, 나는 앞뒤 재지 않고 엎어져 욕망의 열병을 앓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게 뒤라스가 생을 바쳐 집착한 감정의 자유낙하를 확증하기보다 차라리 은폐하려는 계산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결국 나 역시 뒤라스와 똑같은 집착에 구속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건 그가 성애의 망각에 평생을 바치고도 자유를
얻지 못했듯이 어른이 된 나의 앎도 나르시시스트적 상처에서 나를 해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긴츠부르그는 성장기에 겪은 가족의 감정적 폭력으로 시작해 끝도 없이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부모에게 자신과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화가 나 있었는지, 또 온 가족이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감정 기복에 얽매여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기억한다. 자기방어는 감정적 거리를 만들어내게 했고, 이는 훗날 무거운 대가로 돌아온다. 청소년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다 곧 주위 모든 사람까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자 “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만사에 호전적으로 시비를 걸게 된다. “이따금 우리는 오후 내내 각자의 방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막연한 현기증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이 정말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가 상상 속에서 꾸며낸 존재는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 어느 날 우리가 불시에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어서, 텅 빈 공허만 응시하게 되는, 그런 일도 가능할까?” 어느새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영적 거리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며 도착적 쾌감을 즐겨도 된다는 면허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