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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9139316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6-01-26
책 소개
목차
1 정인 007
2 마리 041
3 수영 225
작가의 말 27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조금도 부딪히지 않고 빗겨나가는 풍경을, 가망 없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 특유의 조급함을 낱낱이 목격했다. 그러므로 매혹이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의 냉담함에서부터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강의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때, 그가 말했다. 희망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만이 순수한 고통을 주고, 고통만이 예술의 심장을 찌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에 일부러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날인하고 증언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도 말할 때, 성주의 눈은 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헤어질지 모를 오랜 연인들을 생각했다. 코와 코 사이에 털실을 끼워 넣으며 혼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대해 묵상했다. 사람들은 짝사랑이 한 사람을 혼자서 좋아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 없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짝사랑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렇다면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요되는 혼란이 이 적요로운 사랑 앞에선 어느덧 무의미해진다.
열정이 사라지고 난 후, 다시 찾아오는 사랑의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놓여 있을까. 그 끝이 결국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일이 되는 걸까. 그것을 완성해낸 사람만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 이외의 것들은 그저 너무나 하찮은 변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이별을 정당화할 순 없다.
사랑하지 않는단 말은 가슴 아프지만 죄가 될 수 없다. 다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벌이는 희망고문과 거짓말이 죄가 될 뿐이다. 최악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사라지거나 떠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