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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59139774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15-11-16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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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아버지를 유기하려고 한다. (…) 아버지 자신이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인식하지 못하므로(그가 한 번이라도 똑바로 자기 자신을 인식한 적이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나는 나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종류의 도덕적인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 그는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사람도 그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해줄 수 없다. 누구도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처럼 누구도 그를 불행하게 해줄 수 없다. 그는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더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없다. 그는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더 슬플 수도 기쁠 수도 없다. 그는 하나의 ‘역겨운’ 사물처럼 그냥 있다. 행복이나 불행, 기쁨이나 슬픔과 상관없이 그냥 있다. (…) 나에게 그가 역겨운 것은, 그가 사물이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사물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역겨운 것이 아니라(사물들이 어떻게 역겨울 수 있겠는가?) 사물처럼 존재하는 그의 존재가 역겨운 것이다. 따라서 그를 유기하는 나의 행위도 그의 존재만큼 역겨운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미친놈이지만, 어딘지 매력적으로 미쳤다는 걸 나는 인정한다. 그는 미쳤기 때문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없는 통찰력을 종종 발휘해낸다. 예컨대 미쳤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쥐새끼들이 보인다. 미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쥐새끼들. 그로서는 쥐새끼들이 보이기 때문에 쥐새끼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쓸어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관대하다. 그런데 쥐새끼들을 쓸어버린다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이지? 그는 대체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이지?
나는 내 육체의 내부가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내 안에는 쓸 만한 것이라고는 없다. 나는 아프다. 나는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독을 마시며 산다. 그런데 그 독은 내 안에서 토해져 나온 것이다. 독은 대기 가운데서 내 속으로 들어오고, 내 안으로 들어와 부글부글 끓으며 더 많은 독을 양식해낸다. 내가 숨을 내쉬는 순간 그것들은 나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다시 대기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내부는 독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이고, 이 세상은 그 독이 유통되는 거대한 시장이다. 시장인 이 세상에서 내가 소비자로서 매일 들이마시는 독은 실상은 나의 내부에서 생산되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