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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59522958
· 쪽수 : 396쪽
책 소개
책속에서
버려진 건물, 자동차, 6주 동안 물 한 방울 맞지 못해 누렇게 시든 관목 위로 빠르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리 한쪽 벽에 그래피티가 남아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달고 검을 든 무시무한 천사의 그림이었다. 벽에 쫙쫙 갈라진 금이 천사의 얼굴 위로 얼기설기 뻗어 있어서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그림 아래에 유명한 시를 모방한 구절이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여 있었다. '수호자들로부터 우리를 수호할 자 누구인가.'
천사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고 눈을 깜박여 보았다.
나는 한 번도 천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천사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 모두, TV에서 반복해서 틀어주는 화면에서 황금 날개를 가진 신의 사자 가브리엘이 한때 예루살렘이었던 잔해더미에서 총을 맞고 추락하는 장면을 본 적은 있었다. 그중에는 천사들이 베이징 상공에서 군용 헬리콥터를 붙들어서 군중을 향해 프로펠러를 냅다 던지는 모습도 있었다. 하늘에 가득한 연기와 천사들의 날개가 나부끼는 파리의 화염 밖으로 사람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을 담은 긴박한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뉴스라 해도 모두 사실만을 전할 리 없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눈앞의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실물이었다. 날개를 단 남자라니. 세상을 파멸시킨 천사라니. 인류의 문명사회를 박살내고, 수백만, 아니,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학살한 초자연적 존재라니.
그토록 공포스러운 존재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두 달 전에 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면 숨이 멎을 만큼 멋졌을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는 실로 장관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는 온 도시가 새카맣게 불탄 잿더미였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몽유병 환자처럼 창가로 걸어갔다.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와 두 손바닥을 가만히 대보았다. 유리창이 아버지의 묘비라도 되는 것처럼.
까맣게 변한 언덕을 따라 띄엄띄엄 빌딩들이 쓰러져가고 있었다. 마치 불에 덴 턱뼈 속에 박힌 깨진 치아 같았다. 하이트와 애쉬버리, 미션, 노스비치, 사우스 오브 마켓, 골든게이트 파크 같은 곳들도 모두 사라졌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이 났다.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유리조각처럼.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뻗은 손가락처럼 여기저기에서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아직 타다 만 것처럼 보이는 지역도 있었다. 전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동네였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운 주거 단지들로 유명한 도시였으니까. 그중에 과연 몇 개나 되는 단지들이 유성우며 화염, 레이더, 질병의 맹공에서 살아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