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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59523979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5-07-17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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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거대한 고리형 구조물은 별빛을 받아 아른거리며 반짝였다. 마치 속에서부터 광채가 나는 보석 같았다. 회색 금속으로 된 표면에는 기하학무늬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코타나, 저게 뭔가?”
키예스 함장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가 앉은 지휘석 가까이에 있는 홀로탱크 위로 높이 30센티미터 가량의 형체가 흐릿하게 나타났다. 함선에 탑재된 고성능 인공지능인 코타나는 장거리 탐지기를 가동하다 말고 얼굴을 찡그렸다. 감지기 표시창과 코타나의 몸을 따라 수치가 물결치듯 올라왔다.
“저 고리형 구조물은 지름이 1만 킬로미터, 두께는 22.3킬로미터입니다. 분광분석 결과만으로 확정 짓기는 어려우나, 지금까지 알려진 코버넌트 물질과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키예스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코버넌트가 이쪽보다 먼저 슬립스페이스에서 빠져나와 준비에 들어갔음을 생각하면,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이런 엄청난 물체를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처음에는 저 물체가 거대한 코버넌트 기지인 줄 알고 맥이 탁 풀렸었다. 척 봐도 사람의 기술로 만들 법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저 구조물이 코버넌트의 기술력을 초월하는 존재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놓였다.
치프는 처음 보는, 그리고 차마 못 볼 것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놈은 끔찍하게 변이된 인간이었다. 뭔가에 몸이 변형되어 심히 뒤틀리기는 했지만, 그 괴물이 누구인지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병 마누엘 멘도사, 툭하면 존슨 하사가 호통을 치던 분대원이자 키예스 함장과 함께 악몽 속으로 사라졌던 그 해병이었다.
뭔가가 그에게 한 짓 때문에 온몸이 비틀렸으나 얼굴만은 사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스터 치프는 산탄총의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풀고 대화를 시도했다.
“멘도사, 어서 밖으로 나가자. 놈들한테 무슨 짓을 당했더라도 의무병들이 치료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되살아난 멘도사는 어마어마한 완력으로 마스터 치프를 후려쳤다. 강력한 충격에 전투복 경고음이 터져 나오면서 치프는 단 한 방에 땅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멘도사, 아니, 한때 멘도사였던 괴물이 채찍처럼 생긴 촉수를 휘둘러댔다. 치프는 주춤거리며 물러나 방아쇠를 당겨 8게이지 산탄으로 멘도사였던 괴생명체를 조각냈다.
그러자 놀랍고도 역겨운 일이 벌어졌다. 산송장이 조각나자 멘도사의 흉강을 거처로 쓰던 작고 둥근 생명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놈은 멘도사의 몸 여기저기에 촉수를 뻗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치프는 산탄을 두 방 더 날려 그놈까지 작살냈다.
“전 343 길티 스파크에요. 전 모니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시설의 유지와 관리를 맡은 자가수리형 인공지능이죠. 그런데 계승자님도 그쯤은 다 아시지 않나요?”
알전구처럼 생긴 길티 스파크가 뽐내며 말했다. 마스터 치프는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지만, 좌우지간 알아듣는 척하는 편이 이로울 듯했다.
“아, 그게, 복습하고 넘어가려고…… 네가 관리를 맡은 지가 얼마나 됐지?”
길티 스파크는 신이 난 목소리로 답했다.
“정확히 10만 1217년입니다. 그동안 따분하기 그지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아니랍니다! 히히히.”
녀석이 뜬금없이 킬킬거리자 치프는 흠칫 놀랐다.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용하면 ‘기벽’이라 일컫는 버릇이 생겨난다. 헌데 343 길티 스파크는 10만 년 동안이나 이곳에 있었다.
살짝 정신이 나갔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