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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와 양혜왕

맹자와 양혜왕

남회근 (지은이), 설순남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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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와 양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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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맹자와 양혜왕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맹자
· ISBN : 9788960514669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15-03-16

책 소개

총 7편으로 된 『맹자』 중 제1편 「양혜왕」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극히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고자 했던 맹자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목차

옮긴이 말 5
들어가는 말 9

강연에 앞서 21
춘추 시대에 의로운 전쟁은 없었다 25|사마천의 편찬 기법 속 맹자 29|추연과 맹자의 강렬한 대비 33|처세의 철학 문제 38|소진과 맹자의 시대 43|진시황 패업의 청사진 45|소진, 초라한 몰골로 돌아오다 49|천고에 변치 않는 인정세태 52|소진의 성공 비결 57|왕도와 패도가 서로 넘나들다 58|『음부경』의 계시 60|개인의 뜻을 펼치는 데 목적이 있었다 63|여섯 나라 재상의 인장을 찼던 빛나는 시기 66|소진의 철학적 관점과 서생으로서의 본색 72|역사에서 소진의 공적 79|소진에 대한 평가와 사마천의 평어 81|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다 87|양 혜왕의 선조 88|상앙과 양 혜왕 90

양혜왕 상 95
양 혜왕과 맹 노인장 98|양 혜왕과 맹자에 대한 사마천의 관점 101|맹자의 의리지변 105|어찌 이로움을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109|도덕이 쇠미할 때에야 인의가 나온다 112|맹자의 사상은 뒤섞여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114|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다 120|「아방궁부」의 기록과 진시황 125|『삼보황도』에 기록된 아방궁의 모습 128|미루와 수 양제 131|간악과 송 휘종 135|이화원과 청나라 말 자희 태후 142|봉각 용루와 이후주 143|청명상하도의 이면 148|농사철을 어기지 않다 153|난세에 유랑하는 백성을 그린 문학 155|도강언을 만든 이빙 부자 164|비유와 은유를 통해 양혜왕을 설득하다 170|양 혜왕이 괴로움을 호소하다 176|인정의 도 178|인품과 재능의 평가 188|역시 관상법이라 195|천하가 하나에 정해지다 199|맹자와 소진의 대조 203|『전국책』 원문, 소진이 위나라에 합종을 유세하다 203|소진의 권모술수 209|맹자가 말끝을 돌리다 212|하나에 정해지다 216|근원이 같은 유가와 도가의 천하통일 218|인애의 확장 221|차마 소를 죽이지 못했던 제 선왕의 인술 224|인애의 심리 행위 229|소를 놓고 마음을 이야기하다 231|정치 지도자의 비정상적 심리 237|맹자의 행위 심리학 242|권능의 문제 247|세상에는 사람처럼 음험한 것이 없다 251|꿈같은 인생 259|제나라의 부강을 묘사하다 262|연목구어 270|경제와 정치 276|행하면서 소유하지 않는 농민 282|백성들이 어찌 즐거이 나무 하고 풀 베랴 285|감히 천하를 위해 나서지 않았던 후세의 유생 287

양혜왕 하 297
예악을 중시하는 다스림의 도 301|옛날과 오늘날의 음악관 309|원림과 다스리는 이치 315|대국과 소국의 외교 책략 321|큰 용맹이 천하를 안정시킨다 325|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복제를 고친 조 무령왕 328|힘을 믿고 용맹을 좋아했던 진 무왕 346|항우와 유방 349|묵자가 용맹을 이야기하다 350|설궁에서 정치를 논하다 352|명당이란 무엇인가 361|과인은 재물을 좋아한다 368|「화식열전」의 일부분 375|인류 사회의 변화 순서와 인심의 추세 384|경제, 문화, 도덕의 연쇄 관계 388|과인은 여색을 좋아한다 393|추와 미 396|여색을 좋아한 이야기를 담은 시와 사 399|왕소군 사건에 관한 평어 401|당대의 오랑캐 화친 정책의 감상 403|양귀비를 변호하는 말 407|서시에 대한 역사의 시비 408|인사 행정에 관하여 410|손가감의 삼습일폐소 상주문 416|세신, 거족 가문의 출현 427|파벌 당쟁의 화 429|민주는 어렵고 법치 또한 쉽지 않다 434|성인을 의심한 재미있는 이야기 436|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뛰어나지 못한 것을 사용하다 445|유생의 길,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달라붙다 450|과거 시험을 통해 세상에 팔려 나간 지식인 454|맹자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었다 456|맹자의 책략, 바름으로 바로잡다 460|소진, 구변으로 열 개의 성을 되찾다 464|제나라와 연나라의 전쟁 467|소대, 제나라 왕을 평론하다 472|훌륭한 부대,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전쟁 474|어진 장군 조빈 477|인의의 실질과 권모술수 482|맹자가 위와 제에 있던 때의 비공식적 기록 486|제 선왕의 풍격 487|조정에는 문무 재사가 많습니다 488|이해관계에 따른 칭찬의 말 492|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이 교만하게 군다 494|해학의 대가 순우곤 499|전국 시대 양사의 기풍을 연 제 선왕 503|혼탁한 세상을 홀로 걸어간 맹자 506|역사의 변화가 바로 정치의 인과응보다 508|군주의 도와 신하의 절개 514|역사에서의 기층 정책 517|관리가 되어도 나쁜 짓은 하지 말라 519|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어려움 525|사람은 자립을 귀하게 여긴다 531|맹자가 입신처세의 원칙을 논하다 535

저자소개

남회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8년 중국 절강성 온주(溫州)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서당식 교육을 받아 17세까지 사서오경 제자백가를 공부하였다. 절강성성립국술원에 입학하여 2년간 무술을 배웠고 문학ㆍ서예ㆍ의약ㆍ역학ㆍ천문학 등도 두루 익혔다. 1937년 국술원을 졸업하였다. 그후 중앙군관학교 교관직을 맡았으며, 금릉(金陵)대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연구하였다. 25세 때인 1942년에 스승인 원환선(袁煥仙) 선생이 사천성 성도(成都)에 창립한 유마정사(維摩精舍)에 합류하여 의발제자가 되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3년간 사천성 아미산 중봉에 있는 대평사(大坪寺)에서 폐관 수행하며 대장경을 완독하였다. 28세 때인 1945년 티베트 밀교의 여러 종파의 고승들을 참방하고 밀교 상사로 인가 받았다. 그 후 운남(雲南)대학과 사천(四川)대학에서 한동안 강의하였다. 30세 때인 1947년 고향에 돌아가 『사고전서(四庫全書)』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을 읽었다. 1949년 봄에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文化)대학 보인(輔仁)대학 등 여러 대학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며 수행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또 노고문화사업공사(老古文化事業公司)라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불교연구단체인 시방(十方)서원을 개설하였다. 2004년 대륙으로 이주한 선생은 중국의 강소성 오강(吳江)에 태호대학당(太湖大學堂)을 창건하여 교육문화 연구 등의 활동을 해오다 세연이 다하여 2012년 9월 29일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다비 후 온전한 두개골과 혀 사리, 그리고 1백여 과의 사리자를 거두었다. 『논어별재』 등 저술이 60여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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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순남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밀교대원만선정 강의』 『약사경 강의』 『맹자와 진심』 『노자타설』 『대학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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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인의는 확실히 좋은 덕행입니다. 하지만 이 덕행을 오래 사용하면 본래 모습을 잃게 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 도구로 변해 버립니다. 이것을 통해서도 도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노자와 장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일찍이 도덕이 퇴락하면 그제야 예의의 학설이 생겨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늘 했습니다.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도 그치지 않는다[聖人不死, 大盜不止]." 당시 인의예악의 도덕관념에 대한 노자의 비평은 아주 혹독했습니다. 장자 역시 일찍이 "인의라는 것은 선왕의 임시 거처이니 하룻밤 잘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仁義者, 先王之遽廬, 可以一宿, 不可以久處]"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춘추 전국 시대에 각국 제후들의 정벌 구호가 대개 인의를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결코 인의를 시행하지 않고 단지 인의라는 미명하에 권력을 다투고 이익을 빼앗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인의를 이야기하고 의리지변(義利之辨)을 강조한 이후 후세에는 그 영향을 받아 의리지변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의리지변은 점차 자사무사(自私無私)의 구분과 동일시되어 '의(義)'와 무사(無私)'가 같은 의미로, 그리고 '이(利)'와 '자사(自私)' 즉 이기(利己)가 같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漢)·당(唐) 이후 유가의 의리지변은 대부분 사(私)와 무사(無私)의 구분과 뒤섞여 버린 나머지 그 둘을 분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의리지변을 이야기할 때면 논리적으로 서로 얽혀서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들까지도 여전히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유가 사상은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라는 착각을 낳기까지 했습니다.


대우(大禹)의 치수 이후로 농업으로 나라를 세운 중원에서는 아직 소금과 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론이 확립되지 않았고 전국 시대에 크게 행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맹자의 구체적인 의견이 당시의 실제 상황에는 그런대로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경제 구조에 대한 그의 건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후세에 독서로 정치를 한 지식인들은 맹자의 이러한 관념을 고지식하게 붙잡은 나머지, 농업을 중시하고 상공업은 경시하는 잘못되고 치우친 관념을 형성함으로써 산업이 낙후되고 경제가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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