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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종교에세이 > 불교
· ISBN : 9788960652989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이야기 하나
곰탕 이야기 1
곰탕 이야기 2
마른장마 - 소나기 한때
삼총사
할매의 파마 - 안경과 꿀물
도라지 반찬
해우소 예찬 - 해우소
복(福)
하늘이
손톱이 아린다
진순이와 갑순이
절에 다리 - 할매와 상사화
고물 수집상 - 법당문을 닫으며
검정 비닐봉지 - 우리 할매 조으르십니다
이야기 둘
동지
겨울 운동화
밀행보살님
할매, 비 옵니다
입수구리
숭악한 중
박갑이 할머니 된장 맛
할매의 눈물 - 내캉 살아요
할매의 정
고추장 담는 날
대나무 치기
시끄러버요!
고단한 역사 - 동글동글 너였구나
할매, 스트레스 주기
이야기 셋
빈집 - 붓다의 뗏목
촌두부
새해
메밀묵
장날
풍등을 날리며
방생법회
태중영가 재를 지내던 날
할매의 결심
제주도 여행
할매 걱정은 한 가마
미운 놈 떡 하나 더
초파일 행사
딱새의 비극 - 고양이를 쫓아내다
할매, 다녀올게요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는 할매랑 둘이 살지만 여러 명의 여자와 한집에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실 때는 어머니 같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앉은 채 주무시거나 몸이 아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주무실 때는 늙으신 할머니와 사는 것 같고, 이런저런 잔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 되면 기세등등한 마누라와 사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 조잘조잘 거리실 때는 딸을 키우는 것 같은 재미도 듭니다. 따뜻한 화목난로 옆에 앉아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며 김치를 찢어 내 입에 넣어줄 때는 영락없는 애인 사이가 됩니다. 할매도 내가 등 긁어줄 때는 영감 같고, 힘든 일을 척척 해줄 때는 든든한 아들 같고, 정겨운 애인 같고, 지독스레 말 안 듣는 말썽쟁이 손주 같을까요?
-본문 ‘할매의 파마’ 중에서
인터넷 신문에서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할매와 함께 거실에 앉아 밥을 먹자니 할매가 한 말씀 하십니다.
“시님, 옛말에 눈 봉사 며느리는 쫓아내도 벙어리 며느리는 안 쫓아낸다고 합디다.”
“왜요?”
“눈 봉사는 밥만 축내고 일은 안 하니까 쫓아내는 게고, 벙어리는 불평도 없이 일을 잘하니까
안 쫓아내는 게지요.”
“그럼, 어떤 며느리가 벙어리처럼 말도 안 하고 봉사처럼 봐야 할 걸 못 보면 어쩝니까?”
“누가 그걸 처음부터 며느리로 앉혔대?”
“옳거니!”
-본문 ‘입수구리’ 중에서
내게는 오늘 장작 쌓은 일이 어쩌면 이별을 쌓는 연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어쩌면 이별을 쌓는 일인 것만 같습니다. 장작이 앞으로 쏟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뒷벽 공간을 두고 장작을 쌓듯이, 할매와의 이별의 예감은 내 가슴에 허전한 공간을 만듭니다. 이런 생각들이 찬바람을 몰고 와 가슴 저 밑바닥을 갈퀴처럼 훑고 지나갑니다.
작년, 재작년, 그 이전에도 매년 나무를 하고 도끼질을 해서 처마 밑에 장작을 쌓아두었지만 오늘처럼 가지런하게 쌓지는 않았습니다. 비뚤어도 내가 갖다 때기 쉽도록 막 쌓아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장작을 차곡차곡 가지런하게 쌓아둡니다. 내가 아닌 할매나 그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갖다 때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할매가 갖다 때기에도 좋도록 잘게 쪼갰으니 나무 걱정은 무의식중에라도 덜고 싶었나 봅니다.
-본문 ‘빈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