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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60901605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13-04-3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레이디 L은 자연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화가들이 자연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버린 것이다. 터너는 빛을 훔쳤고, 부댕은 대기와 하늘을, 모네는 흙과 물을 앗아갔다. 이탈리아, 파리, 그리스는 벽마다 내걸리더니 이제 진부해지고 말았다.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으면 사진으로 찍혔고, 온 땅덩어리가 너무 많은 손길이 옷을 벗긴 여자들의 손때 묻은 모습을 점점 닮아갔다. 어쩌면 그녀가 너무 오래 산 건지도 몰랐다.
짙은 눈, 섬세하면서 명확한 윤곽을 그리는 그녀의 코(`그녀의 코를 보고 저마다 “귀족 코”라고들 했다) 그녀의 미소(그 유명한 레이디 L의 미소)는 아직도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모두가 돌아보게 만든다는 걸 그녀도 알지만 부질없었다. 예술에서도 그렇듯이 인생에서도 스타일이란 더는 내놓을 게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의 은신처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름다움이 화가에게는 여전히 영감을 줄 수 있지만 연인에게는 결코 영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았다. 여든 살이라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레이디 L은 생물의 성적 행동에서 선과 악의 준거는 결코 보지 못했다. 그녀에겐 도덕이 그 수위에 자리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녀가 보아온, 벽에 그려진 성기 낙서가 지금까지도 소위 영예로운 전쟁터보다 무한히 덜 외설스러워 보였다. 그녀에게 포르노그래피란 인간이 제 괄약근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피로 물들이는 정치적 극단주의였다. 손님이 매춘부에게 강요하는 요구들은 경찰 체제의 가학성 취미에 견주어보자면 순결함이요 순진함이었다. 감각의 음탕함은 사고의 음탕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요, 성적 변태와 포르노 총서는 강박증을 끝까지 몰고 가는 사상의 편집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인류는 엉덩이보다는 머리로 불명예에 도달하기가 더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