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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60905894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9-09-2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_의문의 그림 한 점
서울. 비 내리는 통진의 농가에서 쓰다
히라도 1. 정성공을 만나다
히라도 2. 바다의 길
나가사키 1. 일본 여인 다가와
나가사키 2. 박제가와 허생과 정성공
도모노우라. 친구라는 그 말
오사카 1. <모자도>와 최북
오사카 2.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
취안저우 1. 다가와가 죽다
취안저우 2. <모자도>와 이슬람 사원
샤먼 1. 정성공 초상화
샤먼 2. 나빙과 <행락도>
광저우. 바다로 열린 항구도시
사오싱. 경우가 다르다
양저우 1. 나빙의 집
양저우 2. <모자도>, 양저우로 오다
양저우 3. 여리고 뜨거운 사람들
베이징 1. 유리창
베이징 2. 박제가, 나빙을 만나다
베이징 3. 박제가, 나빙과 헤어지다
베이징 4. 박제가, 다시 베이징에 오다
베이징 5. <모자도> 안으로
베이징 6. 박제가, 마지막으로 베이징에 오다
베이징 7. 새로운 의문
산하이관. 만리장성의 끝
종성. 박제가, 유배를 가다
부여. 박제가의 꿈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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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림을 그린 이는 박제가, 제목은 <연평초령의모도延平?齡依母圖>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책 『북학의北學議』를 쓴 조선 시대 실학자 박제가가 이 그림을 그렸다. 제목은 ‘어린 연평이 엄마에게 의지해 살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연평延平은 명나라 말기에 이름을 떨친 장군이자 남중국 바다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장악했던 해상왕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좀 특별한 인물을 가리키는 여러 호칭 중 하나다. 엄마와 어린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니 이제부터 <모자도>라 부르겠다. 20여 년이 더 지났어도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하던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흑백의 흐릿한 도판이었지만 박제가가 그렸다는 <모자도>를 보는 순간 나는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가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림 위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또렷이 남아 있었지만 한국 회화사에서는 보기 드문 낯선 스타일이었다. 아니, 드문 정도가 아니라 내 기억으로는 전무후무한 경우였다. 그래서 <모자도>는 서양화의 영향이 조선 화단에 처음 도입된 사례 중 하나로 소개되었다. 당시로 보면 혁신적인 주장을 펼쳤던 박제가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시대를 앞서간 그림, 그럴듯했다.
청계천 위에 복원된 광통교는 조선 시대 종로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대로의 중심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큰 다리이기도 했다. 남산 아래 집을 나온 박제가는 광통교를 건너 탑골공원 주위에 몰려 살던 지인들을 찾아가곤 했다. 이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 박지원과 이덕무와 유득공 등이었다. 당시 가장 번화한 곳이었던 다리 주변에 그림을 팔던 가게도 있었다고 했다. 박제가의 친구들도 이 다리로 자주 몰려와 술을 마시고 달빛에 젖었다. 어디서 무얼 하든 그들은 좀 유별나 보였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 속에 사라진 개를 부르던 술에 취한 모범생 이덕무와 거위를 희롱하던 유득공이 있었다. 두 사람은 순서대로 박제가와 함께 베이징에 가기도 한다. 박제가가 자주 어울렸던 사람들, 흔히 실학파로 알려진 그들을 나는 ‘백탑파’라 부르기를 선호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내 눈엔 가장 그들다워 보였다. 백탑이란 현재 탑골 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지 석탑을 말한다. 광통교를 지나 탑골공원에 들어서면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변화의 물결에 누구보다 먼저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박제가도 그 한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저 탑을 가운데 두고 함께 먹고 쓰고 마시고 뒹굴었다. 그들이 남긴 글도 글이려니와 그들의 행위 속에는 어떤 진솔한 떨림이 있었다. 그게 나를 매료시켰다. 서로 간의 나이를 잊은 사귐을 망년지교忘年之交라 했다. 나이는 잊자, 그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에 살아온 시간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파도 상관없었다. 열아홉, 이제 막 결혼을 한 박제가는 말을 타고 이곳에 와 벗들을 찾았고 늦은 밤 달빛 가득한 탑 주위를 맴돌았다. 이백 수십 년 전, 드문드문 별빛이 흩어진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꿈을 꾸고 있던 것일까.
이곳에서 박제가는 창덕궁으로 출근했다. 책과 관련된 일을 맡아보던 검서관이 그의 직책이었다. 국왕 정조의 부름이었다. 집을 나와 낙선재를 지나 숙장문과 진선문을 빠져나오면 잘 정비된 계곡이 흘렀고 물 위에 돌다리 금천교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 오른편으로 길을 잡으면 곧바로 규장각이 나타났고 그 옆이 박제가가 근무하던 검서청이었다. 검서청 내실 한쪽이 계곡 위에 세워져 방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기 전인 1778년, 이덕무와 함께 그토록 바라던 베이징을 다녀온 박제가는 집을 나와 광흥나루로 갔다. 그곳에서 밤을 보낸 뒤 새벽 배로 강물을 따라 내려가 억새가 무성한 운양나루에 내렸다. 시골집이 있던 통진으로 가는 길이었다. 스물아홉의 그는 베이징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을 싸 들고 가서 방문을 닫아걸고 썼다. “지친 여행을 마치고 농가에 앉아 글 쓰는 시름만 안고 있었다.” 때론 울적했고 때론 열기가 치솟았다. 낙산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면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하류로 향하던 그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박제가가 바라보던 통진의 바다는 더 이상 예전의 바다가 아니었다. 주인이 바뀐 중원의 수도에서 바라본 현실은 그의 삶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었다. 대륙을 차지한 청나라는 승승장구했고 주변의 약소국들은 모두 그 앞에서 쩔쩔맸다. 그들의 천하였다. 세상의 지식은 베이징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먼바다 끝 어디에선가 수많은 것들이 바닷길을 오가고 있다는 것을 박제가는 알았다. 새로운 물결이었고 아득했던 미지의 세상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과 조선이 그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것을 그는 참기 어려워했다. (…) 이 구절 사이사이에 그의 모습이 녹아 스몄다. 기필코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박제가와 지금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저 먼바다로 떠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고 있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런 그의 마음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지지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