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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3465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3-11-15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외뿔소자리
말의 가시 10
뿌리의 길 12
사과의 이면 15
외뿔소자리 18
스텔스 20
그나마 고마웠어요 22
젊은 이생망의 슬픔 24
아랑곳 26
활 28
새들은 둥지로 돌아가건만 30
기억의 배관(配管) 32
제2부 플라스틱 난민
1+1, 굶주린 말은 멀리 36
찰기 38
비닐론 40
사랑과 굴레 42
두 번째 비둘기는 45
플라스틱 난민 48
길들임에 대하여 50
아스피린류 52
어떤 판결 54
인류세 실록 56
광야에서 길을 58
제비꽃 연가(緣家) 60
멀찌감치 62
미네르바의 부엉이 64
창고형 둥지 66
관성에 덧대어 68
제3부 옥상의 방랑
떠도는 왜곡 72
백학 75
벽 78
옥상의 방랑 80
바람의 둥지 82
대망 84
그럼에도 불구하고 86
터미널 88
배롱나무꽃 필 무렵 90
신 난중일기 92
리플리 증후군 95
제4부 말의 무게
환승입니다 98
뽁뽁이를 터뜨리는 여인 100
사람이라는 듯 102
상징에 대하여 105
환절기 108
절개지 110
곁의 동행 112
김 씨 생각 114
보인다 116
귀하디귀해 118
분별없음으로 120
말의 무게 122
▨ 이심훈의 시세계 | 오정국 124
저자소개
책속에서
말의 가시
두릅 오가피 꾸지뽕 엄나무
수냉이일수록 가시가 돋는다.
짐승도 사람도 못내 탐내는
귀한 약성을 가시로 말한다.
굵기나 키빼기 자랐지 싶으면
나무는 가시 먼저 거둬들인다.
햇살 노닐다가 바람 지나다가
행여 옷자락 걸려 나불거릴라
군더더기 말들을 제때 삼간다.
자랄수록 요설에 독설 묻혀와
수식과 치장이 현란해지는 말
늘어난 가짓수 가시로 돋친다.
웃자란 말씨가 배어든 달변
뱉고 나면 번지는 말의 버짐
저만치 거리 둔 혼잣말에도
곰팡이 돋아나 혓바늘 선다.
덜 자란 말은 가시투성이다.
잘 여문 말에는 가시가 없다.
찰기
사람 주변에 오래 머문 흙은
대개 찰기 빠져 푸슬푸슬하다.
작년에 살균제 흠뻑 뿌린 자리
올들어 살충제 듬뿍 덧뿌려대니
살아 꿈틀대던 것 죄 밥줄 놓아
흙을 붙잡던 아귀힘이 다 풀렸다.
미생물은 미생물의 땅에서 고물대고
버러지는 버러지의 길을 더듬어 가야지.
미생물이 사라지고 버러지도 사라지고
제비 본지도 어언 석삼년은 족히 넘어
말 못 하는 흙이라고 생각이 없겠나.
더불어 보듬어 주던 끈기도 푸석해지고
찰지게 엉기지 못하고 바람에 날려
대를 이어온 땅 등지는 한낱 먼지로
쉬이 허물어지는 흙의 비애
사람 사는 일이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원상복구 하라 보상하라 플래카드 걸고
삭발하고 어깨띠 겹겹 두르고 시위하며
버러지만도 못하다고 몽니 부릴 것이다.
고추 모에 진딧물 덕지덕지 들러붙어도
무당벌레 날아들 때까지 잠시 지두르고
드센 바랭이 하루 빛 다르게 번지더라도
예닐곱 번 매고 퇴비장 쌓다 보면 처서
모기 입 삐뚤어지면 풀도 안 나는 자리
진딧물 들러붙으면 무당벌레 따라오고
어느결에 개구리 두꺼비 율무기까지도
지들끼리 알아서 한 살림 차지게 차려
새겨보면 하나같이 사람 사는 일인데.
말의 무게
말을 많이 한 날은
소태 씹은 듯 입이 쓰겁다.
입술보다 먼저 마음이 나서서
온갖 너스레 떨었음을 몸이 안다.
겁 많은 개가 먼저 짖어댄다.
입가에 게거품 괴도록 앙살 부리며
사납게 짖어댄 개일수록 꼬리 사려
마루 밑 구석 찾아 제 발을 핥는다.
돼지두루치기 먹다가 깜짝 놀랐다.
부드럽게 양념으로 버무린 살코기
이가 시큰하도록 씹히는 오도독뼈
생각 없이 내뱉은 무수한 말들에도
혓바늘만 하게 돋은 어감의 차이로
세월 마디에 뼛조각들 섞여 있겠다.
씨앗과 말은 퍼지는 습성이 있다.
푸새들 씨앗은 익어 제풀에 퍼지고
사람들 말씨는 설익은 제멋으로 퍼져
선인장 가시로 어딘가 박혀 들쑤신다.
고작 100g 남짓 손전화를
내려놓는 주머니가 가볍다.
온종일 주고받은 말의 무게를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