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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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언어학자로 189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38년 빈에서 향년 4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1922년 빈대학교의 슬라브 문헌학 교수가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트루베츠코이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나치가 빈을 점령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1938년 건강상 허약하다는 이유로 나치 집단에 의해 교수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이는 사실 그가 인종차별론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국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극심한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이미 1920년부터 로만 야콥손과 서신을 통하여 학문적 교류를 하게 되었으며, 이 두 언어학자는 프라하언어학파에 함께 가입했다. 그들의 공통적 관심사와 공동 이론이 1928년부터 국제언어학회에서 표출되었으나, 두 사람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어느 부분이 어느 학자의 공적인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프라하 언어학파의 작업은 종종 집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개인의 공로를 드러내기보다, 음운론의 역사에서 이 학파가 1929년 프라하, 1932년 암스테르담, 1933년 로마, 1936년 코펜하겐에서 개최한 여러 학회에서 음운론 관련 문제에 대해 가히 혁신적인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트루베츠코이는 이 공동 작업에서 기초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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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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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그해 6월에 프랑스로 유학하여 브장송대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어 교수법 분야에서 학사학위, 언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8년에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동안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인문대학 음성학연구소에서 조교로 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1979년 귀국 후,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조교수로 부임하면서 대학에서의 강의를 시작했으며, 1980년 9월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음운론》, 《음운학 원론》, 《일반이성문법》 등이 있으며, 〈실험 음성학적인 면에서 본 현대 한국어 모음 체계〉, 〈루소와 언어의 기원〉, 〈트루베츠코이의 《음운학 원론》 소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프랑스어 교육〉, 〈e?러닝 시대의 프랑스어 교육〉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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