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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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언어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또한 걸출한 사상가였고, 민족지학자였으며, 역사가였고, 철학자였다. 그는 1890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모스크바 대학 총장을 지낸 철학자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였다. 이러한 가족환경은 트루베츠코이의 지적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민족지학, 언어학, 역사학, 철학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트루베츠코이는 1908년에 모스크바 대학의 역사.언어학과에 입학하였고, 1912년에 비교언어학 분과를 졸업하고, 라이프치히로 가서 청년문법학파의 이론을 공부하는 등 언어학자로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는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언어학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발표하였고, 또한 모스크바 언어학 서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신화학, 민족지학, 문화사 등을 연구함으로써 유라시아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대귀족 가문이었던 트루베츠코이는 카프카즈 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1920년에 마침내 러시아를 떠나 불가리아에 정착하게 되었고, 소피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바로 1920년에 그의 유명한 저서 ≪유럽과 인류≫가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트루베츠코이의 연구는 크게 언어학과 문화 사상사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언어학 연구에서 그는 1939년에 언어학 분야에서 3대 고전의 하나로 꼽히는 ≪음운론의 원리≫를 출간하였다. 문화 사상사의 영역에서 트루베츠코이는 민족문제와 민족문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점점 유라시아 연구로 경사되었으나, 정치적 성향이 짙은 극단적인 유라시아주의를 배격하고 학문적 연구에 몰두하였다.
트루베츠코이는 말년에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주하여, 빈 대학에서 슬라브학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를 계속하였으나,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후에 나치의 비밀경찰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의 필사본들 가운데 상당수가 압수당했고, 결국은 소실되었다. 구밀료프(Л. Н. Гумиле?в)에 따르면 트루베츠코이가 나치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공후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루베츠코이의 집에서는 여러 차례 난폭한 심문이 진행되었고, 이 때문에 그는 심근경색을 일으켜 결국 1938년 7월25일 향년 48세, 학자로서는 한창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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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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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졸업. 프랑스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브장송 프랑쉬콩테 대학교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마쳤다. 1978년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흐 대학교에서 음성학 전공으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 1979년 귀국 후 전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상명대학교 불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장, 상명대학교 사범대학장 역임. 2013년 현재 서울대학교 외국어교육연구소장.
주요 역서로 『음운론』, 『일반이성문법』, 『음운론의 원리』가 있으며, 「실험음성학적인 면에서 본 한국어 모음체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프랑스어 교육」, 「한국 학습자를 위한 프랑스어 발음교육 방안」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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