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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화교사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이정희 (지은이)
동아시아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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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화교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62622492
· 쪽수 : 760쪽
· 출판일 : 2018-10-24

책 소개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화교사학의 공백을 메운 책이다. 우리 사회를 함께 일구어온 이웃이면서도 시야에서 놓치기 쉬운 한반도화교의 존재를 방대한 문헌 자료와 체계적인 구술 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그려내는 데 성공하였다.

목차

추천의 글
서장_ 중국인의 조선 이주와 ‘중국 충격(Chinese Impact)’

제I부화교 직물상
제1장_ 화교 직물상의 위상과 형성
제2장_ 화교 직물수입상의 통상망
제3장_ 화교 직물수입상의 조선 내 유통망
제4장_ 조선총독부의 화교 직물상에 대한 대응
제5장_ 1931년 화교배척사건이 화교 직물상에 미친 영향
제6장_ 중일전쟁 시기 화교 직물상의 몰락
제I부 보론_ 화교 경영 행잔의 해방 후 무역활동
제I부를 마치며

제II부 삼도업(三刀業)
제7장_ 화교 중화요리점의 형성과 발전1880~1920년대를 중심으로
제8장_ 화교 중화요리점의 위기와 응전 1927~1945년의 시기를 중심으로
제9장_ 화교 이발소와 양복점
제II부를 마치며

제III부 화교 제조업
제10장_ 화교 주물업
제11장_ 화교 양말 제조업
제III부를 마치며

제IV부 화농(華農)
제12장_ 화농 채소재배의 형성과 발전
제13장_ 화농 채소재배의 위축
제14장_ 중일전쟁 시기 화농의 채소재배 및 판매의 변화
제IV부를 마치며

제V부 화공(華工)
제15장_ 광량만염전 축조공사의 화공 문제
제16장_ 화교의 성당건축시공 활동(1880~1930년대) 서울과 대구를 중심으로
제V부를 마치며

종장_ 근대사 속의 조선화교

부록_ 일제강점기 조선화교 회사 신용조사 목록
참고문헌
책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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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정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 교토 대학에서 조선화교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5년간 한반도 및 베트남화교를 비롯한 화교 문제에 천착하여 연구하고 있다. 현재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한 저서는 『朝鮮華僑と近代東アジア』, 『한반도 화교사』, 『화교가 없는 나라』, 『베트남화교와 한반도화교 마주보기』(공저)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조선 거주 외국인 가운데 화교는 일관되게 인구의 9할 이상을 차지, 일제강점기 조선사회에서 외국인이라면 화교였다. (…) 화교 인구와 통치자인 조선 거주 일본인 인구를 비교해보자. 화교 인구는 1910년 일본인 인구의 6.4%에 지나지 않았지만, 1930년에는 11.9%, 1942년에는 9.2%로 약 10% 수준에 도달했다. 이처럼 화교 인구의 절대적인 수는 일본인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화교와 일본인 인구의 구성을 본다면 쌍방의 인구 차는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 서장 「중국인의 조선 이주와 ‘중국 충격(Chinese Impact)’」 중에서


화교 직물수입상점의 점원은 개항기에 경영규모가 큰 상점도 10여 명에 지나지 않던 것이 1920년대는 30~40명으로 3~4배 증가한 것에서 경영규모가 이전보다 확대되어 상해에 지점을 설치할 정도로 발전한 것이 첫 번째 요인이다. 또 하나는 1924년 6월 인천-상해 간 항로의 개설이다. 이 항로가 설치되기 이전 상해에서 수입하는 직물은 지부 및 대련에서 환적되어 인천에 수송되었는데 화물환적의 불편함과 환적비가 발생했지만 이 항로의 개설로 그와 같은 불편함과 환적비가 사라진 것이다. 인천-상해 항로에 헤이안마루(平安丸, 1,580톤)가 운항한 이후는 “대부분이 상해에서 직접 수입되기에 이르러 주로 인천에 양륙(揚陸)되었다”라고 한다.
- 제2장 「화교 직물수입상의 통상망」 중에서


또 하나 크게 주목되는 점은 중일전쟁을 경계로 사라진 직물상점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1920년대 가장 규모가 컸던 직물상점의 하나인 영래성, 덕순복은 1931년 화교배척사건 이후 사라졌고, 중일전쟁 이전까지 건재했던 협흥유와 금성동은 1942년에는 찾아볼 수 없다.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 1942년 당시 영업하던 직물상점 가운데 쌍성흥, 천합잔, 동성영, 영성흥, 유풍덕의 5개소가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직물상점은 중국산 견직물과 면직물뿐만 아니라 화장품, 각종 잡화 등도 함께 판매했다. 반면 서울의 경우 해방 이전의 화교 직물상점 가운데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제6장 「중일전쟁 시기 화교 직물상의 몰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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