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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정신이 균형을 잃을 때 (정신건강 가이드북)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 ISBN : 9788962633320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5-12-31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 ISBN : 9788962633320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5-12-31
책 소개
우울증과 번아웃은 어디까지가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질병일까. 이 책은 정신 질환과 치료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숨기지 않고 이해하고 돌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신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는 유머 있는 성찰!
정신과 정신건강을 위한 안내서
우울증은 국민병으로 불린 지 오래고, 번아웃은 유행하는 진단명이 되었으며, 공황장애란 말도 일상어가 되었다. 정신 질환이라는 인식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가 하면 정신 질환을 앓는 이의 범행 기사가 드물지 않게 보도되면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공고해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정신 질환과 관련해 논의가 활발해지고, 또 더욱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43퍼센트가 평생 한번은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정신 질환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대부분이 우울증이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몇 년 후면 우울 장애가 심혈관 질환을 앞질러 가장 흔한 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번아웃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데, 질병 분류 진단 시스템에서 번아웃을 독자적인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부하 상황이 되면 번아웃을 말하고, 이 장애의 특정한 진행을 질병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번아웃을 세련된 삶의 증거로 들이밀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번아웃을 겪지 않았다면, 곧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우울증과 번아웃, 이 두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문제와 질병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질병은 어디서 시작될까? 한 번쯤 슬픈 마음이 들거나 일이 버겁다고 느끼는 것은 정상이 아닐까? 곧바로 정신과로 달려갈 게 아니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거나 휴가를 떠나는 게 옳지 않을까? 문제에서 질병으로 넘어가는 경계는 어디일까?
이 책은 정신건강과 여러 정신 질환, 즉 《국제 질병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에서 ‘정신 질환’을 다루는 F 섹션의 질병에 대해 설명하며,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 등 치료법은 물론 정신과 의사와 신경과 의사, 심리학자, 심리치료사의 차이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정신의 균형이란 멈춤이 아닌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서 가능하다면서 근육을 단련하듯 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편 정신의학의 뻣뻣한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심각하고 절망적인 순간을 많이 경험했지만, 그 못지않게 즐거운 일도 많이 겪었다면서 유머야말로 정신의학이라는 말이 던져주는 충격과 온갖 상상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정신 질환의 경험 세계와 건강한 정신의 경험 세계 간 차이를 줄이고 정신의학의 무서운 이미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쓰려 노력했음을 밝히며, 이 책이 환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전한다.
예전에 비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타인에게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말을 섣불리 하기 어렵다. 이 책은 현대인이 궁금해할 만한 정신 및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해 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더 이상 숨을 필요도 숨길 필요도 없으며,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치료함으로써 평안한 일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북돋는다.
문제일까, 질병일까
“질병일까, 그냥 몸이 좀 안 좋은 것일까?” 지금 누군가가 겪는 상태를 단순한 불편감으로 볼지 질병으로 볼지, 진단은 정신과 의사가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당 환자 자신의 판단과 경험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우울증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인 우울한 기분과 관련해서는 ‘정상’ 상태부터 ‘중증’ 상태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슬픈 일이 일어나서 슬프면 당연히 그건 질병도,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슬프다면 어떨까? 비가 내려 우수에 젖을 수 있고, 해가 짧아지는 겨울에 잠시 계절성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이를 아픈 거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유 없는 슬픔이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심하면 언젠가는 ‘병적인 상태’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경계는 어디일까? 어디서부터 병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경계는 누가 정할까? 극심한 중증 상태라면 경계를 넘었다고 인지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떤 상태가 경계와 가까울 때는 진단을 내리기 힘들다. 사실 경계 자체도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경계 근처에서는 보통 당사자가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지 여부를 환자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면 의사는 그 사람의 증상이 학계에서 인정하는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만 검토한다.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정상이란 무엇일까? 정상(Normal)이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 이는 규범(Norm)에서 출발한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어의 올바른 사용은 우리 뇌리에 담긴 규범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질병에서도 그런 규범이 큰 역할을 한다. 만약 체온이 37도라면 정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 체온이 39도로 오르면 더는 정상이 아닌 열이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럴 때도 경계에 가까운 부정확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체온이 37.6도라면 어떤가? 열이 나는 것인가, 아닌가? 이때 의사는 보통 체온이 좀 오르긴 했어도 아직 열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확진을 내리기 전에 잠시 두고 보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정신 질환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하다. 인간의 경험과 행동은 체온보다 더 측정 및 판단하기가 힘들다.
감정도 이와 매우 비슷하다. 더욱이 감정은 정상 범위가 매우 넓다. 삶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입가에는 늘 미소가 맴돌고 혹독한 시련이 닥쳐도 잘 헤쳐나간다. 보통 우리는 그걸 정상이라 생각하고, 성격이 좋다고도 한다. 스펙트럼 반대편에는 불평꾼이 있다. 세상만사가 마음에 안 들고 미래는 늘 암울하며, 물잔에는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정신의학적 진단을 내릴 때 개인의 규범을 적용하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환자가 자신은 원래 명랑한 사람인데 2주 전부터 공허감이 밀려오고 감정을 제대로 못 느끼며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토로한다면, 환자 자신이 이미 그 상태를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의사의 머릿속에 우울증과 관련해 경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의사는 진단을 내릴 때 자신이 달라졌다는 환자의 설명, 즉 개인적 규범을 적용한다. 물론 개인적 규범이 늘 유익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가족을 때리는 건 나쁜 짓이 아니고 그냥 술을 먹고서 그랬다고 말한다면, 이때는 개인적 규범이 아니라 통계적 규범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그런 행동은 환자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비정상이다.
정신 질환은 누구 탓이 아니며, 정확한 진단도 가능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환자나 그 가족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병의 원인일까? 나를 나무라야 하나? 내 인생을 바꾸어야 하나? 이런 질문은 정말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의학에서 병의 동인을 찾을 때, 단 한 가지 원인을 떠올린다. 질병을 일으키고 증상을 불러오는 어떤 것이 있다고 여긴다. 한 가지 원인밖에 없고 그것을 안다면, 훨씬 더 간단하게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예방 접종이 도움을 주며, 접종만 하면 다 괜찮다. 물론 예외는 있다. 효과 없는 예방 접종, 그리고 접종의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드문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이며, 더욱이 한 가지 원인이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하나의 작용 요인을 뜻한다.
그럼 정신 질환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특정 정신 질환의 취약성이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취약성 스트레스 대처 모델부터 유전적 소인, 스트레스 요인과 보호 요인 등 여러 이론을 들이민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 역시 어느 정도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나의 균형을 위해, 또 외부 영향으로 인한 작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온갖 조처에도 정신 상태가 지속해서 균형을 잃고 결국 병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 질환에는 어떤 병이 있으며 어떻게 진단할까? 정신 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기나 한 걸까?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은 정신과를 바라보는 이런 사회적 편견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정신의학과는 모두 복잡하고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고, 목표 지향적인 치료 계획도 불가능하며, 사실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조차 없다고 말이다. 편견일 뿐, 대부분의 오해가 그렇듯 이런 그릇된 이미지 역시 정신의학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리학적 진단, 개인적 상황 분석(기억), 유사한 증상의 다른 질병 가능성을 검토해 내리는 진단(감별 진단), 치료 권고 등을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한번 정신병은 영원한 정신병?
정신과나 정신 질환과 관련해 환자 자신도, 가족도 주기적으로 묻고는 한다. “어떻게 될까요?” “증상이 완화되거나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몸이 아플 때도 의사에게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정신 질환일 때는 질문에 걱정이 한가득 실린다.
정신과에서는 예후를 물을 때 여전히 다른 선입견, 즉 다른 기대를 품는다. 정신과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낡은 선입견의 찌꺼기는 여전하다. 그 이미지는 흔히 시설이라 일컫던 정신병원에 만성 질환으로 장기 입원한 환자가 많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로 조현병 환자들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아직 좋은 치료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거나 한번 정신병에 걸리면 영원히 낫지 않는다는 인식이 박혔다.
대부분의 환자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만 정신병원에 머문다. 그리고 정신과 질환은 충분히 나을 수 있다! 정신과 치료의 성공률은 높다. 환자 다수가 한 번 입원하고 나면 재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정신 질환 중에도 단계별로 혹은 에피소드별로 반복해서 재발하는 몇 가지 질병이 있다. 재발성 우울증, 양극성 정동 장애, 조현병이 대표적이다. 또 다 나은 후에 재발할 수 있는 질병도 있다. 가령 중독 질환이 그러하다. 하지만 신체 질병 역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류머티즘, 당뇨병, 다발성 경화증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게다가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 대부분은 입원이 필요하지 않다. 외래 진료만 받아도 보통은 잘 낫는다. 설령 입원한다고 해도 대체로 1회에 그친다. 그 후에는 아예 재발하지 않거나 재발해도 외래 진료만으로 충분하다.
쉼 없는 움직임에서 비롯하는 균형
높은 곳에서 줄을 타는 광대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줄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몸을 이리저리 리듬 있게 움직이면서 계속되는 불안정 상태를 해소한다. 규칙적인 움직임을 통해 안정을 찾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쉼 없는 움직임, 그리고 균형을 향한 여러 힘의 꾸준한 노력. 이 두 가지 원칙은 서로 협력하며 삶의 기본 원칙으로 작동한다. 둘 다 자연에서 통하는 기본 원칙이다. 유기적 형체로서 인간은 이 원칙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런 깨달음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자연적인 신체 과정을 넘어 인간의 인생 전체에도 해당한다. 모든 것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새롭게 만들어지기에, 우리의 영혼은 항상 내면의 균형을 추구하며, 그 균형을 잡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균형과 움직임, 둘 다가 있어야 충만한 삶, 그야말로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너무 많이 흔들려도, 너무 적게 흔들려도 좋지 않다. 인간에게 정지는 추구해야 할 상태가 아니며,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잠재된 그 안정과 강인함이 추구할 가치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불행도, 큰 불행도 만날 수 있다. 도전을 받지 않으면 영혼은 약해지고 만다. 근육과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않으면 줄어든다. 영혼도 근육처럼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 심리치료사 같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목표는 정지가 아닌 삶의 근본적인 흔들림을 되찾아 불행을 이겨내는 것이다.
정신 질환을 앓으면 이런 형태의 역동적 균형을 잃게 된다. 질병에서 건강으로 나아가는 길에 목표로 삼아야 할 것도 그러한 균형이다. 흔들림의 폭은 사람마다 다르다. 갖추지 못한 능력이 그 폭을 줄인다. 만성 질병, 정신 질환 역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폭이 좁다고 해도 항상 핵심은 역동적 균형에 담긴 생명력의 회복이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생명력이다.
정신과 정신건강을 위한 안내서
우울증은 국민병으로 불린 지 오래고, 번아웃은 유행하는 진단명이 되었으며, 공황장애란 말도 일상어가 되었다. 정신 질환이라는 인식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가 하면 정신 질환을 앓는 이의 범행 기사가 드물지 않게 보도되면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공고해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정신 질환과 관련해 논의가 활발해지고, 또 더욱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43퍼센트가 평생 한번은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정신 질환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대부분이 우울증이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몇 년 후면 우울 장애가 심혈관 질환을 앞질러 가장 흔한 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번아웃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데, 질병 분류 진단 시스템에서 번아웃을 독자적인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부하 상황이 되면 번아웃을 말하고, 이 장애의 특정한 진행을 질병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번아웃을 세련된 삶의 증거로 들이밀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번아웃을 겪지 않았다면, 곧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우울증과 번아웃, 이 두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문제와 질병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질병은 어디서 시작될까? 한 번쯤 슬픈 마음이 들거나 일이 버겁다고 느끼는 것은 정상이 아닐까? 곧바로 정신과로 달려갈 게 아니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거나 휴가를 떠나는 게 옳지 않을까? 문제에서 질병으로 넘어가는 경계는 어디일까?
이 책은 정신건강과 여러 정신 질환, 즉 《국제 질병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에서 ‘정신 질환’을 다루는 F 섹션의 질병에 대해 설명하며,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 등 치료법은 물론 정신과 의사와 신경과 의사, 심리학자, 심리치료사의 차이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정신의 균형이란 멈춤이 아닌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서 가능하다면서 근육을 단련하듯 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편 정신의학의 뻣뻣한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심각하고 절망적인 순간을 많이 경험했지만, 그 못지않게 즐거운 일도 많이 겪었다면서 유머야말로 정신의학이라는 말이 던져주는 충격과 온갖 상상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정신 질환의 경험 세계와 건강한 정신의 경험 세계 간 차이를 줄이고 정신의학의 무서운 이미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쓰려 노력했음을 밝히며, 이 책이 환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전한다.
예전에 비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타인에게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말을 섣불리 하기 어렵다. 이 책은 현대인이 궁금해할 만한 정신 및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해 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더 이상 숨을 필요도 숨길 필요도 없으며,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치료함으로써 평안한 일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북돋는다.
문제일까, 질병일까
“질병일까, 그냥 몸이 좀 안 좋은 것일까?” 지금 누군가가 겪는 상태를 단순한 불편감으로 볼지 질병으로 볼지, 진단은 정신과 의사가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당 환자 자신의 판단과 경험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우울증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인 우울한 기분과 관련해서는 ‘정상’ 상태부터 ‘중증’ 상태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슬픈 일이 일어나서 슬프면 당연히 그건 질병도,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슬프다면 어떨까? 비가 내려 우수에 젖을 수 있고, 해가 짧아지는 겨울에 잠시 계절성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이를 아픈 거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유 없는 슬픔이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심하면 언젠가는 ‘병적인 상태’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경계는 어디일까? 어디서부터 병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경계는 누가 정할까? 극심한 중증 상태라면 경계를 넘었다고 인지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떤 상태가 경계와 가까울 때는 진단을 내리기 힘들다. 사실 경계 자체도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경계 근처에서는 보통 당사자가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지 여부를 환자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면 의사는 그 사람의 증상이 학계에서 인정하는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만 검토한다.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정상이란 무엇일까? 정상(Normal)이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 이는 규범(Norm)에서 출발한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어의 올바른 사용은 우리 뇌리에 담긴 규범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질병에서도 그런 규범이 큰 역할을 한다. 만약 체온이 37도라면 정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 체온이 39도로 오르면 더는 정상이 아닌 열이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럴 때도 경계에 가까운 부정확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체온이 37.6도라면 어떤가? 열이 나는 것인가, 아닌가? 이때 의사는 보통 체온이 좀 오르긴 했어도 아직 열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확진을 내리기 전에 잠시 두고 보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정신 질환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하다. 인간의 경험과 행동은 체온보다 더 측정 및 판단하기가 힘들다.
감정도 이와 매우 비슷하다. 더욱이 감정은 정상 범위가 매우 넓다. 삶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입가에는 늘 미소가 맴돌고 혹독한 시련이 닥쳐도 잘 헤쳐나간다. 보통 우리는 그걸 정상이라 생각하고, 성격이 좋다고도 한다. 스펙트럼 반대편에는 불평꾼이 있다. 세상만사가 마음에 안 들고 미래는 늘 암울하며, 물잔에는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정신의학적 진단을 내릴 때 개인의 규범을 적용하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환자가 자신은 원래 명랑한 사람인데 2주 전부터 공허감이 밀려오고 감정을 제대로 못 느끼며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토로한다면, 환자 자신이 이미 그 상태를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의사의 머릿속에 우울증과 관련해 경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의사는 진단을 내릴 때 자신이 달라졌다는 환자의 설명, 즉 개인적 규범을 적용한다. 물론 개인적 규범이 늘 유익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가족을 때리는 건 나쁜 짓이 아니고 그냥 술을 먹고서 그랬다고 말한다면, 이때는 개인적 규범이 아니라 통계적 규범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그런 행동은 환자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비정상이다.
정신 질환은 누구 탓이 아니며, 정확한 진단도 가능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환자나 그 가족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병의 원인일까? 나를 나무라야 하나? 내 인생을 바꾸어야 하나? 이런 질문은 정말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의학에서 병의 동인을 찾을 때, 단 한 가지 원인을 떠올린다. 질병을 일으키고 증상을 불러오는 어떤 것이 있다고 여긴다. 한 가지 원인밖에 없고 그것을 안다면, 훨씬 더 간단하게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예방 접종이 도움을 주며, 접종만 하면 다 괜찮다. 물론 예외는 있다. 효과 없는 예방 접종, 그리고 접종의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드문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이며, 더욱이 한 가지 원인이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하나의 작용 요인을 뜻한다.
그럼 정신 질환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특정 정신 질환의 취약성이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취약성 스트레스 대처 모델부터 유전적 소인, 스트레스 요인과 보호 요인 등 여러 이론을 들이민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 역시 어느 정도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나의 균형을 위해, 또 외부 영향으로 인한 작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온갖 조처에도 정신 상태가 지속해서 균형을 잃고 결국 병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 질환에는 어떤 병이 있으며 어떻게 진단할까? 정신 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기나 한 걸까?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은 정신과를 바라보는 이런 사회적 편견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정신의학과는 모두 복잡하고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고, 목표 지향적인 치료 계획도 불가능하며, 사실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조차 없다고 말이다. 편견일 뿐, 대부분의 오해가 그렇듯 이런 그릇된 이미지 역시 정신의학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리학적 진단, 개인적 상황 분석(기억), 유사한 증상의 다른 질병 가능성을 검토해 내리는 진단(감별 진단), 치료 권고 등을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한번 정신병은 영원한 정신병?
정신과나 정신 질환과 관련해 환자 자신도, 가족도 주기적으로 묻고는 한다. “어떻게 될까요?” “증상이 완화되거나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몸이 아플 때도 의사에게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정신 질환일 때는 질문에 걱정이 한가득 실린다.
정신과에서는 예후를 물을 때 여전히 다른 선입견, 즉 다른 기대를 품는다. 정신과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낡은 선입견의 찌꺼기는 여전하다. 그 이미지는 흔히 시설이라 일컫던 정신병원에 만성 질환으로 장기 입원한 환자가 많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로 조현병 환자들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아직 좋은 치료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거나 한번 정신병에 걸리면 영원히 낫지 않는다는 인식이 박혔다.
대부분의 환자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만 정신병원에 머문다. 그리고 정신과 질환은 충분히 나을 수 있다! 정신과 치료의 성공률은 높다. 환자 다수가 한 번 입원하고 나면 재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정신 질환 중에도 단계별로 혹은 에피소드별로 반복해서 재발하는 몇 가지 질병이 있다. 재발성 우울증, 양극성 정동 장애, 조현병이 대표적이다. 또 다 나은 후에 재발할 수 있는 질병도 있다. 가령 중독 질환이 그러하다. 하지만 신체 질병 역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류머티즘, 당뇨병, 다발성 경화증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게다가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 대부분은 입원이 필요하지 않다. 외래 진료만 받아도 보통은 잘 낫는다. 설령 입원한다고 해도 대체로 1회에 그친다. 그 후에는 아예 재발하지 않거나 재발해도 외래 진료만으로 충분하다.
쉼 없는 움직임에서 비롯하는 균형
높은 곳에서 줄을 타는 광대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줄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몸을 이리저리 리듬 있게 움직이면서 계속되는 불안정 상태를 해소한다. 규칙적인 움직임을 통해 안정을 찾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쉼 없는 움직임, 그리고 균형을 향한 여러 힘의 꾸준한 노력. 이 두 가지 원칙은 서로 협력하며 삶의 기본 원칙으로 작동한다. 둘 다 자연에서 통하는 기본 원칙이다. 유기적 형체로서 인간은 이 원칙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런 깨달음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자연적인 신체 과정을 넘어 인간의 인생 전체에도 해당한다. 모든 것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새롭게 만들어지기에, 우리의 영혼은 항상 내면의 균형을 추구하며, 그 균형을 잡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균형과 움직임, 둘 다가 있어야 충만한 삶, 그야말로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너무 많이 흔들려도, 너무 적게 흔들려도 좋지 않다. 인간에게 정지는 추구해야 할 상태가 아니며,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잠재된 그 안정과 강인함이 추구할 가치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불행도, 큰 불행도 만날 수 있다. 도전을 받지 않으면 영혼은 약해지고 만다. 근육과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않으면 줄어든다. 영혼도 근육처럼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 심리치료사 같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목표는 정지가 아닌 삶의 근본적인 흔들림을 되찾아 불행을 이겨내는 것이다.
정신 질환을 앓으면 이런 형태의 역동적 균형을 잃게 된다. 질병에서 건강으로 나아가는 길에 목표로 삼아야 할 것도 그러한 균형이다. 흔들림의 폭은 사람마다 다르다. 갖추지 못한 능력이 그 폭을 줄인다. 만성 질병, 정신 질환 역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폭이 좁다고 해도 항상 핵심은 역동적 균형에 담긴 생명력의 회복이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생명력이다.
목차
영혼과 함께하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신 질환은 누구 탓인가
고통이 이름을 얻으면
균형을 잃으면: 여러 가지 사례
정신병원에 온 환자
정신과 의사라는 이상한 종족에 대하여
심리 치료
약물 치료
모든 것은 균형의 문제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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