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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63579849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3-09-3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교훈담을 넘어서 - 한일관계의 역사적 궤적으로부터 무얼 배울 것인가?
제1장 _ 생존을 위한 궤변 – 방편으로서의 ‘조선’
제2장 _ 희생자 의식을 통한 인심의 고취 – 방편으로서의 ‘왜(倭)’
제3장 _ Gentleman과 부시(武士), 그리고 무사 - ‘방편’에서 내재화된 가치로
제4장 _ 윤치호에서의 ‘일본화’의 행방 - ‘목적’과 ‘방편’의 전도
제5장 _ 혐한의 시대 - ‘한국’이라는 방편의 부활
나오며
‘일본’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 일본으로
참고문헌 188 / 색인 200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신문 기사나 대중 보도를 접하다 보면 한 번쯤은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라는 이름과 마주치게 될 터입니다. 대략 숙종 때부터 영조 시대 즈음에 조선과 도쿠가와徳川 막부 사이의 외교교섭 시, 일본 측의 외교 업무를 전담하는 실무기관 격이었던 쓰시마 번의 통역 겸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관련 연구자의 입장에서야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섭사를 분석하는 데 나름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량감을 지닌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메노모리라 하는 외교 실무자가 이토록 대중적으로 회자 될 만한 인물이냐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선 솔직히 의문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까지도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대중적으로는 물론, 학계에서도 해당 연구 분야 바깥에선 그리 주목받은 적이 없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 그러니까 기왕의 냉전 구도 하에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가 시대적 현안으로 떠오르던 바로 그 시점에, 당시 방일 중이던 노태우 대통령이 『교린제성交隣提醒』이라는 그의 저작 중 결어 부분의 ‘성의와 신의의 교제誠信之交’를 인용해, 이를 새로운 한일관계의 지향점이라 선언하면서 일약 아메노모리 붐이 일게 됩니다.
이런 상투적인 수단으로서의 ‘(가상의 적이) 우려할 만하다倭情可慮’는 논리는, 그것이 정세 판단에 입각한 가정에 따른 것인 만큼, 상황이 변화할 경우 쉬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김태훈 2014: 66). 여기까진 조선의 경우에서든 쓰시마의 경우에서든, 강한 이웃들 틈에서 국제적인 정세를 능동적으로 추동키는 어려웠던 주변부 세력들로선 별반 다를 게 없는 기본조건이었다. 하지만 쓰시마의 경우가 특이했던 것은, 이런 인식과 당위성 및 수단을 그때그때의 최신 동향에 맞게 ‘재’구성하고 ‘재’포장해, 뭇 세력들 사이에서 거듭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다는 데 있다(Gladwell 2000: 70).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쓰시마의 선구적인 시도, 즉 방편으로서 조선을 활용한다고 하는 선택지는, 점차 다양한 진영의 한반도 진출론자들에게 혹은 정략적 차원에서의, 혹은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노림수를 위해 ‘재활용’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関 2017: 215).
요컨대 조선에서 임진년의 기억이란, 왜에 대한 무의식적인 원념으로서 의식의 밑바닥에 그저 가만히 깔려만 있던 침전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지역 및 개별 문중 단위에 이르기까지, 그런 보편적 정서를 동원의 기제로 활용하기 위해 무려 300여 년에 걸쳐 되풀이 호명해 온 일종의 정치・사회적으로 공인된 ‘방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규배 2008: 166-7). 그렇다면 이 같은 방편으로서의 왜란의 기억에서 ‘우리들’은, 그리고 이런 우리에의 귀속감은 실제로 어찌 규정되고 연결 지워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