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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63601830
· 쪽수 : 44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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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렇게 정리해 봅시다. “사랑은 몸을 입은 사회적 자아가 그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인간 삶의 유익을 증진시킬 준비가 된 일반적인 상태다.” 그렇다면 사랑은 성향 내지 성품(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로 말하자면 제2의 잠재태 또는 가능태), 곧 특정한 조건 아래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준비가 된 특정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행동이 아니고, 느낌이나 감정도 아니며, 흔히 어떠한 ‘의도’로 이해되는 의지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은 여러 의도와 특정 유형의 행동을 낳으며, 어떤 ‘느낌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와 다른 느낌들에 저항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 자아의 총체적인 성향으로 이해할 때에만 사랑에 대한 예수님과 바울과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실제로 목표로 삼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관된 사랑 개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이 욕망이나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서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욕망과 감정은 대체로 사랑과 다른 본질을 갖고 있는데,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에 참여해 사랑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욕망과 감정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충동의 영역에 속합니다. 욕망과 감정은 만족을 추구합니다. 더 나은 것이나 최선의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선택은 여러 대안을 따져 보고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합니다. 그 시야가 충분히 넓다면, 선하고 옳은 것을 찾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그분의 뜻과 연합한다면 최선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최선을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당연히 미워하고 싶은 원수를 미워하지 않을 힘을 주고, 원수나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추구할 힘을 줍니다. 물론 이것은 그냥 항복하고 원수(또는 친구)가 원하는 일을 하거나 그들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의지는 자기 뜻대로 하며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높임을 받겠다는 완고한 결의입니다. 그런 사람은 눈의 욕망과 육체의 욕망과 이생의 자랑에 지배를 받을 것입니다(요일 2:16). 실망과 분노의 삶, 영리한 조종과 위선을 꾀하는 시도로 가득한 삶으로 향하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삶을 피하려면 지배적인 원리로서의 자기 의지, 곧 자기 뜻대로 하려는 완고한 결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선과 하나님께 양도하고 자기 자아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 것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죽음’을 말하는 기본적인 영적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건전하게 이해하는 일은 사랑이라는 총체적 성향을 갖추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