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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4361023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5-11-16
책 소개
목차
시화집 『우물에서 하늘 보기』에 부쳐 008
01 이육사의 「광야」를 읽는다 013
02 사치와 사보타주 023
03 이곳의 삶과 다른 시간의 삶 - 작가 탄생의 서사 033
04 딴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043
05 갱피 훑는 여자의 노래 053
06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061
07 섬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071
08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위해 083
09 이 죄악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091
10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다 099
11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103
12 미친 사내가 건너가려던 저편 언덕,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113
13 창조와 희생 123
14 폭력 무한 133
15 길 떠나는 가족 143
16 추석의 밝은 달 아래 153
17 만해의 ‘이별’ 163
18 박정만의 투쟁 175
19 최승자의 어깨 185
20 신춘문예를 생각한다 195
21 백석의 『사슴』 - 잃어버린 낙원과 잃어버린 깊이 205
22 윤극영, 어린이 한국 215
23 이용악의 고향 227
24 사물이 된 언어 또는 무의미의 시 237
25 황진이 - 사랑의 완성 247
26 시인의 적토마 255
27 시, 무정한 깃발 263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억압의 저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삶은 없다. 또 다른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물질이 이 까다로운 생명을 왜 얻어야 했으며, 그 생명에 마음과 정신이 왜 깃들었겠는가. 예술가의, 특히 시인의 공들인 작업은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의 사치는 저 세상에서 살게 될 삶의 맛보기다. 그 괴팍하고 처절한 작업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이 분주한 달음박질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기를 두려워하는 지쳐빠진 마음이다.
-<02. 사치와 사보타주> 중에서
랭보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후세의 문학연구자들이 ‘투시자의 편지’라고 부르게 될 편지를 선배 시인 드므니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은 투시자여야 한다는 것이며,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엄청나고 이치에 맞는 착란을 통해 투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감각이 착란에 이른다는 것은 광인이 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투시자의 착란은 전면적이고 장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이치에 맞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심각한 광기를 자각하며 그 경험을 논리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착란이나 광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랭보가 말하는 ‘모든 감각의 착란’은 이 세상에 몸을 두고 살면서도 저 소금장수처럼 다른 세상의 감각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조선시대의 노비가 양반 상놈이 없는 세상을 본다면 그것은 벌써 착란이며, 나무 위에 허공이 있으니 그 나무가 꽃을 피워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벌써 투시자다. 허공은 모든 것이 가능한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허공과 같지 않는가. 꽃나무는 여기 있지만 꽃이 필 자리는 저 허공이 아닌가.
-<03 작가 탄생의 서사> 중에서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단원고의 한 학부모가 이런 말을 써서 팽목항에 내걸었다. 이 짧은 말의 밑바닥에 깔려 있을 절망감의 무한함까지 시간의 홍진 속에 가려지고 말 것이 두렵다. 우리는 전란을 만난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싸워야 할 적도, 원망해야 할 존재도 오직 우리 안에 있다. 적은 호두 껍데기보다 더 단단해진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제 비겁함에 낯을 붉히고도 돌아서서 웃는 우리의 나쁜 기억력 속에 있다. 칼보다 말이 더 힘 센 것은 적이 내부에 있을 때 아닌가. 죽은 혼의 가슴에 스밀 말을, 짧으나마 석삼년이라도 견딜 말을 어디서 길어 올리고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10.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