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법과 생활 > 법률이야기/법조인이야기
· ISBN : 9788964361252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7-02-20
책 소개
목차
추천하는 글_억울한 이에게 자상하고 불의한 이에게 무서운 고 반장__손병희(가수)
프롤로그_〈고상만의 수사반장〉은 계속 뛰겠습니다
1부_ 대한민국에서 정의는 가능한가
영화보다 슬픈, 영화보다 아픈 한 목사의 여정
―영화 〈7번 방의 선물〉 모티프, 춘천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
그는 어떻게 해부용 시신이 되었나
―스물여덟 버스 기사 문영수의 삶과 죽음
누가 죄 없는 신호수를 죽였는가
―작전명 ‘장흥 공작’의 비밀
경찰이 만들어내는 ‘억울한 사람들’
―경찰의 모욕에 온몸으로 항변한 38살 가장의 비극
이 땅의 사법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공방
―1995년 치과 의사 모녀 살해사건
대한민국 정의의 여신상에 묻습니다
―사학비리 내부 폭로자 살인교사사건
내 딸 죽인 살인범, 그를 다시 기소하라
―직장 상사에게 죽임당한 딸을 위한 한 어머니의 싸움
사고인가 살인인가, 진실은 어디에
―캄보디아 이주민 여성들이 맞이한 비참한 죽음
“나에게는 국가가 없었습니다”
―존속살인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전말
길고 긴 ‘괘씸죄’와의 싸움
―충주 귀농 부부의 공권력 횡포 피해사건
2부_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찾아가야 할 정의
사실상 대통령이 포주, ‘미군 위안부’를 아십니까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집단 따돌림, 누구의 책임도 없나
―이경택 군 일가족 사망사건
정당방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란 여성 사형수 자바리 사건을 통해 본 정당방위논란
민주주의 나라 속에 사찰은 없다
―대한민국에서 프락치는 어떻게 만들어져왔나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가족을 되찾은 사람들
―다른 색깔, 두 가족 이야기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뜻으로 되새기는 어린이 날
3부_되돌아올 수 없는 우리 군인들의 목소리
군 의문사, 가족 전체를 죽음으로 모는 비극
―끝내 밝혀지지 않은 이이동 이병 사망 사건
책임지지 못한다면 징병도 하지 말라
―손형주 이병의 죽음, 그리고 부당하게 거부된 순직 요청
유족의 돈마저 가로채고 있는 군, 반성은 없나
―신 이병 사건을 통해 본 군 영현비, 장례비 지급 실태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세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여군 오 대위의 절규
윤 일병 사건, 주범은 따로 있다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사건의 전모
군사법원은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공군 정 상병의 자원 입대, 애국심이 불러온 비극
“나는 북한 인민 서열 43호, 국군 포로 자녀입니다”
―국군 포로와 그 후손들은 실재하고 있다
추천하는 글_혼자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강을 건너려 할 때, 손을 내미는 사람 고상만__박준영(변호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실험 결과에 따라 한 사람이 죽을 수도, 또 살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던 그때였습니다. 불을 붙이고 1분, 다시 또 1분… 변호인과 이도행 씨의 가족들이 기대했던 불은 황망하게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실은 이런 것인가. 입안에 침도 다 말라가던 그때,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던 그 순간, 정확히 3분 만의 일이었습니다. 불을 붙이고 2분이 지나 3분으로 접어드는 순간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3분이 되자 모의로 지은 아파트 세트장이 이내 큰 불길에 휩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적인 화재 전문가가 보내온 답변처럼 ‘지연 화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말이 사실로 확인된 것입니다. 즉, 누군가 낸 화재는 적어도 사건 당일 아침 8시 30분을 전후한 것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2001년 2월, 사건 발생 근 6년이 지나가던 그때 고등법원 파기 환송심 재판부가 이 사건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이어 자리에 착석한 주심부장 판사는 판결문 낭독 전 다음과 같은 말로 선고를 시작합니다.
“진실은 거짓과 위선의 장막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장막을 걷어주는 빛이 있다고 믿고 그 빛을 따라갈 뿐입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내가 구속된 이유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고 그 살해 이유가 나와 내 여동생을 아버지가 성추행하여 죽인 것으로 검찰과 법원이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자살해버린다면 아버지는 영원히 딸들을 성추행한 파렴치한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아버지가 그런 파렴치한이 되어야 합니까? 그래서 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무죄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하며, 죽고 싶었으나 죽을 수 없는 지난 15년의 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김신혜는 이런 말을 남기며 오열했습니다. [……]
“나에게는 15년 전에도 국가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없습니다.”
1971년 12월 22일에는 아예 대통령 박정희가 직접 기지촌 관리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기지촌 정화위원회’라는 정부 기구를 아예 직접 만든 후 미군 기지촌 정화정책을 담당토록 했습니다. 당시 이 기지촌 정화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을 확인해보면 왜 기지촌 여성의 문제가 정부 책임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기구에 참여한 이들은 장관급에 해당하는 대통령 행정 비서, 외무부,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 보건사회부, 교통부, 체신부 각 차관, 국세청장과 국무총리 행정비서, 경제기획원 차관보, 그리고 경기도 지사였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모든 고위급 인사들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 1960년대, 우리나라가 지독한 가난으로 허덕일 당시 변변한 달러 수입원이 없었습니다. 이때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기지촌 여성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놀랍게도 대한민국 GNP의 25퍼센트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니 달러를 벌어들이는 성매매 여성이 애국자라며, 해서는 안 될 불법 행위를 찬양하고 이를 미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