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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64361559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19-01-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 안익태 <애국가>의 탄생
2. ‘프린스 리’는 누구인가?
3. 더블린에서 베를린으로
4. 그러면 에하라 고이치는 누구인가?
5. <에텐라쿠(월천악越天樂)>인가, <강천성악(降天聲樂)>인가?
6. 슈트라우스의 <일본 축전곡>과 에키타이 안
7. 독일 협회(獨日協會, Deutsch-Japanische Gesellschaft)와 나치 독일
8. 1942년 9월 18일 그날의 <만주국>
9. 우리에게 만주국이란? 소설가 박영준, 그리고 에키타이 안의 경우
9.1. 만주국의 민족 협화
9.2. 소설가 박영준의 <밀림의 여인> 개작
9.3. 에키타이 안의 <만주국> 개작
10. <애국가> 논쟁: 국가 상징의 재구성을 위하여
10.1. 두 개의 ‘분단’ 애국가의 형성
10.2 안익태 <애국가>의 공고화: 이승만과 박정희
10.3. 봉인과 도전
참고문헌, 사진 및 도판 출전
맺는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스페셜 에이전트’는 사실 다양한 어감의 여러 가지 용어로 번역이 될 수 있다. 특수 공작원, 특수 정(첩)보원, 특수 요원 등으로 말이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밀정(密偵)이나 스파이란 말로도 옮길 수 있다. 프랑크 호프만도 이 책에서 쿠니 마사미, 즉 박영인과는 달리 에키타이 안, 즉 안익태가 에하라 고이치의 ‘스페셜 에이전트’라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일종의 강한 심증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에하라 고이치가 일제의 유럽 첩보망 독일 지부 총책이 분명하다면, 그의 집에 에키타이 안이 빠르면 1941년 말부터 1944년 4월초까지 거의 2년 반 가까이 기식했다는 사실은 저 심증을 강화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전후 그가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 바로 옆 마요르카 섬에 머물면서도 그가 환대받았던 프랑스 음악계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사실은 그가 프랑스의 ‘기피 인물’일지 모른다는 심증을 강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에키타이 안은 자신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결코 등장하지 않았다. 베를린 필 지휘 경력을 그가 얼마나 광고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더더구나 이해하기 힘든 행보였다.
에키타이 안의 활동이 에하라 고이치에게 제공한 것은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첩보 따위와는 비교하기 힘들다. 대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의 고급 나팔수로서 그의 가치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이는 베를린 총책 에하라가 직접 파리로 달려가 파리의 친나치 프랑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호프만의 주장을 그저 음해나 비방으로 치부하기에는 에키타이 안의 행적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의문부호가 달려 있다. 흔히 우리가 첩보원이건 정보원이건 그 뜻을 “적대적인 상대국(방)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되어 정보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금전을 비롯한 일정한 반대급부를 수수하는 자” 정도로 본다면, 에키타이 안의 그것을 ‘고용’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에키타이 안은 에하라 고이치에게 그가 기대하는 대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그의 스페인 도주는 마찬가지 일제의 유럽 첩보망과의 연관에서 보자면 어쩌면 그 자체로 잘 준비되고 기획된 일일지도 모른다.
안익태 <애국가>의 치명적 흠결은 그 선율이나 그 가사에 있지 않다. 그것을 지은 사람에 있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정의상 모든 애국가는 하나의 양보할 수 없는 최소 요건을 요구한다. 특히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것은 멜로디나 가사의 우월성이나 높은 미학적 수준에 있다기보다, 만든 이가 최소한 ‘애국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도덕적 무결점과 높은 학식 혹은 유명세 등은 부차적이다. <애국가>를 통해 ‘애국’이라는 기본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자신이 애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언 명법이다. 그러기에 ‘비애국적’ 애국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형용 모순이다. (…) 그래서 첫 번째 대안은 ‘모른 체하기’다. 혹은 악의적 방치(malign neglect)라 불러도 좋겠다. 이미 수십 년 그렇게 사용해왔는데 어떤 새로운 사실 혹은 더 나아가 설사 진실이 밝혀진다손 해도 그냥 모른 체하면 된다. 사회적, 정치적 비용도 가장 싸게 먹힌다. 그래서 가장 경제적인 대안이다. 국가 상징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로서도 그저 ‘일각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도로 치부하면 손쉽다.
두 번째 대안은 ‘좀 문제가 있는데 통일될 때까지 그냥 사용하자.’는 거다. 혹은 선의적 방치(benign neglect)라고 해도 되겠다. 실무적으로 전 세계가 다 우리 국가로 알고 있는 데다, 나중에 통일되면 어차피 바꿔야 하니 이대로 좀 참고 가자. 더군다나 <애국가> 문제가 불거지면 틀림없이 보수-진보로 나눠 싸울 것이 자명하니 사회 통합 차원에서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대안은 기존 <애국가>는 그냥 사용하되 제2의 애국가를 만들어 불러 보는 방안이다. 다시 말하지만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므로 다수로 존재해도 아무 문제는 없다. 또 이런 방안이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과거에 정부 차원에서 검토된 적도 있다. 행사 유형별이나 의전 성격에 맞추어 각각 적합하게 운용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복절이나 3·1절과 같은 성격의 행사엔 아무래도 안익태 <애국가>의 적절성에 부담이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다른 곡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네 번째는 사안의 공론화를 통해 ‘국가(國歌)제정 위원회’를 시민 사회와 협동해서 구성, 널리 가사와 곡을 시민에게 묻는 것이다. 공모형 국가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미 해방 직후에도 시도되었고, 1960년대에도 가장 다수안 중 하나였다. 1980년대에는 우리 사회 가장 보수적인 측에서 들고 나온 방식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가장 솔직하고 또 역사 정의에 가장 부합되는 방안이다.
1936년 1월 16일자 《신한민보》에는 '안 씨의 신작 애국가'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짧은 기사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