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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문학
· ISBN : 9788964362327
· 쪽수 : 263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교회 가기 싫은 이유? 재미없으니까
관심도 없고 철학도 없고
언젠가 돌아올 테니 내버려 두라 하고
옛날 교회는 참 재미난 곳이었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그리고 또 속고
[고전 한 스푼]
소금이 녹으면 보이지 않는다
교회는 윤동주를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시를 썼기에 시인이다, 당연히?
매력적인 사람은 멋지다, 당연히!
소금은 녹아야 짜다, 너무나도 당연히
[고전 한 스푼]
아뿔싸! 목사님도 부모였던 거다
안전(?)을 택한 교회의 5월, 다른 날 다른 온도
안방에선 시어머니 편을 들고 부엌에선 아내 편을 들라고?
삼강오륜과 차별적 이데올로기
효도인가, 강박인가?
[고전 한 스푼]
아버지, 그 이름의 무게
3인칭 ‘당신’의 입체성
이름이 그 본질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이름, 휘·자·호
아버지 이름의 무게
[고전 한 스푼]
“왜 꼭 너여야 하는데?”
“우리 애에게 복을 내려주세요, 제발!”
모세의 3막 인생
예수는 도깨비가 아니다
홍길동이 될래? 전우치가 될래?
설렁설렁해도 되는 삶이란 없다
[고전 한 스푼]
깍두기도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구별이 차별이 되는 세상
깍두기 삼갈과 시시한 인생
“안다, 안다, 내가 안다.”
[고전 한 스푼]
백마 탄 왕자가 눈이 삐었냐? 너에게 오게
“그건 기본이고요”
금수저·은수저·흙수저
때를 기다리는 자
바람을 불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고전 한 스푼]
예끼, 당나귀만도 못하다니…
과학 공부를 못한 공연한 핑계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 악명의 근원
짐승만도 못한 선지자
정승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차라리 가르치지 말자, 사랑 없으면
[고전 한 스푼]
어느 섹스중독증 환자의 핑계
핑계 없는 무덤 없다
억울해도 탓하지 말란다, 하나님이
절륜한 변강쇠와 사람 잡아먹는 옹녀
현실도피로서의 중독
핑계, 그 무한한 해로움
핑계의 장막을 거둬야 시작할 수 있다
[고전 한 스푼]
여우가 되든지 그물을 버리든지
배은망덕한 이야기
갑갑하고 난감한 이야기
귀신이 곡할 이야기
황당하지만 황당하지 않은 이야기
[고전 한 스푼]
왕도 하지 못한 일
일어나지 않을 일과 누군가의 열정
그 지긋지긋한 산당
이기적인 하나님의 한숨과 탄식
당신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고전 한 스푼]
어수선한 번잡함의 장막을 치고
말하는 이는 ‘요점만 간단히’
듣는 이는 ‘과정과 맥락을 꼼꼼히’
세 가지 장벽
그리고 하나 더
[고전 한 스푼]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불량아들
늙고 병든 아버지와 막 나가는 아들들
망나니 두 아들이 가문을 멸망시키다
고뇌와 탄식의 아버지 코스프레
불량 아들? 불량아들?
[고전 한 스푼]
목적이 이끄는 삶의 피곤함
왜 사냐고 물으면 차라리 웃을까
주객전도를 모르는 사람들
행복은 ‘더하기’다
달란트를 쓸 것인가, 묻을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로봇이 되려는 사람들
율법을 지키는 삶과 얽매이는 삶은 아주 다르다
예수의 황당한 부탁과 무모한 사람들
부활 승천, 그리고 야속한 부탁
운명론에 갇힌 사람들
혈액형인가? MBTI인가?
프로이트는 과거를 말했고 라캉은 현재를 말했지만
예수는 미래를 말했다
[고전 한 스푼]
소돔은 동성애로 망한 것이 아니다
욕심쟁이 부자는 쪽박까지 깼다
소돔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나?
그들 모두 공모자였다
동성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속 편하다
[고전 한 스푼]
참고자료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릴 적 내가 다니던 교회는 가난한 개척교회였기에 목사님 혼자 어른들을 상대로 목회를 하는, 교육적으로는 불모지 같은 교회였는데도 아이들은 교회가 재미있었고 교회 가는 것이 행복했다. 지금은 온갖 교육 방법의 세련된 프로그램이 넘쳐나는데도 재미없단다. 애들이 시큰둥하다.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두고 “기다리면 돌아와요”만 줄기차게 읊조린다. 교회가 무슨 부산항인가, 기다리면 돌아오게. 한 마디로 요즘 교회에서 목청껏 다음 세대를 위한 목회를 한다고 외치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재미없다. 막말하자면 옛날에 비하면 한참 후지단 말이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파도를 일으키려는 사람이다. 제 힘으로 제 손으로 제 몸으로 파도를 일으키겠다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사실 세상에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만들어낸다. 주목받기 위해 있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만들어낸다. 파란을 일으킨다. 풍랑을 일으킨다. 참 어리석은 짓이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야 일어난다. 그 바람은 하나님이 일으켜주어야 한다. 은혜의 바람은 풍랑이 아닌 멋진 파도를 일으킨다.
성경은 말했다. 행복하고 싶으면 자기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라고 말했다. 자기 달란트를 잃을까 두려워 땅에 묻는 것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불행하고 싶지 않아 한 일이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불행하지 않은 삶’은 빼는 삶이다. 문제의 소지를 없애려는 삶이고, 목적이 이끄는 것에 매여 끌려 다니는 수동적 삶이다. 잘해야 중간이다. ‘행복한 삶’은 더하는 삶이다. 무언가 하는 삶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마음껏 향유하는 능동적 삶이다. 여기에 기쁨이 있다.
무엇을 할지는 스스로가 잘 안다. 하나님이 각자 자신들에게 ‘그 재능대로’ 이미 주셨으니 그것을 찾아 누리고 즐기면 된다. 그림 잘 그리는 재능을 받은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하는 일은 없다. 하나님은 이상한 양반이 아니다. 미술 재능을 주셨다면 그것을 하라고 주신 것이고, 음악 재능을 주셨다면 노래를 부르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현명하고 사리가 분명한 분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한탄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그 달란트에 집중해야 한다. 행복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열정을 쏟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행복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