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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나혜석, 최승희, 안창호, 손기정, 허헌, 박인덕, 정석태, 최영숙, 오영섭 (지은이), 성현경 (엮은이)
현실문화
21,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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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65641100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5-01-02

책 소개

식민지 시대 조선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대중잡지 「삼천리」에 실린 세계여행 기행문을 엮은 책이다. 난생 처음 가본 여행지 뒷골목에서 엽기적인 경험도 하고, 인도의 간디나 쿨리지 미국 대통령 같은 명사들도 만나는 등 경성 엘리트들의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여행담이 책에 담겨 있다.

목차

서문 | 여행의 시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4

1장 민족 변호사 허헌이 방문한 세계 정치 1번지
무섭게 밀려드는 태평양의 바다를 타고 황금의 나라 미국으로!
하와이에 잠깐 들러 형제들부터 만나다: 세계일주기행 제1신 - 19
꽃의 할리우드를 보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아일랜드로!: 세계일주기행 제2신 - 31
부활하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자태: 세계일주기행 제3신 - 46
(해제) 독립국을 향한 약소민족의 항해: 인권 변호사 허헌의 세계여행 - 63

2장 한류스타 최승희의 월드 투어
미국통신 - 71
뉴욕에서 고국의 자매에게: 미국에서 보낸 최승희의 편지 - 80
(해제) 현실 인식의 재편, 예술가의 혼 - 90

3장 여성해방론자 나혜석의 유럽 미술 기행
소비에트 러시아로 떠나는 구미 여행기, 그 첫 번째 - 99
베를린과 파리 - 112
베를린에서 런던까지 - 130
프랑스 가정은 얼마나 다를까 - 145
(해제) 조선에 여성 인권을 그리다 - 154

4장 조선 여자 박인덕, 세계의 강단에 우뚝 서다
6년 만의 나의 반도, 미국으로부터 돌아와서 여장을 풀면서 옛 형제에게 - 163
내가 본 독일 농촌 - 171
미국 자유종각 방문기 - 180
태평양을 다시 건너며, 세계기독교대회에 참석하고자 - 184
형제여, 잘 있거라 - 192
(해제) 조선의 이슈메이커, 세계를 누빈 명강연자 - 198

5장 청년 의학도 정석태,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다
이탈리아, 순교자 1백 주년 기념 대제례성관, 가톨릭교의 성대한 기념제 광경 - 207
시체의 베르됭, 세계대전을 치른 옛 전장을 기행 - 214
파리에 있는 나폴레옹의 거처를 방문하다 - 221
대해양의 비극, 인도양의 인도 청년 수장기 - 227
(해제) 고된 유학길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보다 - 233

6장 요절한 천재 최영숙이 사랑한 인도
간디와 나이두 회견기, 인도에 4개월 체류하면서 - 241
(해제) 서구 중심주의를 뚫고 나와 세계를 꿈꾸는 법 - 250

7장 조국을 잃은 마라토너 손기정의 금빛 유람
베를린 원정기 - 259
(해제) 비운의 여정, 세계를 달린 피식민자 - 276

8장 유학생 오영섭, 약소민족의 독립을 지켜보다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필리핀 - 285
필리핀 대통령을 회견하고자, 새로운 수도에서 대통령 취임식 준비 장면 - 296
취임 연설하는 대통령의 인상 - 306
(해제) 필리핀에서 본 조선, 쓰이지 않은 말 - 316

9장 세계성의 세계, 조선 사람의 만국 유람기
프랑스 파리의 5월 1일 행진 | 이정섭 - 323
인도 특집, 상해의 인도인 시위운동 광경 | 김세용 - 330
인도 여행기 | 김추관 - 343
표박의 시민 ‘집시의 연애와 생활’ 그들과 함께 지낸 3일간의 이야기 | 백림학인 - 349
필리핀 시찰기 | 안창호 - 355
러시아의 볼가 강을 향해 | 김니콜라이 - 359
예술의 도성을 찾아, 폼페이의 폐허여! | 이순탁 - 365
내가 본 파리기념일 | 김련금 - 372
세계 각국의 괴이한 항구로 떠나는 엽기행, 남미 리우 항 | 홍운봉 - 377
세계 각국의 괴이한 항구로 떠나는 엽기행, 프랑스 마르세유 항 | 홍운봉 - 382
파리, 못 잊을 파리 | 조택원 - 388
빈과 부다페스트 | 계정식 - 392
(해제) 침묵의 흔적이 남긴 ‘네이션’의 안과 밖

출전 - 044
미주 - 434

저자소개

나혜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지식인 중 한 명으로, 화가이자 작가,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로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며 한국 여성으로서 최초로 여러 영역에서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자아를 찾으려 했던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문필가로서 나혜석은 ‘신여성’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여자계》《신여자》 등 각종 신문과 잡지에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혼고백서」「부인문제와 결혼관」「여자도 사람이다」와 같은 저술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임을 역설했다. 당시 그녀의 글은 보수적인 조선 사회에서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의 그림과 글은 일제강점기 조선 여성의 억압된 현실과 그 속에서의 저항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나혜석은 끝까지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개인의 비극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여성 해방과 민족 해방의 가치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혜석의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은 비극과 투쟁, 창조와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후에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그녀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부흥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나혜석은 한국 근대 여성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미술, 문학, 사회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보여준 그녀의 활동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으며, 이후 한국 여성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신여성’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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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무용가동맹 위원장, 무용학교 교장, 최승희무용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1911년 강원도 홍천에서 출생했다. 최준현(崔濬鉉)의 딸이며, 어머니는 박용자(朴容子)이다. 영화제작자 최승일(崔承一)의 동생이다. 192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최승일의 권유로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서 일본 현대 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도일했다. 1926년 5월 본격적인 무용 수업을 위해 도쿄로 건너간 뒤 약 3년 만에 주역급 무용수로 발탁되었고, 수석대교(首席代敎)로 후진을 지도할 만큼 급성장했다. 1927년과 1928년 이시이바쿠의 조선공연에 참가하여 호평을 받았다. 1929년 귀국하여 경성에 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해 12월 찬영회가 주최하는 ‘무용·극·영화 밤’에 출연했다. 1930년부터 본격적인 무용 공연을 시작했다. 이해 2월 개성에서 무용 대회, 3월 창작 무용 공연회, 10월 제2회 공연회, 11월 대전에서 무용 대회를 각각 가졌다. 1931년 문학가 안막(安漠)과 결혼했다. 이외에 「파우스트」·「광상곡」·「그들의 로맨스」·「그들의 행진곡」·「흙을 그리워하는 무리」 등 가극과 창작극을 발표, 공연했다. 이 시기 전국을 순회하면서 신문사 애독자 공연, 동정금 모금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을 했다. 1933년 3월 이시이 문하로 재입문하여 약 1년 만에 청년회관에서 전통과 현대 무용을 접목한 창작극 「에헤야 노아라」를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6년 영화 「반도(半島)의 무희」에 출연했으며, 이해 말부터 4년간 세계 무대로 진출하여 유럽에서는 「초립동」·「화랑무」·「신로심불로」·「장구춤」·「춘향애사」·「즉흥무」·「옥저의 곡」·「보현보살」·「천하대장군」 등 공연했다. 1938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무용경연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을 맡았다. 1930년 미국 뉴욕에서는 당시 흥행계의 제왕으로 불리던 휴록(Hurok.S.)의 기획 아래 NBC전국체인과 제휴하면서 미국은 물론,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공연했다. 특히, 뉴욕 공연 후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 중일전쟁 이후 전시 체제기가 형성되면서 일제에 협력했다. 1941년 10월 일본 오사카(大阪)회관에서 협화회원을 위로하는 공연을 했으며, 11월에는 도쿄극장에서 조선군 보도부가 내선일체와 지원병을 선전하는 영화 「그대와 나」 시사회에서 「화랑의 춤」 등을 공연했다. 이해 11월 도쿄에서 공연한 수익금을 일본 육군성 휼병부(恤兵部)에 헌금했다. 1942년에는 조선군사보급협회에서 주최하는 무용공연에서 수익금 전액을 조선군사보급협회에 기부했다. 1944년에는 도쿄에서 24회 연속 독무 공연을 했다. 이외에 일본의 전통 예능인 노(能)·가부끼(歌舞伎) 등에서 소재를 얻어 「부콘(武魂)」·「오이와케(追分)」·「이케니에(生贄)」·「시즈고젠(靜御前)」 등을 발표했다. 해방 직전 중국에서 위문 공연을 하다 베이징에서 해방을 맞고, 1946년 5월 귀국했다.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어 남편 안막, 오빠 최승일과 함께 7월 20일 월북했다. 월북 후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반야월성곡」·「춘향전」 등 2편의 무용극과 소품 「노사공」 1편을 공연하는 등 창작 활동을 했다. 1950년 베이징에 중앙희극원 무용반을 설립해 학생을 지도했다. 1950년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 무용학교 교장, 국립무용극장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1952년 공훈배우·1955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1958년까지 최승희무용학교에서 안무가로 활동했으나 남편 안막이 반당종파분자 혐의로 체포되자, 그 영향을 받아 최승희무용연구소도 폐쇄되었다. 1년간 자숙 후 1959년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을 창작해 조선무용가동맹 위원장으로 복귀, 1967년까지 활동했다. 1967년 숙청되어 가택연금의 처벌을 받았으며, 1969년 8월 8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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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초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독립운동가. 청년 시절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설립했다. 귀국 후 1907년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진흥했다. 1913년 미국에서 흥사단을 재창설하고, 3·1운동 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세계를 무대로 해외 한인의 조직활동을 진작했으며 국내외 운동노선을 통합해 민족혁명을 이루고자 평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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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아시아 최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어릴 때부터 일하며 압록강변을 달렸다. 스무 살 때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장거리 경주와 마라톤에서 두각을 보이며 각종 대회에서 우승, 신기록 수립의 행진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일제강점하에서 비록 일본 대표선수로 출전했지만, 조선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선사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다. 그 후 일제의 감시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등으로 더는 경기에 나가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 마라톤 선수 양성에 전념하며 해방 후 한국 체육계 발전을 위해 힘쓰다 2002년 타계했다. 같은 해 한국 체육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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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5년 태어나 보성전문학교와 메이지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인, 김병로와 함께 조선 3대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보성전문학교 교장와 동아일보 사장대행을 역임했다.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세계약소국대회에 참석하는 등 조선의 지도자급 인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해방기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으며, 미군정이 남로당을 불법화 하자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전쟁 당시 강물을 건너다 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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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덕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독립운동가, 여성주의운동가, 교육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신여성. 이화학당 출신으로 김활란, 유관순 등의 선배다.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주를 갖춘 인물로 외국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3.1운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했지만 일제시대 말기에는 친일 활동 논란이 있다. 인덕대학과 인덕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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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도쿄 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923년에 독일로 유학을 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세균학을 전공했다. 3년 동안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26년에 조선에 돌아와 경성 시내 다옥정(지금의 서울 중구 다동)에 지성내과를 개원했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이야기를 <별건곤>과 <삼천리>에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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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지은이)    정보 더보기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최초로 경제학을 공부한 재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시 3·1운동을 겪으며 독립운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중국에 유학해 도산 안창호 등의 가르침을 받던 중 인생행로의 사표가 된 엘렌 케이의 사상에 심취해 다시 스웨덴 유학길에 오른다.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경제학사)을 졸업하였다. 귀국길에 세계정세를 살피고 식민지 조선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출구라고 생각한 인도를 방문해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사로지니 나이두와 교분을 쌓는다. 최영숙은 여성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치려던 그의 관심의 중심은 노동여성이었다. 언론에 활발히 글을 발표하고 여자소비조합 운영, 공민독본 편찬 등에 애쓰던 중 귀국 6개월 만에 27살의 짧은 생으로 요절함으로써 역사 속에 묻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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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인 최초로 필리핀으로 유학을 간 유학생. 제7일안식교회가 세운 필리핀 퍼시픽 유니온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필리핀 유학 시절 신생 독립국 필리핀 정부의 출범과 필리핀 초대 대통령 마누엘 L. 케손의 취임식 지켜봤고, 그 광경을 《삼천리》에 세 차례에 걸쳐서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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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경 (엮은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가와 민족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연대의 사유-정치성, 서계성이란 테마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식민지 시기의 문학과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특히 당시 잡지나 신문에 실린 세계여행 기행문을 바탕으로 조선인들이 세계와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찾아가는 데 관심이 많다. 논문으로 「1930년대 해외 기행문 연구: <삼천리> 소재 해외 기행문을 중심으로」(2009), 「1930년대 세계문학담론의 수행적 구조와 해외문학기행의 정치성」(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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