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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7357733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0-05-04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코로나19 일기 I: 의료 현장에서
1월 29일-오염 지역 | 2월 1일-바이러스의 구원자 나의 손 | 2월 5일-텐트 치는 연습 | 2월 10일-바이러스와 불안 | 2월 13일-레벨 D 슈트 | 2월 15일-타인의 시선을 몸 깊이 받아 삼켰다 | 2월 17일-눈 내리는 날, 유전자가 내리는 봄 생각 | 2월 18일-이 어둔 하늘 아래서 | 2월 19일-우수雨水의 우수憂愁 | 2월 20일-선별진료소 | 2월 21일-할 만두 한 당직 | 2월 22일-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자들 | 2월 23일-바이러스의 손가락질 | 2월 24일-삶의 템포 | 2월 25일-이중 은폐 감염 | 2월 26일-비루스와 바이러스 | 2월 27일-바이러스와 세균 | 2월 28일-목소리의 음 자리 | 3월 2일-불쌍한 눈알들 | 3월 4일-뇌는 최악의 상황을 자기 증상으로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 3월 5일-주변이 온통 바이러스 얘기뿐이다 | 3월 7일-절박한 질문에 답답한 대답 | 3월 8일-핵심 단서는 감춰져 있다 | 3월 9일-국내 확진자 수가 7000명이 넘다 | 3월 10일-사이토카인 스톰 | 3월 11일-시신과 코로나19 | 3월 13일-장기 유행을 예감함 | 3월 18일-민주주의로 위기를 극복한 나라 | 3월 20일-코로나 블루
2부 코로나19 일기 II: 바이러스와 인간
2월 3일-미생물계의 외모지상주의 | 2월 6일-주둥이가 변했어요 | 2월 8일-앗! ‘부리’들의 공격이다: 항원과 항원수용체에 대하여 | 2월 21일-눈먼 자들의 도시 | 2월 27일-어떤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 | 3월 1일-감염병은 왜 발생하는가 | 3월 6일-바이러스-인간-달 | 3월 8일-영화냐 현실이냐: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다가 | 3월 16일-질병에 대하여 | 3월 25일-어떤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 II | 3월 27일-마스크에 대한 단상
3부 사이토카인 사회
맺는 말
대화하는 몸 | 단 한 가지의 생물학 | 생각하는 사람 | 미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생각해보니 중국에 직접 왕래하지는 않더라도 중국에 다녀온 사람과 접촉하는 것까지 치면 나는 일반인에 비해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건너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검사도 못 한 채 약만 받아갔던 중년 여성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이 모든 이와 접촉하는 사람이고, 바이러스에도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호흡기내과 의사가 아닌가. 물론 바이러스를 오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지만(아픈 것과 오염된 것은 분명히 많이 다른데 말이다) 상황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민한 피부를 가진 나는 마스크를 쓰면 코와 뺨이 가렵다. 근질거리니 자꾸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는데, 그렇게 얼굴에 손이 가면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난 진료할 때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았다. 내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나가는 바이러스성 환자가 하루에도 수십 명인데 난 어떻게 바이러스에 안 옮을 수 있었을까? 그 첫 번째는 모든 이에게 베풀어주시는 ‘중력’이라는 공평한 힘 때문이다. 중력은 크기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작용한다. 몸살감기에 걸린 사람을 이부자리로 끌어당기는 그 중력이 바이러스에도 작용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인간도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코와 입에서 튀어나온 바이러스는 상승의 기회를 찾지 못한 채 추락하고 만다. 책상, 문손잡이, 핸드백, 쓰레기통 속 코를 푼 휴지 속으로 바이러스는 갇혀버리고 만다. 새로운 숙주를 찾아 침투하며 번성하고 싶은 원초적 본성을 지닌 바이러스에게 중력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숙주 없이 세상에 내팽개쳐진 바이러스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 고차원적으로 지내보자고 몇 마디 적어본다. 피부! 바이러스는 절대로 피부를 뚫을 수 없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가. 여러 층의 세포로 구성되고 맨 바깥층의 피부 세포는 죽은 채로 몸을 뒤덮고 있다가 스스로 탈락하여 자연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돌아갈 때 함께 떨어져나가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하루에도 수천억 개에 이른다. 눈빛! 눈빛으로는 절대 미생물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눈빛으로 누군가를 쏘아보면 싸늘한 감정만 되돌아올 뿐 절대 바이러스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니 눈빛으로는 사랑스러운 감정만 전하자. 그리고 중력! 바이러스와 인간 모두 똑같이 중력장 안에 살아가는 미물들이다. 바이러스에 중력을 거스를 날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