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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69890825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23-03-15
책 소개
목차
작가 노트
제주의 ‘무덤(산담)’ 4
PROLOGUE
지상에 새긴 별 6
PART_Ⅰ
홀로 고고한 14
PART_Ⅱ
따로 또 같이 46
PART_Ⅲ
문명과 만나는 88
PART_Ⅳ
근원과 함께 98
PART_Ⅴ
지상을 수놓다 124
EPILOGUE
그리하여, 우리는 154
책속에서
겨울 숲.
푸른 빛이 이곳에 도착했다.
경이롭고 환상적이다,
조용하고 경건하고 찬란하다.
오름의 정상은 차고 단호하다.
고요가 숲을 점령하자 그(녀)는 고립무원이다.
눈(雪)의 푸른 슬픔이 나무를 적시고 가지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잔설은 서늘한 가슴 속까지 이미 파고들었다.
그(녀)는 무심하게도 이곳을 떠났다.
사라졌다.
흔적만이 이렇게 절해고도에 홀로 남겨졌다.
그(녀)가 남겨 둔 눈동자가 하늘을 응시하며
자신이 이곳에 잠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숲은 홀로 남은 그(녀)의 체취를 뜨겁게 에워싸고 눈(雪)마저 가릴 것이다.
마침내 외로움도 눈(雪)에 덮일 것이다.
홀로 남겨진 외로움,
이토록 치명적이다.
너에게로 향하기 위해 나의 몸이 날렵해진다. 출항을 기다리는 배처럼 신호를 기다리지만 끝내 억겁의 세월에 갇혔다. 망망대해 푸른 물결은 파도치며 떠나는 나를 가두고 방향까지 봉쇄했다. 세계와 단절시켰다. 둘 곳 없어 어지러운 마음이 평안을 얻지 못해서 광분한 억새처럼 심란하다. 억새는, 떠나는 혹은 떠나지 못하는 나의 성정을 향해 슬픔을 마구마구 풀어낸다. 이미 오래전 너의 그리움은 내 몸을 점령해서 모세혈관의 끝까지 파고들었다. 친절한 이방인으로 다가와 끝없이 밀어를 속삭이며 새로운 인연으로 나를 품었다. 나는 광포한 슬픔을 바라보며 물결치며 폭발하는 너의 마음을 받았다. 잠시 홀로 외롭고 쓸쓸했다. 이제 시간은 어김없이 추위를 부르고 겨울은 시간마저 얼리리라. 나를 에워싸고 냉동시키리라. 부디 둘 곳조차 없는 그 마음 이제 알겠으니 그만 멈추기를.
바야흐로 너는 오름의 정상에서 영혼의 자유를 만끽한다. 정상 쪽에 머리를 두고 절대 고독을 선포한다. 탕탕한 정신이 풍경을 압도한다. 갈대의 무리는 춤을 추며 네 주변을 별처럼 반짝, 빛을 뿌린다. 길은 세필처럼 가늘고 길게 오름과 오름을 이어서 여기저기 순례자의 영혼과 만나게 한다. 천공의 빛을 정상에서 그대로 뒤집어쓰고 가장 낮은 사람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