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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69910523
· 쪽수 : 306쪽
· 출판일 : 2025-11-14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4
범례 8
프롤로그 9
제1장 사과 분석의 발판 만들기 19
제1절 <가벼운 사과>와 <무거운 사과> - J. L. 오스틴의 논의를 둘러싸고 20
제2절 매너에서 <가벼운 사과>, 그리고 <무거운 사과>로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의 논의를 둘러싸고 35
제3절 사과와 관련된 언어의 문화 간 비교 46
제2장 <무거운 사과>의 전형적 역할 분석하기 61
제1절 책임, 보상, 인간관계 복원 - ‘꽃병 사례’를 둘러싸고 63
제2절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 복원 - ‘강도 사례’를 둘러싸고① 78
제3절 사회 복원, 가해자 복원 - ‘강도 사례’를 둘러싸고② 101
제3장 사과의 여러 측면 파고들기 125
제1절 사과의 정의 시도와 그 한계 126
제2절 사과의 ‘비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여러 특징 140
제3절 진정성의 요구와 사과를 둘러싼 회의론 157
제4장 사과의 전모에 도달하기 171
제1절 비유형적 사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72
제2절 사과란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200
제3절 매뉴얼화의 문제는 무엇인가 - ‘Sorry Works! 운동’을 둘러싸고 242
에필로그 265
주 278
문헌표 291
후기 298
색인 301
책속에서
제 1 장
사과 분석의 발판 만들기
제 2절
매너에서 <가벼운 사과>, 그리고 <무거운 사과>로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의 논의를 둘러싸고
앞 절에서는 오스틴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사과를 <가벼운 사과>와 <무거운 사과>로 크게 나눠 보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본 절에서는 전자인 <가벼운 사과>의 내용에 관하여 더 구체적 분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특히 예를 들어 지하철 사례에서 한쪽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이 고개를 끄덕여 응답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점을 탐색한다. 그것으로 후자인 <무거운 사과>의 특징을 파악하는 단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위치, 기대, 신뢰 –지하철 사례에서 사과해야 하는 이유
다이쇼(大正, 1912년~1926년)·쇼와(昭和, 1926년~1989년) 시기의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는 저서 『윤리학』에서, 지금 본서에서 ‘지하철 사례’라고 말하고 있는 케이스를 다루면서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그 부분을 인용해 보자.
…우리는 의식적·의지적·지능적 등과 같은 규정을 갖지 않는 동작이라도 그것이 인간관계의 계기인 한, 행위가 된다는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과실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이것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지하철 안에서 잘못해서 타인의 발을 밟으면 그 과실을 사과한다. 사과하는 것은 발을 밟은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과실이기 때문에 의지의 결정에 의해 의식적으로 수행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부주의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 결정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주의 결여 때문에, 즉 부작위 때문에 이 과실을 자신의 행위로서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위가 무엇 때문에 행위로서의 의의를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오직 인간관계 속 일정한 ‘위치’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지하철 승객이더라도 승객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일정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행위 방식이 부과되어 있다.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는 동작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이 그것이다. 주의 결여는 위와 같은 행위 방식을 준수하는 태도의 이완(弛緩)이다.
(와츠지[1937]2007a: 359-360)이 인용에서 와츠지가 먼저 지적하는 것은 ‘행위’란 반드시 의지 결정에 의해 의식적으로 수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종종 ‘행위’라는 것을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 궁리하고 지하철 타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그 의지 결정에 근거해 차표를 사는> 등의 의식적·의지적·지능적 종류의 동작으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실’이라는 현상을 생각해 보면 그런 종류의 것만이 행위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야말로 내가 지하철 안에서 비틀거리다 타인의 발을 밟은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내가 저지른 일, 나의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나는 “죄송합니다” 등이라고 말하고 발을 밟은 것을 상대에게 사과한다. 그러면 왜 나는 사과하는 것일까? 만일 지하철이 갑자기 크게 흔들려 서 있던 승객 대부분이 비틀거리고 누군가와 부딪힌 상황이라면, 나도 포함해 아무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손잡이를 꼭 잡거나 발로 힘껏 버티면서 지하철의 흔들림에 대해 주의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이 (혹은 나를 포함한 소수의 승객만이) 제대로 주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비틀거려, 그 결과 상대의 발을 밟았다는 부작위의 존재가 내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의 기본적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점을 지적한 후에 와츠지는 더 나아가 이렇게 묻고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 전부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와츠지의 표현으로는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평소 주의가 부족해서 매일 마시려고 했던 우유를 마시지 않거나, 발매일에 사려고 했던 책을 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하철 흔들림에 대한 주의 부족을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와츠지 자신은 앞선 인용의 후반부에서 인간관계 속일정한 위치라는 관점에서 대답하고 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탈 때 그야말로 ‘승객’이라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 ‘위치에 있다’는 것에는 함께 탄 다른 승객의 기대와 신뢰에 부응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제3장
제2절
사과의 ‘비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여러 특징
+ 미래에 대한 약속 ① - 사과와 약속의 관계
우선 먼저 카와사키가 사과의 정의로 제시한 (1)~(5)의 여러 특징(133쪽) 중 (5)‘미래에 대한 약속’에 관해 여기서 다시 상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특히 <무거운 사과>를 할 때 (모든 케이스가 아니라) 많은 케이스에서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무언가를 약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라든가 “더 이상 당신에게 상처 주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해자의 성의를 나타내는 것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피해자가 안심을 얻기 위한 재료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약속하는 것은 일종의 리스크를 받아들이는 것도 된다. 왜냐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의 불신을 한층 더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서 어느 현(県)의원의 사과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120-122쪽).
어찌되었든 사과 속 미래에 대한 약속에는 앞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는 것뿐 아니라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학자 A. I. 코헨이 예로 든 것은 남편이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처음 저지르고 아내에게 필사적으로 사과하는 케이스이다(Cohen 2020: 33-34).
남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아내에게 전하고 내년 기념일에는 제대로 축하할 것을 약속한다. 구체적으로는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코헨은 나아가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1년 후 남편이 다시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고 바람을 맞혔다고 하자. 즉,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남편은 아내와의 약속을 깬 것이다. 이 점에 관해 코헨이 문제시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사과의 일환으로서 미래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약속을 깬 경우 그 사과는 애초에 사과로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코헨이 볼 때 닉 스미스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스미스에 따르면 흠잡을 데 없는 사과[27]란 “죄송합니다”라고 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완료되는 행위가 아니라 약속하고 그것을 이행한다는 일정 정도의 시간 간격을 갖는 행위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Smith 2008: 144; Smith 2014: 21).
제4장
제 2 절
사과란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 사과의 ‘당사자(와 그 대리)’는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가
앞 절에서 다룬 『에고이스트(エゴイスト)』에서 코스케(浩輔)가 사과한 대상은 류타(龍太)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다른 친족이었다. 또 텔레비전 드라마 『북쪽 나라에서 ’92 독립(北の国から ‘92巣立ち)』의 케이스(본서 167쪽 이하)에서 고로(五郎)는 직접적으로는 타마코(タマ}コ)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삼촌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본서의 강도 사례의 한 버전에서 C 씨는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세상 사람들에게도 사과했다(106-107쪽). 이처럼 사과의 객체(=사과하는 상대)에는 다중성과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사과의 주체에 대해서도 고로가 아들의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있듯이, 그 범위는 확대되거나 애매해질 수 있다.
사과는 손톱을 깎거나 이를 닦는 것과는 달리 항상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행위이다(본서 151쪽). 즉, “사과란 한쪽 당사자가 다른 쪽 당사자에게 하는 행위의 일종인 것이다”(Cohen 2020: 24). 단, 당사자 자신이 아니라 당사자의 대리가 되는 자가 사과를 하거나 사과를 받는 케이스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망한 부모 대신 자녀가 사과하거나 의료 사고로 사망한 자녀 대신 그 부모가 사과를 받는 경우이다. 이 경우 ‘대리’라고는 해도 사과의 내용이 되는 사건과 일정 정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당사자’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도 있다. 단,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자기 자신의 피해에 대해 사과받는 케이스와는 역시 다르기 때문에 그 점에서 구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런 ‘(대리도 포함한)당사자’들의 내용 자체가 때로 애매하거나 매우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이 본 절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포인트이다. 실제, 당사자란 과연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