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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문학
· ISBN : 9788970715926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2-09-21
목차
들어가는 말
자서전이 시작되던 날 -누가복음 2:8-21
거슬리는 말, 그러나 하늘 구름의 소리 -마태복음 3:13-17
존재의 발자국 -요한복음 1:29-42
말이 될(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언어, 회개 -마태복음 4:12-25
행복을 쪼면 단단해질까? -마태복음 5:1-12
머뭇거릴 수 없는 행동들 -마태복음 5:13-20
우리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설명 이전에 계시는 분 -마태복음 5:21-37
신앙의 변덕을 극복하려면 -마태복음 5:38-48
나날이 우리를 살게 한다 -마태복음 6:22-34
어디쯤에 초록의 삶이 있는 것일까? -마태복음 4:1-11
진정 이 땅은 지옥일까? -마태복음 17:1-8
부러진 마음을 위로받을 장소 가장 위엄 있는 선택 요한복음 4:5-42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요한복음 9:1-41
죽음이 사는 묘한 죽음 -요한복음 11:1-44
구차한 죽음을 넘은 기억의 의례- 마태복음 27:11-56
부활의 비어 있는 생각들 -마태복음 28:1-10
감성적 부활 신앙 -요한복음 20:19-31
쓸쓸하고 공허한 것 뒤에 -누가복음 24:13-35
무한한 목소리에의 갈망 -요한복음 10:1-10
불능과 전능의 사이 -요한복음 14:1-14
혼자라는 착각과 신앙실존의 불확실성 -요한복음 14:15-26
이루지 못한 하나 됨의 수치, 반어법적인 하나 됨과 일치 -요한복음 17:1-11
예수인 듯 아닐 수 없는 듯 -요한복음 7:37-39
사랑앓이와 사랑할 이, 그리고 사랑하리 -마태복음 28:16-20
잃어버린 목자시대 -마태복음 9:35-10:8
오래된 존재와 신앙의 화석 -마태복음 10:24-39
환대하는/받는 사람 -마태복음 10:40-42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유희자 -마태복음 11:16-19·25-30
하늘말씀의 근본기분 -마태복음 13:1-9·18-23
가라지를 위한 변론 -마태복음 13:24-30·36-43
머물러야 할 절대적 세계 -마태복음 13:31-33·44-52
몽환적 존재를 넘어서 -누가복음 9:28-36
소음 세상과 진리의 목소리 -마태복음 14:22-33
다르지 않은, 동시에 같지 않은 -마태복음 15:21-28
이름에 대한 긴장과 여유 -마태복음 16:13-20
기억의 부정(否定)과 진부한 신앙언어의 살해 -마태복음 16:21-28
작은 것이 큰 것 -마태복음 18:15-20
용서의 비책, 방책, 대책 -마태복음 18:21-35
양적 가치를 초월한 하늘 나라 -마태복음 20:1-16
그림자와 같은 권위 -마태복음 21:23-32
존재의 목소리가 현실이 될 때까지 -마태복음 21:33-46
하늘 나라에 앞서 -마태복음 22:1-14
종교도 삶도 둥그렇게 -마태복음 22:15-22
고통, 그것은 사랑 -마태복음 22:34-40
신앙현실의 구토증과 비극적인 스승 -마태복음 23:1-12
마치 이미 온 것처럼 -마태복음 25:1-13
모두가 먹기 좋은 맛을 우려내는 사람들 -마태복음 24:14-30
종말의 삶, 배려와 연민 -마태복음 25:31
소란스러운 세계와 오시는/오신 하나님 -마가복음 13:24-37
처음 자리의 부담감 -마가복음 1:1-8
누군가를 위해 멈출 수 있나요? -요한복음 1:6-8·19-28
탄생, 시작의 시작 -누가복음 1:26-38
과거의 예수 아닌 항상 지금의 예수 -요한복음 1:1-14
우리 모두가 결핍된/욕망하는 사람들 누가복음 2:22-40
저자소개
책속에서
종이는 사람보다 참을성이 많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중에서
이 글은 오랫동안 인류의 고전 자리를 차지했던 《성서》조차도 외면을 당하는 시대의 끝물, 그 언저리에서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문학적인 언어에 기대어 말하고자 했던 결과물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읽히고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조각글 속으로 들어가면 필자의 마음과 성서의 세계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어떤 초월의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를 단지 진리체계니 구원의 방식이니 하는 식으로만 접근하면, 아마도 그것은 부담스러운 강요나 강제처럼 들릴 것입니다. 풀이를 한 필자의 목소리도 그리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언어에 앉아 한번쯤 사색해보고 동감이 가는 문장에는 줄을 긋다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려는 생각과 언어를 필자가 어떻게 잡으려 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이 성서를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해석학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알았던 곳에서 살며, 깨우친 곳에서 고개 돌리지 않고, 말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성서의 언어적 사건과 계시는 몫을 다한 것이겠지요. 이미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절대자의 모습이 선연히 비친 것이니까요. 그러자고 우리가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닐까요?
- “들어가는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