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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88971058138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1-10-3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용비어천가>의 정치사상과 편찬 목적/ 박병련
<용비어천가>의 서술 구조와 편집 체계/ 김병선
<용비어천가>의 음악과 그 전승/ 신대철
<용비어천가>, 조선 왕실의 조상에 대한 기록/ 이익주
<용비어천가>와 세종의 지식경영/ 박현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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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용비어천가> 구성의 사상적 배경은 성리학적 정치사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체제 구성이 <주역>을 기초로 하고 있고, <서경>과 <맹자>의 내용이 소박하게 인용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고성(古聖)’을 유교적 학자 집단의 관점에서 정의하지 않고, 현실 정치에 성공한 중국의 명군(名君)들을 그 범주에 포괄했다. 따라서 성리학적 왕도만이 아니라 패도적 군주까지 고성에 포함했으며,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 기피해야 할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다. 하늘의 경우도 ‘하늘=백성’의 유교적 맥락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신령’이라는 전통 신앙의 맥락에서도 사용했다. 그리고 도참과 비기적 성격의 이야기도 긍정적 맥락에서 수록했다. 아마도 <용비어천가>가 조선 후기 순정 성리학자들의 논의에 거의 등장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세종은 <용비어천가>의 구성을 한당 유교와 성리학적 관점(특히 호인과 범조우의 평은 성리학적 요소가 많다)을 비롯해, 백성들의 정서와 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신이(神異)’의 요소를 과감히 채용하여 새 왕조 개창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납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동시에 개국 세력의 단결과 반대 세력에 대한 포용의 논리를 드러냄으로써 새 왕조를 지탱하는 통합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원대한 목적에서 치밀한 계획하에 <용비어천가>를 기획하고 편찬했던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세종 25) 반포된(세종 28) 시기와 <용비어천가>가 편찬되고 완성된(세종 29) 때는 비슷했다. 따라서 <용비어천가>와 <훈민정음>은 거의 동시에 진행된 세종의 프로젝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양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해석, 즉 <훈민정음>을 실험하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지었다는 주장과, 반대로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널리 퍼뜨리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용비어천가>에는 문자에 대한 언급이 두 차례 나온다. 그 하나는 일본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47자를 사용하여 글자를 쓰는데, 부녀자들도 모두 익혀서 알고 있다”는 주석이다. 다른 하나는 금나라에는 “소리는 있지만, 문자가 없었으므로 당시에 특별히 중국음과 서로 비슷한 글자를 빌려 썼다. 예를 들면……”라는 주석이다. 앞의 일본 문자에 대한 언급이 문자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의 의의를 지적한 것이라면, 뒤의 금나라 문자 운운은 한자로 그 나라의 소리를 다 반영해 적을 수 없다는 점, 그에 비추어볼 때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은 매우 우수한 문자임을 넌지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일차적인 <용비어천가>의 편찬 의도, 즉 이성계에 의한 조선왕조의 건국과 태종 이방원으로의 왕위 계승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넘어선 <용비어천가>의 정신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용비어천가>의 제1, 2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용은 땅이 아니라 하늘로 날아올라야 한다는 점, 즉 지도자가 산속에 숨어 있거나 재야에 뒹굴지 않고 제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나라의 근본도 튼튼해져 꽃과 열매가 번성하며, 국운이 넓은 바다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주장이다. 태종이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나라가 복 받는다[國有長君 社稷之福]”면서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충녕대군을 새로 세운 것처럼, <용비어천가>는 뛰어난 인재를 반드시 지도자의 자리에 올려 제 역량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는 리더십에의 강력한 요청(imperative)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