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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상고사
· ISBN : 9788971932063
· 쪽수 : 484쪽
· 출판일 : 2012-06-25
책 소개
목차
책 머리에
첫째마당 꿈꾸는 반도인
01. 우리의 땅, 조선반도
극동의 서울, 조선반도|국토와 국력|굴욕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
02. 반도의 제국 로마
로마의 태동|서구인의 굴절어는 그들 역사의 반영|
라틴동맹에 의한 이탈리아 반도 통일
03. 유대인이 지킨 역사, 역사가 만든 나라
역사를 지켜낸 민족|히브리민족의 역사서, 구약|
히브리민족의 기원은 범법자 집단|성공한 민족
04. 다시 일어서는 조선반도인
살아있는 한민족의 피|올바른 역사는 민족자존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역사 광복은 온다
둘째마당 잃어버린 역사
01. 매국노의 나라
불타버린 사적|신라의 김춘추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죄인 김부식|민족사의 왜곡자 이병도
02. 이족(荑族)의 역사를 서토역사로 호도한 공자
사고를 불태워라|공자의 위서, 서전|맹자의 거짓말
셋째마당 꺼지지 않은 불씨
01. 신화에 묻힌 동방역사
02. 비전된 사재 부도지(符都誌)
부도지의 유래|부도지 26장
03. 일삼지 않고 다스린 무위이치(無爲而治)
서토인의 이상, 무위이치|동양의 개벽과 서양의 창조|
삼신의 무위이치
04. 공구(孔丘)가 표절한 무위이치
동이사람, 공자|서경의 요전(堯典)|서경의 순전(舜典)
산의 민족|날줄과 씨줄로의 부도지와 한단고기
넷째마당 한인천제들의 무대 바이칼
01. 환단고기 그리고 바이칼의 산 흔적
02. 우리 민족의 몇 가지 특성
다섯째마당 신시배달국
신시 연대기
01. 한웅천왕들의 태백산 시대
02. 홍익인간과 인류최초의 책력
신시의 예지
03. <부도지>가 설명하는 지동설
04. 오행론은 천동설이다
05. 신시의 문자
06. 밝달나라의 신하 삼황오제
태호복희(太昊伏羲)|염제신농(炎帝神農)|황제헌원(黃帝軒轅)|
소호금천(少昊金天)|전욱고양(?頊高陽)과 제곡고신(帝?高辛)|
제요도당(帝堯陶唐)과 제순유우(帝舜有虞)
07. 건곤일척의 탁록전
여섯째마당 단군왕검의 조선나라
01. 부도의 땅, 아사달
02. 마한세가
03. 번한세가
04. 북부여
05. 가섭원부여
사족(蛇足)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책 머리에]
8년 전이던가? 한 출판사가 내 사는 움막에 찾아와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변증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갔다. 돌아서서 생각을 하니 일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은 자괴심 때문이었다. 일제 초기에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했고 이유립(李裕笠)이 스승의 유지를 따라 60년 뒤에 세상에 내놓은 책이 <환단고기>다. 그때가 단기 4312년(1979)인데 우리 국토에서 미처 알려지기도 전에 일본의 가지마(鹿島昇)라는 자가 먼저 주해를 놓는 바람에 사단이 벌어졌다.
그래서 세상에 나오자 마자 <환단고기>는 위서니 진서니 하는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가지마가 <환단고기>에 발 빠르게 주해를 놓은 것은 어렵지 않게 까닭을 들추어 볼 수 있다. 과거 식민지 시절에 저들이 ‘조선사편수회’라는 것을 두고 조선의 역사를 멋대로 날조하고 마구잡이로 망가뜨린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조선역사의 뿌리가 되는 <환단고기>가 나왔다면 저들로서는 자연히 급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가지마의 주해는 조선의 뿌리역사를 한껏 훼손하고 폄하하다 보니 지나친 억측과 고의적인 왜곡이 도처에 드러나는 것이어서 차라리 마음이 놓인다. 세상에 어느 학자가 그것을 책으로 쳐주겠는가에 생각이 닿으면 웃음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것에 기대어서 자국의 역사를 끝까지 일천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우리한테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웃어치울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지금 전국에 뿌려진 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는 교수의 80%~90% 이상이 이런 세력이거나 이 세력에 동조하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바로 이 세력들이 부추긴 결과였을 것이다. 용산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서자 초대 관장을 지낸 이가 바로 조선사편수회에서 이시마(今西龍)의 촉탁보조를 했던 이병도의 손자였다. 생각해보라. 이게 정신이 있는 나라인가?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자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광복이 되고 새 나라가 들어설 때에 소위 역사 교과서라는 게 신라를 뿌리로 하는 삼국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민족역사의 중대한 범죄다. 오늘 저 서토인들이 고구려를 자기들의 부속국가로 자리매김 하려 드는 것은 배달나라 조선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긁어 없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바로 이병도가 교과서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건 천하가 아는 일 아닌가?
오늘 대한민국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광복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나라살림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들어 쓴 것이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서 나라꼴을 내리 엉망으로 몰아간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대한민국을 걸터타고 경영하면서 대부분의 기득권을 나누어 갖는다. 정치, 재벌, 사법, 언론, 그리고 많은 분야에서 내놓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늘 분해하는 내가 어째서 <환단고기>를 확실한 진서(眞書)라고 변증할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30년 동안 상고사를 해왔다. 삼국사기는 기왕에 모화주의자가 남긴 찌꺼기여서 우리의 혼이 없고, 삼국유사는 혼이 있으되 4565년의 배달 역사와 2096년의 단군조선 역사가 들어있질 않아 -합해서 3660년-민족의 뿌리를 알 수가 없다. 말하건대 한 국가역사는 곧 그 국민을 먹여서 살리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수록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도 언제나 역사라는 버팀목이 있어서 가능해진다. 그런 법이다. 여기에 역사의 참 뜻이 있다.
연변대학의 조선문제연구소에 적을 두고 흑룡강 일원의 대흥안령 산맥과 소흥안령 산맥을 누벼 뒤지고 다닐 때는 조선민족의 뿌리에 붙어 있는 비늘조각을 줍느라 아무 겨를이 없었다. 몽골족 허절족 시바족 어원커족 다굴족 어룬춘족을 몇 차례씩 더듬고 다니면서 그들이 우리처럼 몽골반점을 가진 형제들이라는 것과, 저들 풍속습관이 한 뿌리에서 갈라진 다른 가지라는 것을 알고 혼자서 기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드러나는 조선민족의 뿌리 비늘이 뱀의 비늘이 아니라 용의 비늘임을 확인하면서 지치는 발걸음에 애써 힘을 모았던 추억도 그립다. 그렇게 쏘다닌 세월이 4~5년이다. 그 후 다시 황화와 양자강 지역을 두루 밟고 다닐 적에 자꾸 돌아다 보이는 것은 불타버린 문적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백제가 망할 때 사비성의 역사창고가 불타지 않았던들, 또 고구려가 함락되던 날 평양의 사고가 살아남았던들 오늘에 와서 민족 역사를 펼쳐보는 일이 이토록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달국의 제후였던 삼황오제(三皇五帝)들의 능묘(陵廟)가 오늘 엄연히 서토대륙의 복판을 누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는 서토대륙이 그대로 배달나라 조선의 국토였다는 심증도 거듭거듭 확인되고 있었다. 일찍이 공자가 <서전(書傳)>을 저술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안향이 주자학을 수입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다르게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흘러간 물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으니 이제 와서 그런 바램이 무슨 소용이랴.
미움과 분노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다. 혼자서 가지는 야속한 노여움에 울음을 씹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으로 자신을 추스르면서 견뎌 온 세월이었다. 그렇게 나름으로 애써 온 30년의 결과를 이제 단재 선생께 돌려드린다.
4345년 5월
채운산 우거에서 지 승
[사족(蛇足)]
뱀한테 발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뱀을 그리고 나서 발을 그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지금 이 책의 경우가 그렇다.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으니 전체를 바르집는 한 마디를 두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다.
이 책은 배달민족의 뿌리를 더듬어낸 우리들의 태 집 소식에서 강보에 싸여 젖을 먹고 걸음 발을 타던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그리고 율려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율려의 가락을 타고 출렁거리면서 여기까지 밀려온 우리들의 상고시절 이야기다. 아직 문자가 없던 어둠의 시대여서 혈거(穴居)로 지내던 여러 만 년의 소식을 알 수가 없고, 더러는 인신(人身)을 희생으로 삼아서 천지신명의 비위를 맞추었을 시절의 제사내용도 짐작을 할 수가 없다.
불을 발견한 후 문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저 석기시대의 살림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초기 원시문명의 생활이 어떠했으며 그 적 사람들이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여전히 캄캄하기로는 매일반이다. 그러다가 문명의 새벽이 오고 어슴푸레하게 밝아지는 여명을 따라서 사람의 자취가 드문드문 드러나기 시작하니 이른바 신화의 시기다.
부도지가 전하는 신화는 우리 배달민족의 첫 살림터가 파미르고원이었다고 한다. 땅에서 솟는 지유를 마시고 살다가 오미(五味)의 재앙을 만나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로 드는데 우리의 조상인 황궁씨는 하필 북풍의 칼바람이 모질게 닿는 천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부족들의 맏형자격으로써 오미의 재앙에 책임을 통감하고 수계재불(修戒齋?)의 완성을 위해 수행조건이 가장 열악한 북녘 풍토를 찾아든 것이다.
파밀고원을 떠나서 천산산맥을 지나 알타이산맥을 밟고 바이칼에 닿으니 그 때가 ?인천제들의 시기다. 딱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뒤에 오는 여러 조건이나 조짐으로 보아서 바이칼 시절에 이미 볼만한 문명살림을 일으켰던 것은 말 할 수가 있다. 지금 흥안령산맥에 흩어져서 사는 소수민족들, 이를테면 몽고족 만주족 허절족 시바족 오르쪽족 어원커족 다굴족들은 하나 같이 자기들의 조상을 퍼르컨으로 말한다. 퍼르컨은 곧 바르칸 ─??─바이칼에서 변형된 이름이다.
퍼르컨이 세상을 창조했고 사람살림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오늘 인류문화사에서 말하는 이들 일곱 민족은 모두 바이칼에서 살다가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7천 년 전에 바이칼이 침하하면서 기후풍토가 고장을 일으키자 앙가라강에 뗏목을 띄우고 살 곳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후예가 그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영민하고 선택받은 ?웅족은 흑룡강을 건너고도 흥안령에 머무르지 않고 곧장 대륙의 중심부에 있는 섬서성의 태백산으로 짓쳐들어 가서 제단을 챙겨 세우고 나라를 세우니 그 곳이 신시(神市)요 그 나라가 ?달나라 -倍達國- 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단서가 아직도 태백산 정상에 있는 ?웅천왕의 사당이요 그 ?웅천왕들이 제후로 봉한 삼황오제(三皇五帝)들의 능묘(陵墓)와 사당이 오늘도 여전히 대륙의 복판을 타누르고 있다. 서토인들은 삼황오제를 늘 자기들 문명의 비조(鼻祖)로 선전하지만 그러나 그 주장들이 사개가 전혀 맞지 않은 것은 그 어른들이 바로 우리 조상이요 그들의 조상이 아닌 탓으로다.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은 제18대 커불단(居弗檀)?웅천왕의 아드님이다. 사실대로 하면 그 어른이 제 19대 ?웅천왕이라야 옳다. ?웅천왕들의 법통을 고스란히 잇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굳이 왜 새 나라를 세우고 조선─처음 샌 나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고립어를 쓰는 저 원주민들의 고질 병통인 모계사회의 습관과 인습을 말끔히 없애고 명실공히 부계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제 5세 태우의(太虞儀)?웅천왕의 열 두 번 째 아드님인 태호복희씨가 모계사회인 여와씨의 여(黎)나라에 진(陳)이라는 국명으로 봉토 받고 나서 천 년 만에 이루어내는 장한 쾌거였기 때문이다.
그 복희씨 이후 삼황오제가 모두 부계의 법속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데, 삼황오제 외에도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역륙씨 여연씨 혁서씨 존노씨 혼돈씨 호영씨 주양씨 갈천씨 음양씨 무회씨.... 등의 현자들이 함께 애쓰고 수고했으리라고 하는 그런 저간의 소식들이 이 책 안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반도에 갇혀서 지지리도 못난 오늘에 닿았는가. 김춘추가 머저리 외교를 하면서 조선의 국토를 당나라에 거의 내어준 삼국통일을 만들더니,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나오고, 이병도의 식민사학이 나오고.... 드디어 허리 잘린 국토에 괴뢰정권이 둘로 나뉘어서, 한 켠의 인민은 배고픈 짐승으로 죽고, 또 한 쪽은 친일파 친미파들이 기득권을 챙기는, 그래서 나머지 국민은 허섭스레기로 버려지는 오늘을 만들었는가. 이 국토는 분명 단군의 국토인데 왜 국민이 설 자리를 잃어 버렸는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는 피가 차갑기 때문에 언 땅에 웅크리고도 얼어 죽지 않는다. 그 개구리를 찬물이 들어있는 냄비에 넣고 모락모락 느린 속도로 불을 지피면, 물이 더워져서 김이 날 지경이 되어도 여전히 헤엄을 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김이 나는 물에 넣었다면 즉시로 죽겠지만 개구리는 냉혈이기 때문에 찬물인 줄을 몰랐고, 물의 온도가 변하는 대로 적응을 한 결과가, 제가 죽을 환경을 당해서도 여전히 체감을 못한다는 이야기다.
제 주권과 명분을 송두리째 협잡 당하고, 가지가지 수모와, ‘별난 가난’의 벼랑으로 내몰린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득실대는 대한민국은, 알아 갈 수록 ‘개구리 냄비’라는 혐의가 짙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들어 쓴 결과는 박정희의 공화국이 가능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이명박의 세상이 되는 데에 이르렀지만, 이토록 국가가 망가져서 도저히 국민이 살 수가 없는 환경인데도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해보자는 소리는, 이제 어느 구석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박정희와 이승만을 내놓고 찬양하고 그리워하는 수구세력들의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조·중·동으로 일컫는 거대 언론의 작태가 빚어낸 치욕스런 결과물이다.
한 국가의 언론은 사람 몸의 피에 비교될 수 있다. 피가 맑으면 무엇을 먹어도 건강하지만, 피가 오염이 되고 나면 천하에 없는 영양식으로 장복을 한대도 온갖 병이 유발되는 법이다. 그 논리의 잣대로 잰다면 이 나라의 모든 병통은 조·중·동이라는 수구언론에다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천연덕스런 종교의 거짓 말, 전혀 가망이 안 보이는 정치판의 비리, 수도 없이 분칠을 하고 얼굴을 바꾸지만 ‘역시나’로 되풀이 되는 사법의 협잡, 아예 염치를 모르는 재벌의 이기주의, 민족역사와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타성 등은, 옳게 선 언론만 있으면 애초에 싹수가 자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운수 사납게도 반민족적인 데다, 반역사적이고, 반언론적인 조·중·동한테 코를 꿰인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에게 알 권리를 제공해야 할 그들은, 제 언론의 본분을 져버리고, 오히려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려고 작정을 하고 나선 꼴이다.
프랑스는 겨우 5년 동안 나치의 억압을 치렀지만, 광복이 되고 나서 국가가 합법으로 처단한 부역자가 2만이 넘었다. 그 5년 동안 레지스탕스들이 비공식으로 살해한 숫자도 거의 그 수준이었다는 말이 있다. 비겁자들에게 쓴 맛을 안기고 난 당시의 드골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또다시 식민지 시절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 두 번 다시 배신자는 없을 것이다.’ 한 때 비열한 짓거리를 한 죄를 그만큼 철저하고 혹독하게 다스렸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 36년을 지나왔는데도, 민족의 반역자를 한 개도 처형시킨 일이 없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이 무슨 공로가 있는 것처럼 국가적인 명분으로 포장 되었고, 뒈져서 송장이 되면 당연한 듯이 국립묘지로 향했다. 거짓이 진실을 디디고 서서 그것이 정의인 것처럼 목청을 돋우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을 견디면서도 율려(律呂)의 조(調)가 바뀌는 과도기 현상이라고, 옛 조선의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가 마지막으로 맞아 떨어지는 중이어서 그렇다고, 은사(隱士) ??선생은 말씀한다. 독일에 축구 유학을 갔다가 은사(恩師) 한스 렝크의 권고로 단군에 입문했다는 ??은, 선천(先天)의 운세가 다하고 바야흐로 후천개벽 운이 다가서는 중이라고, 증산(甑山) 상제(上帝)가 천지공사를 그렇게 매듭지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일축해 버린다. 그러나 사람의 숨결로 만들어 가는 역사에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분노가 없이 어떻게 하늘의 혁명인들 저절로 가능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