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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노동운동
· ISBN : 9788971932551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20-12-30
책 소개
목차
발간에 부쳐
프롤로그
1장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 1945년
-. 출생
-. 오사카에서 보낸 청소년기
-. 조선펌프제작소 입사
-. 대한노총의 결성과 참여
-. 1946년 대한노총 결성 배경
-. 9월 총파업과 전평 파괴공작
-. 전진한
-. 대구로 내려가다
-. 한국전쟁
2장 이승만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다
-. 조방파업대책위원회
-. 노동관계법 제정
-. 결 혼
-. ‘이승만 유시’ 위반으로 제명
-. 대구 내외방직쟁 대책위원회 활동
-. 대한방직노조 쟁의
-. 대한노총과의 결별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3장 4월 혁명과 5·16 쿠데타
-. 4월 혁명 직전
-. 4월 혁명 직후
-. 7·29 선거
-. 교원노조 결성 투쟁
-. 제일모직 노동쟁의
-. 이일재
-. 2대 악법 반대투쟁
-. 한국노련과 한국노협
-. 5·16 쿠데타
-. 쿠데타세력에 의해 구속된 김말룡
-. 한국노총 결성 무효소송
-. 한국노련의 부활
-. 노동법 개악
4장 한국노총 민주화를 위한 기나긴 여정
-. 1960년대의 노동계
-. 박정희의 회유
-. 전국연합노조 위원장
-. 사카린 밀수 사건
-. 희 망
-. 대한조선공사의 파업투쟁
-. 가톨릭노동청년회(JOC)
-. 전태일의 분신
-. 세 차례 노총위원장 선거
-. 유신체제와 한국노총의 어용화
-. 중정이 ‘간택’하는 한국노총 위원장
5장 명동노동문제상담소 소장 시절
-.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
-. 민초들의 난방비
-. 이냐시오
-.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 동일방직 사건
-. 오원춘 사건
-. 명동노동문제상담소
-. 명동노동문제상담소 해산
-. 사목교서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하여’
-. 천주교 노동법개정추진위원회 조직
-. 1980년대 김말룡의 삶
6장 국회의원이 되다.
-. 신민주연합당
-. 민주당의 단골 ‘조사단장’
-. 박창수 열사 진상규명 조사단장
-. 원진레이온사태 조사단장
-. 해고노동자 원상복직 지원대책위
-. 철도・지하철노동조건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한국통신노조에 대한 공권력 투입 반대와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범국민대책위
-. 조수원 열사 장례대책위원회
-. 故 김시자 열사 분신대책위원회
-. 노동운동 관련단체 지원활동
-. 국회노동위 돈봉투 사건
-. 2차 ‘꼬마 민주당’
-. 노동법 개정
-. 노동계의 큰 별, 황혼에 지다
■ 에필로그
■ 주석
■ 김말룡 연보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프롤로그
............................
김말룡의 ‘노동천시에 대한 저항’은 대한노총 가입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직장이던 영등포 소재 조선펌프제작소의 임금인상투쟁을 시작으로, 10월 인민항쟁 직후 머물게 된 대구지역 사업장들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 관여하였다. 하지만, 노동자를 탄압하는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없는 그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좌절은 그를 전략가로 만들었다. 70년대 세 차례나 한국노총 위원장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위원장선거를 불법이라고 고발한다. 그러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사까지 쫓아내는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는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김말룡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영세를 받고 ‘이냐시오’가 된 김말룡은 명동성당 한 귀퉁이 건물에 명동노동상담소를 차리고 억울한 노동자들을 보듬어 안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산재를 입고도 하소연할 곳을 못찾은 노동자들에게 끝까지 달라붙어 보상을 얻어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찾아오는 노동자들을 친근하게 대했다. 새벽같이 전화를 해도 볼멘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농성장에 찾아가면 일장연설이 아닌 현장의 소리를 들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산재투쟁에 함께 했다. 그 외에도 쓰레기 매립시설, 정수장 수질관리, 골프장 건설억제 등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으로써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외면했던 많은 일들을 해냈다.
1993년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위증혐의로 위기에 처해있던 한국자동차보험이 노동위 위원들에게 돈봉투 로비를 한 것을 폭로한 그의 용기는 동료 국회의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의 나이 69세. 쉴 만도 한 나이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20대 청년노동자 조수원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고, 한일병원의 젊은 지부장 김시자는 분신한다. 김시자는 생전에 김말룡을 만나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는 방법과 노조의 민주화에 대해 의논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4월 ‘신노사관계구상’을 발표한데 이어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발족시켜 노동법 개정을 들고 나왔다. 노개위를 거쳐 정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자본가들의 입맛에 맞는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파업기간 중 무노동무임금, 노조의 정치활동금지 등의 독소조항이 들어 있는 법안이었다. 노동자들은 법안의 철회를 주장하며 총파업을 준비했다. 노동법 개정에 평생을 바쳐온 김말룡에게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1996년 10월 3일, 그는 전날 늦은 밤까지 민주노총에서 열린 노동법대책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자택 근처 아차산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심정지로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내자는 결의의 장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한국노총 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고 힘껏 치켜 올렸다. 그해 12월 26일 새벽 여당의원들은 김영삼 정부가 마련한 노동법 개정안은 안기부법과 함께 야당 몰래 날치기 통과시키자, 이는 노동계 총파업을 촉발하여 40일간 350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다음해 1월 21일 노동법의 국회 재론을 약속하였고, 국회는 3월 13일 제정의 형식을 빌어 날치기법의 독소조항을 원위치하는 재개정에 이르게 된다. 이 재개정으로 한편으로는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3자 개입 금지조항이 삭제되고, 노동조합의 정치참여가 인정되고, 공무원과 교원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근거가 마련되었다.
...................................(중 략)
우리나라에서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인권'이란 말들이 생겨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