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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88972751724
· 쪽수 : 204쪽
책 소개
목차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009
작품해설 190
작가의 말 20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옷장을 열고 여분의 옷과 신발을 생성한 나는 욕실로 들어가 구식 샤워기를 틀었다. 청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상현실 안이건, 물리 공간 안이건, 몸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면 더 손쉬운 방법이 얼마든 있다. 난 그저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뜨거운 물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호텔에 있는 고풍스러운 기기들은 대부분 이런 쾌락을 위해 존재했다.
처리반의 작업은 아르카디아나 엘리시움과 같은 양로원 도시에 모이는 한가한 관광객들이 쫓아다니는 구경거리 중 하나이다. 도시 여기저기에 유령들이 출몰하고 제복 입은 공무원들이 그 난처한 상황을 수습하려고 따라다닌다. 처리반 직원들은 모두 평균 키보다 작고 (소행성대 기준으로 보면 더 작다)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에 실수투성이이고 수다스러운데, 모두 의도적이다. 도시는 처리반의 작업이 무성영화 시대 코미디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심지어 그들의 말과 행동은 보통 사람들보다 10분의 1 정도 가속되어 있다. 보글보글 와글와글 우당탕탕.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내게 동료들을 희생해가며 구출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럴 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재미있을 이유가 있다면 둘 중 하나다. 재미있는 무언가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붙었거나 내가 내가 아니거나.
잠시 후자가 당겼다. 이게 20세기 영화 속이라면 그게 답이었을 것이다. 연방 우주군이 나라고 들고 온 것은 몸이 다 타버린 머리뿐이었으니, 그 안에 든 무언가가 자신을 배승예라고 믿는다고 해서 사실이라는 법은 없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 매력적이기도 했다. 내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억지로 끌고 다녔던 배승예의 삶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