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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대리전](/img_thumb2/9791130663647.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30663647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5-02-24
책 소개
목차
대리전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5층에 올라가자마자 나는 낙천주의자가 되기엔 최악의 시기였다는 걸 깨달았어.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몇 개월 전에 대행인이 된 엔지니어의 시체였어. 시체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두개골에는 커다란 망치로 후려쳐 뚫은 것 같은 구멍이 나 있었어. 시체의 허리엔 다른 시체의 것이 분명한 다리 한 쌍이 올려져 있었어. 리놀륨을 깐 바닥은 핏방울로 그린 잭슨 폴록의 그림 같았어.
달아나려 했는데 갑자기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소리가 나는 오른쪽 구석을 바라보았어. 이틀 전에 내가 관광 스케줄을 짜준 바로 그 외계인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외계인이 조종하는 숙주가, 왼쪽 팔로는 안경 쓴 여자의 허리를 휘어 감고 오른손으로는 PVC 파이프 끝에 손전등을 묶어놓은 것 같은 기계를 여자의 머리에 대고 서 있었어. 여자가 집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숙주는 끽끽거리는 4-2표준어로 계속 나에게 뭐라고 지껄였어.
그 여자는 너였어. 이번엔 너와 눈이 마주치는 바로 그 순간 너를 알아봤어.
그때까지 멍하게 허공을 향하고 있던 숙주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어. 놀랍게도 그 얼굴엔 인간적인 감정 비슷한 게 떠 있었어. 숙주는 재갈을 문 포로처럼 눈과 표정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는 것 같았어.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전에 숙주가 먼저 행동을 개시했어. 갑자기 한 손으로 나를 뒤로 밀더니 식당가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거야. 그 순간 몸집이 작고 굉장히 빨리 달리는 누군가가 숙주의 앞을 가로막았어. 숙주는 중간에 멈추어 서서 비틀거렸고 그 사람은 곧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어.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해결사들 중 한 명이라는 건 분명했어.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어. 뒤로 완전히 꺾인 숙주의 머리가 부러진 목에 매달린 채 덜렁거리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