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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2757740
· 쪽수 : 360쪽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 7
바닷속으로 들어가나요? / 13
풀지 못한 수수께끼 / 41
도망 끝의 노숙 / 69
묵은 좁쌀 되가웃 / 99
하늘의 괴물 쌕쌕이 / 129
고개 젓는 군관 / 161
용산이 다 탄다! / 183
시계는 자고 의사는 없고 / 209
머나먼 구름 / 237
산등성이의 남향 참호 / 263
그까짓 석 달을 못 참아 / 291
그러던 하늘은 아니러뇨 / 31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쌀을 가마니로 들여놓고 살면 원이 없겠다는 게 입버릇이엇던 모친은 늘 꽁보리밥을 들었다. 삶은 보리쌀에 흰쌀을 얹어놓고 밥을 지어서 위쪽 쌀밥을 가족에게 퍼주고 나면 맨 아래 꽁보리가 당신 몫으로 남았다. 쉰 꽁보리밥을 냉수로 씻어서 드는 것을 본 어릴 적 여름날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옛날의 가난과 뒷날이 가난 극복을 간과 내지는 과소평가하는 거룩한 이들에게 흔쾌히 동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자랑할 것도 못 되는 소싯적 경험 때문이다. 절대 빈곤의 극복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왕년에 한가락 하고 살던 이들의 자랑스러운 후예들이라는 것이 나의 관찰이다.
지금 옛이야기를 하면서 그 여름의 지게질과 산행이 그래도 신체 단련과 시련 대응능력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니냐 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없었던 것보다 낫지 않으냐는 느낌이다. “삶이란 병정 노릇하는 것Life is being a soldier"이란 말로 스토이시즘의 요체를 정의하는 관점이 있다. 세상살이를 수자리살이로 파악하고 수용하는 것인데 내가 살아온 삶의 실감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것을 스토이시즘의 훈련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받는 것이 내 노년이 지향하는 소극적 세계긍정의 방법이요 형식이 돼버린 것 같다.
살다 보면 절망감 비슷한 것을 겪게 마련이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깊으면서도 곧 담담해지는 경우도 있다, 빨간자위 눈을 하고 단신 마스막재를 넘어와서 닫힌 병원에 헛걸음을 두 걸음이나 하고 나니 맥이 빠지고 속상하기 짝이 없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시퍼런 젊은이가 픽픽 쓰러지는 판국에 안질 때문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하면 핀잔 받을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의 떡과 행운이 커 보이듯이 내 고뿔이나 불운이 커 보였다고 해서 누가 내게 흰자위를 굴릴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