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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2758792
· 쪽수 : 308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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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그는 아침 약이 입 안에서 녹을까 걱정되어 발작적으로 기침하는 체하며 그것을 손수건에 뱉어 냈다. 약을 안 먹으니 활기와 더불어 분노와 격분도 더 차올랐다. 추측과 욕망의 바퀴가 더 빨리 회전하기 시작하자 더 많은 힘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이 아주 이탈해 버려야 회전이 멈출지 알지 못했다. 햄프스티드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직후에 느낀 고통으로 되돌아가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제발 그것만은 다시 겪지 않기를, 견고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가 발을 디디고 선 곳은 기껏해야 잔인하고 성마른 어린애에게 곧 해체될, 맞추다 만 조각 그림 같다는 느낌, 무엇보다 그가 바로 그 어린애라는 그 최악의 느낌만은 제발 다시 없었으면─모든 것의 배신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구에게 있지 않았다. 그 공포, 결국 공포스러운 것은 그의 정신이 작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한 사람들을 배반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딸들은 그런 그를 미워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수 있고, 닥터 밥은 기회를 포착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다. 상황이 달랐다면 던바는 선 밸리 경제 포럼이나 어느 재무장관과의 대화에서 그것을 ‘진취성’이나 ‘결단력’이라고 일컬었을 것이다. 배반의 뒤틀린 속성을 체험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격분한 아버지요 분개한 환자인 바로 그였다. 이제 공정한 운명이 그를 얼음 덮인 바위의 제단으로 끌어다 놓았다. 깃털 달린 제사장이 그의 배반한 심장을 뜯어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것은 이미 죄의식과 슬픔의 압박에 못 이겨 터지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는 온몸을 뻗어 진흙 위에 엎드려 풀과 돌을 잡고 땅에 달라붙은 채로 계속 있었다. 손에 잡은 것을 놓을 엄두가 안 나, 발끝은 땅을 파고들고 근육은 경직되었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간 개념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뒤틀렸다. 그 시간은 악몽의 친숙한 권위를 가졌다. 그래서 어머니의 형벌적 분노의 분위기 속에 얼마나 오래 잠겨 있었는지 판단할 수조차 없었다. 그 분위기는 시간의 밖에 존재하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 일은 지나갔지만 그로서는 끝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 시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론 무한과 우주와 같은 개념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지만 영원한 벌에 대한 아주 기분 나쁜 예감만 남기고 금방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