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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2758846
· 쪽수 : 23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래도 엘리너에게 데이비드는 영국의 이류 속물들이나 그들의 먼 사촌들과는 달라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 빈자리를 채우려고 급히 부를 경우에 대비하거나 주말을 보낼 준비를 하고 할 일 없이 빈들거리는 족속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것도 아닌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추억이었는데, 사실은 그것마저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엘리너는 데이비드를 만났을 때 자기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데이비드에게서 이제는 이해심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변화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돈으로 자기가 누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생활 방식에 대한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라는 유혹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엘리너는 노력했다.
_「1」
패트릭은 우물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손잡이가 금색인 회색 플라스틱 검을 들고 다랑이의 담 너머로 삐져나온 분홍색 쥐오줌풀 꽃을 획획 치면서 갔다. 회향풀 가지에 붙은 달팽이를 보면 검으로 가지를 내리쳐 떨어뜨렸다. 달팽이가 죽으면 얼른 짓밟고 달아났다. 코를 푼 것처럼 온통 눅진눅진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죽은 달팽이를 보러 되돌아갔다. 등껍질이 깨져 무른 살에 들러붙은 것을 보고는 자기가 한 짓을 후회하곤 했다. 비 온 뒤 달팽이를 으깨 죽이는 건 공평하지 않았다. 달팽이는 물방울을 흘리는 잎 아래 생긴 작은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뿔을 뻗고 놀기 위해 나올 따름이었으니까. 뿔에 손을 대면 달팽이는 뿔을 움츠렸고 패트릭도 덩달아 손을 움츠렸다. 달팽이에게 패트릭은 어른과 같았다.
_「2」
패트릭은 포도즙 압착기 위에 이르자 아래를 보았다. 두 개의 강철 롤러가 맞물려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포도즙으로 얼룩진 롤러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포도를 압착했다. 공중 통로 난간의 하단은 겨우 패트릭의 턱 높이였다. 무척 가까이 느껴지는 압착기를 내려다보며 사람 눈도 반투명의 무른 젤리로 이루어진 포도송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얼굴에서 눈이 떨어져 나가 압착기 롤러에 으깨질 것만 같았다.
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