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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에세이 1

동양철학 에세이 1

(혼란 속에서 피어난 철학의 향연, 개정증보판)

김교빈, 이현구 (지은이), 이부록 (그림)
동녘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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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에세이 1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동양철학 에세이 1 (혼란 속에서 피어난 철학의 향연, 개정증보판)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동양철학 일반
· ISBN : 9788972977148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4-05-20

책 소개

스테디셀러 <동양철학 에세이> 1권의 개정판이 2권 출간과 더불어 시리즈로 새롭게 선보인다. 대학 신입생과 일반인들의 동양철학 입문서로 기획되었던 <동양철학 에세이> 1권은 세월이 흐르면서 독자 연령층이 점차 넓어졌다.

목차

개정증보판을 내며
책머리에

바로보기…우리들의 동양철학
공자…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자…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묵자…약자를 지키는 방패
장자…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맹자…유가의 파수꾼
순자…동양의 프로메테우스
법가…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하다
명가…상식을 부순 사람들
농가…농사꾼의 영원한 벗
주역…점쟁이와 철학자
돌아보기…남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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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교빈 (엮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서대학교에서 교무처장, 기획처장, 학장 등을 지내며 34년 재직 후 정년을 했고, 한국철학회 회장,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인문콘텐츠학회회장 등을 지냈으며,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뉴욕주립대학교와 국립비엔나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동양철학에세이』, 『한국철학에세이』,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의 저서와 『중국고대철학의 세계』, 『중국의학과 철학』, 『기의 철학』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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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부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의과학연구소 편집위원 및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고전의 품격》, 《최한기의 기철학과 서양과학》,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 등이 있고, 김교빈 교수와 함께 집필한 《동양철학 에세이》 1권과 여럿이 함께 지은 《박물관에서 꺼내온 철학이야기》, 《기학의 모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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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록 (그림)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드로잉, 설치, 그래픽아트, 카툰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시각이미지 생산자로서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인사미술공간, 아르코미술관, 경기창작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신호탄전>(국립현대미술관), <1번 국도>(경기도미술관), <굿모닝미스터오웰2014>(백남준아트센터), <개성공단>(문화역서울284)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지은 책으로는 《내 몸이 사라졌다I Lost My Hand》 《기억의 반대편 세계에서_워바타》 《세계인권선언》 《스티커 프로젝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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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묵자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은 적(翟)입니다. 공자·맹자·순자·노자·장자는 잘 알려져 있지만 묵자는 약간 생소한 느낌이 듭니다. 묵자는 태어난 나라도 불분명하고, 태어나고 죽은 해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공자보다 조금 뒤, 맹자보다 조금 앞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사마천의《사기》에도 묵자는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묵자의 사상이 지배층에게 반가운 사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묵자의 성이 본래 묵씨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묵(墨)’ 자에는 검다는 뜻이 있고, 또 붓글씨 쓸 때 사용하는 먹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는 그가 묵형이라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묵씨라 불렸다고 주장합니다. 묵형이란 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먹으로 떠 넣는 형벌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도둑질을 하면 얼굴에 ‘도(盜)’ 자를 문신처럼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나라에서는 지배층을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고, 피지배층에게만 형벌을 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묵자는 형벌로 다스려지는 하층민이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
묵자 사상은 피지배 계층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공자 이후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맹자가 “세상이 양주와 묵적의 주장으로 가득 찼다”라고 한탄한 것을 보면, 당시 묵자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한비자》, 《순자》, 《장자》 같은 책에서도 ‘유묵’이라고 하여 유가와 묵가를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 ……
묵자는 춘추 전국 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상을 펼쳐 보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힘있는 제후들은 대부분 그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비천한 계층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의 사상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부국강병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민중을 옹호한 묵자의 사상은 진나라에 의한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서 약해지기 시작했고, 통일 이후 중앙 집권적 전제주의가 강화되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묵자 사상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고증학자들에 의해서이며, 오늘날 중국에서는 사회주의와 유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활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
묵가 집단을 이렇게 강한 힘으로 결속시키고 끌고 나간 철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 철학의 핵심은 겸애와 교리였습니다. 겸애는 서로 사랑하자는 뜻으로 정치적 평등의 요구였고, 교리는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의미로 경제적 평등의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겸애가 이루어지면 교리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묵자는 겸애의 반대를 별애라고 했습니다. 겸애가 무차별적인 사랑이라면, 별애는 차별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면 묵자는 무엇으로부터 겸애 철학을 끌어냈을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묵가 집단에는 하급 무사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학자는 묵자의 무차별적인 사랑 철학이 바로 이 하급 무사 집단의 행동 양식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군인들이 전쟁을 한다고 해 봅시다. 특히 묵가 집단처럼 방어 전쟁을 할 때 성벽에 둘러서서 적을 맞아 싸우는데, 성의 어느 한쪽이라도 무너지는 날이면 결국 다같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편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며, 서로 사랑으로 아끼고 돕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극한 상황에서 동고동락하던 체험을 철학화한 것이 겸애라는 주장입니다. 묵자는 겸애란 자기를 위하듯 친구를 위하고, 내 부모를 위하듯 친구의 부모를 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차별적인 사랑이라면 자신을 위하듯 친구를 위할 수 없으며, 내 부모를 위하듯 친구 부모를 위할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은 이기심에서 왔습니다. 이기심은 본질적으로 차별적인 사랑을 낳으며, 차별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 자기 집안,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묵자는 지배 집단의 차별적 사랑 때문에 생긴 침략 전쟁의 물결을 거슬러서 무차별적 사랑에 기초한 전쟁 반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묵자의 전쟁 반대론은 겸애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구호도 작은 실천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묵가 집단은 그러한 전쟁에 맞서는 방어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방어를 위한 무기들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묵가 집단의 이런 모습을 가리켜 방어전을 위한 전쟁 청부업이라고도 했습니다.
묵자가 전쟁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이며,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자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는 지배 집단을 도둑에 비유했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간 좀도둑이 처벌을 받는 것과 달리, 남의 나라를 침략한 큰 도둑은 오히려 칭찬을 받는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열 사람을 죽이면 인간 백정이 되는데,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을 죽인 자는 도리어 영웅이 되니 어찌 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
묵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집단을 만들었고, 강자에 맞서 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혁명을 꿈꿀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은 그의 사상에 혁명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묵자가 피지배 계층에 의한 혁명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공격 전쟁을 의미하게 되고 공격 전쟁은 겸애에 어긋나는 것이니, 스스로 자기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점이 묵자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내부 요인입니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묵자 사상은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199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았습니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헌신적인 자기희생과 꿋꿋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에는 또 다른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기심입니다. 사회주의는 강한 조직력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지탱되었고, 경험과 실천이 그 사회의 추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직력에 틈이 생기고, 그 틈을 이기적인 욕구가 뚫고 나왔을 때 사회주의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묵자도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묵가 집단을 강철 같은 대오로 이끌어 갔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늘의 뜻이라는 외피도 있었지만, 주된 동력은 이상 사회에 대한 갈망과 꿈이었고, 이를 통해 내적 성실성과 아울러 외적인 배척력을 함께 가질 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즉 팽팽한 긴장이 강한 단결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춘추 전국의 혼란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혼란의 종말은 지배 집단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강화하였습니다. 혁명 이론이 없는 묵자의 철학이 이런 상황에서 더는 지탱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틈을 이기적 욕구가 그대로 놓아둘 리도 없었습니다. 결국 2500여 년 전 중국의 획기적인 사상은 꿈으로 남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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