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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3815937
· 쪽수 : 245쪽
· 출판일 : 2010-09-27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야. SF랑 다를 바 없어.”
“인생이 뭔지 알아?”
“무시하지 말고 들어줄래? 예를 들어 내가 발가락이 붙은 채 태어난 건 분명 사소한 우연이었어. 유전자 레벨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지. 그런데 만약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네 인생도 바뀌었겠지.”
“그래. 고작 발가락 하나로도 인생이 바뀔 수 있어. 그만큼 부서지기 쉬운 게 인생이야. 그렇다면 꿈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 완전히 SF야. 인생이 다 픽션이란 말이야.”
어릴 때부터 게임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유일하게 잘 못하는 게임이 바로 이 <헤이안쿄 에일리언>이다. 아마 그 당시 액션 게임으로서는 드물게 공백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미로 속에서 땅을 파놓고 에일리언이 빠지기만을 가만히 기다리는 그 시간. 기다리는 동안 나는(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두려워졌다. 이런 헛된 싸움을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뭘 어쩌겠단 말인가? 이 스테이지를 넘으면 다음엔 더 혹독한 스테이지가 기다린다.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죽어야만 끝이 나는 이 싸움은 어쩐지 우리네 인생과 꼭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날 20년 만에 게임을 하면서 뭔가가 변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물론 이 게임은 20년 전과 전혀 바뀐 게 없으니, 그렇다면 변한 건 내 쪽이다. 게임을 하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 아무 의미 없이 땅을 파대고, 아무 이유도 없이 에일리언을 묻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죽어야만 끝이 나는 인생에 완전히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한다. 이 세상 남자들은 어떤 감정을 품은 채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걸까? 정열? 안정? 아니면 포기? 대체 어떤 감정을 품으면 되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점점 슬퍼졌다. 어릴 때는 결혼이야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이런 어른이 되어버리다니. 조건이 다 갖추어졌는데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한심한 어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