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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75276118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09-03-02
책 소개
목차
나와 카민스키
서평_섬세한 풍자로 예술 세계를 꾸짖다
리뷰
책속에서
그는 예상보다 훨씬 체구가 작았다. 옛날 사진 속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왜소했다. 스웨터 차림에 검은 색안경을 쓴 그는 한 팔로 미리암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팔은 흰색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갈색 피부는 가죽처럼 주름이 잡혔고, 뺨이 축 늘어진 얼굴에 비해 손은 지나치게 컸다. 머리카락은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코르덴바지에 오른쪽 끈이 풀린 실내화를 신은 모습. 왠지 생경한 느낌이었다. 미리암이 그를 의자로 안내했다. 그는 팔걸이를 더듬어 의자에 앉았다. 미리암이 선 채로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 25~26쪽 중에서
“그분은 아직 살아 있다니까요.”
“누구?”
“테레제 말입니다. 과부가 됐지만, 아직 살아 있어요. 북쪽 해변에. 그분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카민스키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위로 쳐들어 이마를 문지르더니 다시 밑으로 떨어트렸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가 이마를 찌푸렸다. 나는 녹음기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켜져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녹음되고 있을 것이다.
(……)
“진실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
그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런 일은 생각하지 못했겠지. 당신은 이 세바스티안 쵤너를 과소평가한 거라고! 하지만 왠지 초조했다.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매 순간 계곡의 불빛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관목 숲이 구리에 음각을 새긴 것처럼 황혼 속에 둥글게 펼쳐져 있다.
“다음 주에 그분을 찾아갈 겁니다. 그러면 그분께…….”
“나는 비행기를 못 타.” 그가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내가 달래듯이 말했다. 그는 지금 심한 착란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집에 계시면 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침대 옆에 약이 있어.”
“잘됐군요.”
“멍청하기는.” 그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 약을 챙기란 말이야.”
나는 그를 응시했다. “챙기라고요?”
“차를 타고 갈 거야.”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지요!”
“왜 안 된다는 거지?”
(……)
“전화하지 않을 거야. 이 기회를 놓칠 거야?”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지금까지 만사를 내 손아귀에 넣고 조정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내 손아귀를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이틀 동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와 함께한다는 것은 기대하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그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책은 오랫동안 원천자료가 되어 대학생들과 예술사가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 122~125쪽 중에서
카민스키와 이야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는 언제부터 눈병을 앓게 됐을까? 왜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을까? 광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녹음해 둔 터였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다. 내 책은 그가 죽기 전에 출간되어서도 안 되고, 죽은 다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출간되어서도 안 된다. 반드시 죽은 직후라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다. 나는 텔레비전 프로에 초대되어 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화면 하단에는 내 이름과 카민스키의 전기 작가라는 타이틀이 자막으로 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형 미술잡지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 47~48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