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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외국 역사소설
· ISBN : 9788976042101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5-01-20
책 소개
목차
책속에서
다케조는 누구든지 한번 점찍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이로 물어뜯어서라도 상대방을 굴복시켰다. 어중간하게 끝내는 법이 없는 그는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다케조는 어릴 때부터 그런 기질을 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의 핏속에는 고대 일본의 원시적인 면이 강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만큼 매우 야성적이고, 문명의 영향이나 학문으로 익힌 지식이 아니라 오로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이었다. 다케조의 그런 기질 때문에 무니사이조차 자신의 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무니사이가 그의 기질을 바로잡기 위해 이따금씩 가한 무사적인 체벌은 오히려 호랑이 새끼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망나니라고 싫어하면 할수록 이 야생아는 점점 더 튼튼하게 자랐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온 동네를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일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삐뚤어진 꿈을 품고서 세키가하라까지 온 것이었다.
세키가하라는 다케조에게 현실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 준 첫 번째 세상이었다. 이곳에서 청년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하지만 애초에 가진 게 맨몸 하나밖에 없었던 다케조는 젊은 날에 한 번 좌절했다고 해서 앞날도 절망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밤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먹잇감과 조우하게 되었다. 바로 도적들의 우두머리인 쓰지가제 덴마였다. 다케조는 세키가하라에서 이런 적과 조우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비겁한 놈! 거기 서!”
다케조는 고함을 치며 캄캄한 들판을 쏜살같이 내달렸다. 덴마는 그보다 열 걸음쯤 앞에서 공중을 날듯 도망치고 있었다.
다케조의 머리칼이 곤두서 있었다. 바람이 신음을 내지르며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유쾌한 쾌감이 일었다. 다케조의 피는 내달릴수록 짐승 같은 희열로 끓어올랐다.
“나리, 다케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잡는 건 쉬운 일입니다.”
“인원도 적은데, 요번에도 그놈에게 한 명이 죽고 말았으니…….”
“이 늙은이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잠깐 귀를 좀 빌려 주시지요.”
오스기가 귓속말로 속삭이자 국경을 감시하러 왔다는 히메지 성의 무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흠, 좋은 방법인 듯하군.”
“그리하면 분명히 성공할 겁니다.”
오스기가 그리 장담을 하고 돌아간 얼마 후, 그 무사는 신멘가의 뒤쪽에 열댓 명의 사람을 모아 놓고 은밀하게 명령을 내리더니 담을 넘어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 시각, 오츠와 오긴은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서로의 박복함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장지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리며 낯선 사내들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들어와 우뚝 섰다.
“앗!”
오츠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오긴은 무니사이의 딸답게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누가 다케조의 누이냐?”
오긴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나요. 헌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여자 홀로 사는 집이라 해서 이리 무례하게 행동해도 괜찮을 거라 여긴다면 용서치 않을 겁니다.”
오긴이 무릎을 세우고 앉으며 꾸짖자 조금 전까지 오스기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 무사가 대장인 듯,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이 오긴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오츠는 비명을 지르며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당한 일이었다. 열 명이 넘는 사내가 일시에 오긴에게 달려들어 밧줄로 묶으려고 했다. 오긴은 여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그들의 힘에 짓눌려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듯했다.
‘큰일이다.’
오츠는 자신이 어떻게 도망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맨발인 채로 칠보사를 향해 밤길을 정신없이 달렸다. 무사태평한 세월에 익숙했던 그녀에게 그 일은 세상이 경천동지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녀가 절이 있는 산기슭에 다다랐을 때, 나무 밑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그림자 하나가 일어나 다가왔다.
“잡았다! 다케조가 잡혔다!”
“아니, 정말?”
“누가 잡았대?”
“다쿠안 스님이 잡았대.”
마을 사람들이 서로 밀거니 당기거니 하며 본당 앞에 둘러서 있었다. 그곳 계단 난간에 맹수처럼 묶여 있는 다케조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침을 꿀꺽 삼켰다. 다쿠안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계단에 앉아 있었다.
“여러분, 이제 안심하고 농사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다쿠안이 마을의 수호신이나 영웅인 것처럼 칭찬했다. 무릎을 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의 손을 잡고 발밑에서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지들 마시고. 자, 이제 그만.”
다쿠안은 그런 사람들에게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마을 여러분, 잘 들으시오. 다케조가 잡힌 것은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요. 세상의 법도를 저버리고 이기는 사람은 없는 법이오. 중요한 것은 법도요.”
“겸손하시기까지. 정말 대단하세요.”
“그건 그렇고. 자, 지금부터 여러분들과 상의할 일이 있소이다.”
“아니 그게 무엇입니까?”
“다른 게 아니고 이 다케조의 처벌 문제요. 내가 다케조를 사흘 안에 잡아 오지 못하면 내 목을 저 나무에 매달고, 만약 잡아 오면 다케조의 처분은 내게 맡기기로 이케다 영주님의 가신과 약속했었소.”
“그 얘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이렇게 잡아 오긴 했는데 죽여야 하겠소, 아니면 살려서 풀어 주어야 하겠소?”
“풀어 주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소리쳤다.
“죽여야 합니다. 저런 놈을 살려 두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마을에 화근이 될 뿐입니다.”
“흐음.”
다쿠안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자 마을 사람들이 답답해하며 소리쳤다.
“때려죽여라.”
그때, 한 노파가 앞으로 나오더니 다케조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옆으로 다가갔다. 혼이덴의 오스기였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뽕나무 가지를 쳐들고 외쳤다.
“그냥 죽이는 걸로는 내 속이 차지 않는다. 이 흉측한 놈!”
오스기는 들고 있던 뽕나무 가지로 다케조를 두세 대 후려쳤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다쿠안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