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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여행에세이 > 해외여행에세이
· ISBN : 9788976821157
· 쪽수 : 112쪽
책 소개
목차
16세기 베네치아 지도
I
II
III
IV
V
VI
VII
VIII
옮긴이 해제
알프레드 드 뮈세 연보
책속에서
피포의 집은 에스클라본 선착장에 있었다. 나니 대저택과 멀지 않은 소운하 모퉁이에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운 소운하 안쪽에서 곤돌라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공은 장막 뒤에서 보이지 않고 뱃노래만 들려오는 그 가녀린 배는 납작한 노로 화살처럼 빠르게 물결을 가르며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갔다. 석호와 운하를 나누는 다리 아래를 지나는 순간 곤돌라는 멈췄다. 귀태가 흐르고 가냘픈 몸매의 한 여인이 곤돌라에서 내려 선착장 쪽으로 향했다. 집에서 내려온 피포가 망설이지 않고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당신인가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따랐다. 집안의 그 어떤 하인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발끝 걸음으로 문지기가 잠들어 있는 안쪽 회랑을 가로질렀다. 젊은이의 방으로 들어오자 부인은 소파에 앉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녀는 곧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피포는 도로테아 부인이 그를 속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진정 자신 앞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름 아닌 도나토 행정장관의 과부이자 두 명문가의 상속녀인 베아트리체 도나토였다.
「티치아노의 아들」에 등장하는 피포 또한 롤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 인물로서, 아버지로부터물려받은 유산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재능까지 스스로 파기하고 “죽을 때까지 게으름을 고귀하게 여기는 삶”을 산다. 그리고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선택한 이상 가문의 영광이나 예술은 한낱 ‘광대놀음’에 불과하다고 천명한다. 뮈세는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19세기 낭만주의를 관류하고 있는 병적(病的) 성향, 즉 자신이 파리와 베네치아를 오가면서 실제로 경험한 ‘세기병’(mal du siecle)을 투영한다. 세기병은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에서 오는 고독감,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단절된 의식, 그리고 이러한 의식에서 비롯된 우수와 불안”을 기저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독감과 불안은 가늠할 수 없는 정열을 품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고독하고 더욱 불안하다._「옮긴이 해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