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프랑스 시화집

프랑스 시화집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기욤 아폴리네르, 프랑시스 잠 (지은이)
  |  
Muse(뮤즈)
2021-05-30
  |  
10,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등록된 도서정보가 없습니다.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aladin 10,000원 -10% 500원 8,500원 >

해외직구

책 이미지

프랑스 시화집

책 정보

· 제목 : 프랑스 시화집 
· 분류 : eBook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91677065

책 소개

프랑스 화가의 명화와 시인들의 시를 하나로 묶었다. 재가 되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찬란한 생의 불꽃을, 지친 현대인들의 차가운 가슴을 녹여줄 따듯한 명작들을 책 한 권으로 펴냈다.

목차

글 : 작가 ─ 그림 : 작가
1. 선물 : 기욤 아폴리네르 ─ 레이디 해밀턴 :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010
2.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 달밤의 목장 : 장 프랑수아 밀레 012
3. 바닷가에서 : 테오필 고티에 ─ 자갈밭의 해협: 저녁 : 조르주 쇠라 016
4. 사랑은 그저 있는 것 : 생텍쥐페리 ─ 도난당한 키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018
5. 아리스로의 비행 : 생텍쥐페리 ─ 오래된 와인 메이커, 모레 : 카미유 피사로 022
6. 그대 이름 : 장 콕토 ─ 격자 구조물 : 귀스타브 쿠르베 024
7. 산비둘기 : 장 콕토 ─ 공작이 있는 풍경 : 폴 고갱 026
8. 서른 살 시인 : 장 콕토 ─ 파리와 트로이의 헬렌 : 자크 루이 다비드 028
9. 서두르지 마라 : 찰스 슈와프 ─ 물결 : 귀스타브 쿠르베 030
10. 나는 쉰 살 : 프랑시스 잠 ─ 앉아있는 남자 : 폴 세잔 032
11. 집은 장미로 가득하겠죠... : 프랑시스 잠 ─ 빗장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034
12. 거리에 포근하게 비가 내리네 : 아르튀르 랭보 ─ 푸른 옷의 여인 : 폴 고갱036
13. 나비 : 알퐁스 드 라마르틴 ─ 큰 꽃다발 : 세라핀 루이스038
14. 연인 : 폴 엘뤼아르 ─ 텔레마쿠스와 유카리스의 작별 : 자크 루이 다비드 040
15. 그리고 미소를 : 폴 엘뤼아르 ─ 화장하고 있는 여자 : 베르트 모리조042
16. 우리 둘은 : 폴 엘뤼아르 ─ 그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044
17. 몽스키 공원 : 자크 프레베르 ─ 파리의 홀스 광장과 성 유스타샤 교회 : 루이 비뱅 046
18. 이 사랑 : 자크 프레베르 ─ 줄리엣 쿠르베트의 초상화 : 귀스타브 쿠르베 048
19. 배반당한 애인들 : 자크 프레베르 ─ 클럽 에이스와의 속임수 : 조르주 드 라 투르 050
20. 나는 이런 사람 : 자크 프레베르 ─ 와이트 섬에서 외젠 마네 : 베르트
모리조 052
21.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 아르튀르 랭보 ─ 정물 : 앙리 팡탱 라투르 056
22. 사랑의 노래 : 자크 프레베르 ─ 침대에서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058
23. 누가 문을 두드린다 : 자크 프레베르 ─ 백인소녀 : 베르트 모리조 060
24. 사랑이라는 달콤하고도.. : 자크 프레베르 ─ 꿈 : 앙리 루소 062
25.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 자크 프레베르 ─ 책을 읽는 젊은 여성 : 귀스타브 쿠르베 064
26. 성냥개비 사랑 : 자크 프레베르 ─ 물랑 루즈의 영국인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066
27. 내 친숙한 꿈 : 폴 베를렌 ─ 물랑 루즈에서의 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068
28. 엘렌에게 보내는 소네트 : 피에르 드 롱사르 ─ 암브루섬 다리 : 귀스타브 쿠르베 070
29. 이별 : 폴 포르 ─ 여름날 : 베르트 모리조 072
30. 내 사랑은 : 샤를 도를레앙 ─ 목동 : 카미유 피사로 074
31. 부디 내 눈을 감겨주세요 : 구스타보 베케르 ─ 남성 몸통에 대한 학문적
연구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078
32. 우리 사랑은 : E. 스펜서 ─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 조르주 쇠라 080
33. 낙엽 : 레미 드 구르몽 ─ 베르사유 도로 : 카미유 피사로 084
34. 그대 함께 있다면 : 레미 드 구르몽 ─ 화병속의 꽃다발 : 조르주 쇠라 088
35. 타인의 아름다움 : 메리 헤스켈 ─ 생제르맹 성 : 루이 비뱅 090
36. 발자국들 : 폴 발레리 ─ 고가교가 있는 풍경(생트 빅투아르 산) : 폴 세잔 092
37. 애정의 숲 : 폴 발레리 ─ 타히티 풍경 : 폴 고갱 096
38. 석류 : 폴 발레리 ─ 까막까치밥나무 열매 : 세라핀 루이스 098
39. 텅 빈 사막 : 오르텅스 블루 ─ 양 떼를 돌보는 목자 : 장 프랑수아 밀레 100
40. 잊힌 여인 : 마리 로랑생 ─ 빨래 널기 : 베르트 모리조 102
41. 금간 꽃병 : 쉴리 프리돔 ─ 사과가 있는 정물 : 폴 세잔 104
42. 행복을 철학하다 : 프레데릭 르누아르 ─ 생 라자르 거리 : 카미유 피사로 106
43. 하나, 둘, 세 개의 육체 : 알랭 보스께 ─ 나 자신, 초상 : 풍경 : 앙리 루소 108
44. 현명한 사람 : R. 로시푸코 ─ 개 한마리와 세 사람 : 루이 비뱅 110
45. 내 인생에서 그대는 : 나폴레옹 ─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조르주 쇠라 112
46. 오네요! 아련한 피리 소리 : 빅토르 위고 ─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 폴 세잔 114
47. 세월의 강물 : 장 루슬로 ─ 별이 빛나는 밤 : 장 프랑수아 밀레 116
48. 언제나 당신이 나만을 생각한다면 : 빅토르 위고 ─ 모르꾸르의 정원에서 : 베르트 모리조 118
49. 봄 : 빅토르 위고 ─ 연못 : 폴 세잔 120
50. 서로에게 이야기해요 : 빅토르 위고 ─ 안녕하세요, 고갱 씨 : 폴 고갱 122
51. 날이 밝아오네요 : 빅토르 위고 ─ 야간의 새사냥 : 장 프랑수아 밀레?124
52. 황혼 : 빅토르 위고 ─ 아버지의 초상 : 폴 세잔 126
53.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 프랑시스 잠 ─ 이삭줍기 : 장 프랑수아 밀레 128
54. 우산을 들고서 : 프랑시스 잠 ─ 풍요의 여신을 데리고 오는 평화의 여신 :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130
55. 애가 14 : 프랑시스 잠 ─ 디 에프 항구 : 카미유 피사로 132
56. 위대한 것은 인간들의 일이니 : 프랑시스 잠 ─ 씨 뿌리는 사람 : 장 프랑수아 밀레 136
57. 이제 며칠 후엔.. : 프랑시스 잠 ─ 소파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138
58. 아내를 위한 기도 : 프랑시스 잠 ─ 르 폴뒤의 절벽 : 에밀 베르나르 140
59. 삼종의 종소리 : 프랑시스 잠 ─ 수태 고지 : 에밀 베르나르 142
60. 까마귀 : 아르튀르 랭보 ─ 설경의 효과 : 귀스타브 쿠르베 144
61.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 프랑시스 잠 ─ 세느강 옆에 있는 젊은 아가씨들 : 귀스타브 쿠르베 148
62. 바다 그림 : 아르튀르 랭보 ─ 브르타뉴 항 : 루이 비뱅 150
63. 거리에 비 내리듯 : 아르튀르 랭보 ─ 쉬소흐의 시장, 중심가 : 키미유 피사로 152
64. 밤샘 : 아르튀르 랭보 ─ 사랑의 진행 : 만남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154
65. 비너스에게 바치는 기원 : 아르튀르 랭보 ─ 보육원 방문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156
66. 새벽 : 아르튀르 랭보 ─ 아카바 만 : 장 레옹 제롬 160
67. 가난한 자의 기도 : 아르튀르 랭보 ─ 카뉴쉬르메르의 전경 : 샤임 수틴164
68. 연인들의 대화 : 폴 베를렌 ─ 조의 초상화 : 귀스타브 쿠르베 166
69. 감각 : 아르튀르 랭보 ─ 에라그니의 농민의 집 : 카미유 피사로 168
70. 아침의 좋은 생각 : 아르튀르 랭보 ─ 잠자는 집시 : 앙리 루소?170
71. 이를 잡는 여인들 : 아르튀르 랭보 ─ 사랑하는 아이 :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마거리트 제라르 172
72. 겨울을 위한 꿈 : 아르튀르 랭보 ─ 설경의 효과 : 귀스타브 쿠르베 176
73. 영원 : 아르튀르 랭보 ─ 페퍼민트 병 : 폴 세잔 178
74. 희망은 외양간의 지푸라기처럼 : 폴 베를렌 ─ 휴식 또는 바나나 : 폴 고갱 180
75. 청명한 달빛 : 폴 베를렌 ─ 사육제의 밤 : 앙리 루소 182
76. 가스파르 오제의 노래 : 폴 베를렌 ─ 자화상 : 샤임 수틴 184
77. 끝 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 폴 베를렌 ─ 인물풍경 : 샤임 수틴 186
78. 바다는 더 아름답습니다 : 폴 베를렌 ─ 뱃놀이 : 에두아르 마네 188
79. 그 소녀는 : 프랑시스 잠 ─ 연애 편지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190
80. 식당 : 프랑시스 잠 ─ 평야 : 장 프랑수아 밀레 192
81. 이집트의 무희일까요 : 아르튀르 랭보 ─ 서커스 : 조르주 쇠라 196
82. 밤샘 : 아르튀르 랭보 ─ 물랑 루즈를 떠나는 제인 에이브릴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198
83. 사슴의 울음소리 : 아르튀르 랭보 ─ 열대림에서. 호랑이와 황소 사이의 투쟁 : 앙리 루소 200
84. 왠지 몰라라 : 폴 베를렌 ─ 잔잔한 바다 : 귀스타브 쿠르베 202
85. 이탈 : 아르튀르 랭보 ─ 겨울 운하 근처의 도시 : 루이 비뱅 206
86. 오, 저 멀리 절름대며 가는 : 폴 베를렌 ─ 찰스 7세 대관식에서 잔다르크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208
87. 혼 : 아르튀르 랭보 ─ 신의 날 : 폴 고갱 210
88. 3년 후 : 폴 베를렌 ─ 엄마와 딸 : 폴 고갱 212
89. 가을의 노래 : 폴 베를렌 ─ 건초 더미 : 가을 : 장 프랑수아 밀레 214
90. 돌아오지 않는 옛날 : 폴 베를렌 ─ 윤무 : 카미유 피사로 216
91. 비가 내리네요 : 폴 베를렌 ─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218
92. 영혼의 슬픔 : 폴 베를렌 ─ 만종 : 장 프랑수아 밀레 220
93. 어느 여인에게 : 폴 베를렌 ─ 번개에 겁 먹은 말 : 외젠 들라크루아 224
94. 하늘은 지붕 위로 : 폴 베를렌 ─ 판다누스 나무 아래서 : 폴 고갱 226
95. 하얀 달 : 폴 베를렌 ─ 이국적인 숲을 걷는 여성 : 앙리 루소 228
96. 깊은 잠 : 폴 베를렌 ─ 파라다이스 나무 : 세라핀 루이스 230
97. 빈자리 : 장 타르디외 ─ 나폴레옹의 죽음 : 샤를 스투벵 232
98. 취하세요 : 샤를 보들레르 ─ 책 읽는 소녀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234
99. 파괴 : 샤를 보들레르 ─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 : 외젠 들라크루아 236
100. 피의 샘 : 샤를 보들레르 ─ 황색의 그리스도 : 폴 고갱 238
101. 불운 : 샤를 보들레르 ─ 루앙, 에피스리 거리 : 카미유 피사로 240
102. 인간과 바다 : 샤를 보들레르 ─ 민중을 이끄는 자유 : 외젠 들라크루아 242
103. 도움 없이 버려진 것 같은 : 폴 베를렌 ─ 감자 재배자 : 장 프랑수아 밀레 246
104. 영혼의 새벽 : 샤를 보들레르 ─ 생명의 나무 : 세라핀 루이스 248
105. 달의 슬픔 : 샤를 보들레르 ─ 아레오이 씨앗 : 폴 고갱 250
106. 겸손한 삶은 : 폴 베를렌 ─ 기적의 샘물, 달콤한 명상 : 폴 고갱 252
107. 바다의 미풍 : 스테판 말라르메 ─ 세탁부 : 폴 고갱 254
108. 황금시 : 제라르 드 네르발 ─ 마타 무아 : 폴 고갱 256
109. 사랑의 찬가 : 제라르 드 네르발 ─ 기묘한 춤 : 조르주 쇠라 258
110. 공부 : 샤를 페기 ─ 아르마 브루너 : 에두아르 마네 260
111. 거짓된 아름다운 햇살이 : 폴 베를렌 ─ 모레 교회(저녁) : 알프레드 시슬리 262
112. 비가 : 알프레드 드 뮈세 ─ 오르난의 묘지 : 귀스타브 쿠르베 264
113. 슬픔 : 알프레드 드 뮈세 ─ 꽃을 든 여인 : 폴 고갱 266
114. 눈 : 쉴리 프뤼돔 ─ 사크레쾨르 대성당 : 루이 비뱅 268
115. 사랑의 순간 : 쉴리 프뤼돔 ─ 식당 안에서 : 베르트 모리조 272
116. 알바트로스 : 샤를 보들레르 ─ 박카스의 승리 : 니콜라 푸생 274
117. 소네트 8번 : 루이 라벨 ─ 정글 : 루이 비뱅 276
118. 사랑 뱅뱅 : 안나 드 노아이유 ─ 헤시오도스와 뮤즈 : 귀스타브 모로 278
119. 어느날 저녁 : 에밀 베르하렌 ─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 폴 세잔 280
120. 카시의 강 : 아르튀르 랭보 ─ 점쟁이 : 조르주 드 라 투르 282
121. 지평선 : 막스 자코브 ─ 옹플뢰르 항구 : 조르주 쇠라 284

저자소개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스페인의 대표적 낭만주의 시인인 베케르는 가난으로 점철된 짧은 생애를 보냈다. 그는 진정한 낭만주의자로 은둔의 삶을 추구했고 절망적인 사랑에 시달렸다. 어릴 적부터 문학과 음악, 회화에 매력을 느꼈고, 해양 학교에 입학했다가 바로 공부를 그만두었다. 마드리드로 이주한 후에 재무부에서 한직에 근무했지만 시를 쓴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해고당했다. 베케르는 무엇보다 시인이었지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민담, 괴담을 바탕으로 22편의 짧은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1861년부터 1863년 사이에 발표된 「혼령의 산 El Monte de las animas」도 그중의 하나다. 베케르는 34세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펼치기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의 다른 책 >
레미 드 구르몽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상징파의 잡지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를 창간하였으며, 비평과 미학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그는 상징주의의 이론가일 뿐 아니라, 자유로운 입장에서 세련된 취미와 학식을 가지고 시와 소설, 평론을 썼다. 노르망디 명문 출신으로, 예부터 인쇄업에 종사해 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낭창이라는 피부병에 걸려 얼굴 등 신체가 손상되자 외부 출입을 스스로 극도로 삼가고 자기만의 깊은 고독에 빠져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그의 대표적 상징시 〈낙엽〉은 지금도 전 세계인이 널리 애송하고 있다. 시집 《시몬》 소설 《룩셈부르크의 하룻밤》 《색, 낙엽의 여인들》 《여자의 꿈》 서간집 《아마조네스에게 보낸 숨겨둔 편지》 평론집 《프랑스어의 미학》 《문학 산책》
펼치기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 청년 시절 여러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의 길로 들어섰으나, 무절제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우려한 가족의 청원으로 금치산 선고를 받아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는데도 평생 가난과 빚에 시달려야 했다.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창작을 중단하지 않은 보들레르는 1845년 첫 책인 미술평론집 『1845년 미술전』을 출간했다. 프랑스 최초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 · 소개하여 큰 찬사를 받기도 했다. 1857년에는 보들레르의 문학과 삶의 정수가 담긴 『악의 꽃』이 출간됐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과 시 여섯 편 삭제 판결을 받았다. 이후 에세이 『인공 낙원』과 『악의 꽃』 2판을 연이어 출간하고 비평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나, 오랜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다가 1867년 46세에 영면했다. 사후에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에세이 「내면 일기」 등이 출간되었다.
펼치기
빅토르 위고 (원작)    정보 더보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나폴레옹 휘하의 군인인 아버지와 왕당파 집안 출신인 어머니의 셋째아들로, 당시 아버지의 임지였던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이후 파리, 나폴리, 마드리드 등을 전전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독서와 시 창작, 문예 비평에 열중하다 스무 살이 되던 1822년 첫 시집《송가와 여러 시》를 발표했다. 1823년 첫 장편소설《아이슬란드의 한Han》에 이어 1827년 운문 희곡〈크롬웰〉등을 발표하여 낭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했고 1830년 초연된 희곡〈에르나니〉로 고전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획득했다. 1831년 발표한 역사소설《파리의 노트르담》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 시기에 정치성을 띤 시집을 다수 발간했다. 현실 참여적인 지식인이자 인도주의자로서 사형제 폐지와 빈민 구제를 주장한 위고는 공화파 정치가로도 활약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제정을 수립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 국외로 추방되어 브뤼셀 등지에서 19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작품 집필에 몰두하여《명상시집》과《레 미제라블》을 비롯한 걸작들을 남겼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파리에 돌아온 후 1876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지만 1878년 뇌출혈로 건강이 악화되어 정계에서 은퇴했다. 1885년 파리에서 폐울혈로 사망한 그의 장례는 국민적인 애도 속에 국장으로 거행되었고 시신은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대하소설《레 미제라블》에 여담 형태로 삽입된 ‘워털루 전투’ 이야기는 위고가 벨기에 전적지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답사하는 노력 끝에 집필한 것이다. 위고 특유의 비장미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이 글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 나폴레옹의 패배 과정을 극적이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며 여운을 남긴다.
펼치기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4년 10월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 샤를르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집에 머무는 때가 드물었고, 랭보가 여섯 살 되던 해 완전히 가족을 떠났다. 어머니는 극도로 독실하고 엄격했다. 불우한 가정, 정치적 혼란, 그리고 전쟁은 어린 시인의 마음에 종교와 사회 제도에 대한 반항을 심었고, 좌절과 분노는 잦은 가출과 방랑으로 표출되었다. 반항심은 “절대적 자유”를 향한 폭발적인 글쓰기로도 나타났다. 베를렌과의 교류와 방황은 랭보의 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10대 후반 약 5년 동안 그가 쓴 시의 진화는 시의 역사 전체를 요약한다. 예리한 감각과 거침없는 상상력이 나타나는 <초기 운문시>,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후기 운문시>, 전복적이고 극단적인 가치관을 불같은 문체로 노래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그리고 헤아리기 어려운 초월적 세계를 보여주는 <일류미네이션> 등 그의 작품은 세계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특히 “불가해한 시집”인 <일류미네이션>은 “모든 문학을 넘어선” 궁극의 시로 평가된다. <일류미네이션>의 원고를 베를렌에게 넘긴 뒤 랭보는 문학과 문명을 버리고 유럽을 벗어나 세상을 떠돌다 아랍 아프리카 사막으로 사라진다. 아라비아반도와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무역상을 하던 그는 병으로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프랑스 마르세유로 송환된다. 1891년 37세가 되던 해,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며 쓴 그의 편지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반항과 자유의 갈구가 담겨 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불행, 끝없는 불행이다! 도대체 왜 살아가는 것일까?”
펼치기
기욤 아폴리네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모나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지내다가 죽기 2년 전에야 비로소 프랑스에 완전히 귀화하였다. 1918년 그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와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을 3일 앞두고 38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1898년부터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한편으로는 전위예술에 매혹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술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피카소, 브라크, 막스 자콥 등과도 교류하였던 그는 불문학사에서 상징주의의 황혼기이며 초현실주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인 20세기 초에 당대의 시대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알코올』은 아폴리네르의 첫 시집으로, 1913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부제인 <시집 1898-1913>이 말하듯이 『알코올』은 아폴리네르가 시인으로서 처음 이름을 알린 이후 15년간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와 주제, 음조와 길이가 다른 50편의 시를 혼란스럽게 늘어놓고 있지만 이 시집 전체가 지니고 있는 특이한 분위기는 거기에 어떤 <숨겨진 건축>, <초현실적 상상력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건축>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떨쳐 버리기 어렵게 한다. 다른 작품으로는 『썩어 가는 마술사L'enchanteur pourrissant』, 『상형시집Calligrammes』, 『학살 당한 시인Le po?te assassin?』, 『앉아 있는 여인La femme assise』, 『우울한 파수병Le Guetteur m?lancolique』, 『추억처럼 부드러운Tendre comme le souvenir』, 『소년 돈주앙의 회고록Les Exploits d'un jeune Don Juan』,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이교시조회사L'H?r?siarque et Cie』, 『입체파 화가들Les peintres cubistes』 등이 있다.
펼치기
알퐁스 드 라마르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완전한 이름은 알퐁스 마리 루이 드 프라 드 라마르틴(Alphonse Marie Louis de Prat de Lamartine)이다. 그는 1790년 10월 21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마콩(Macon)에서 가톨릭 귀족이자 기병대 대위인 아버지 피에르 드 라마르틴(Pierre de Lamartine)과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귀족 출신의 어머니 알릭스 데 루아(Alix des Roys)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콩 근처의 시골에서 자유롭게 자라난 그는 리옹의 기숙 학교를 거쳐 벨레 중학교에서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그리고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 등을 탐독하면서 문학적인 소양을 키워 나갔다.학업을 마친 후에는 어머니의 사촌 집이 있는 나폴리에 머물면서 젊은 여공 안토니엘라(Antoniella)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후 그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 소설 ≪그라치엘라(Graziella)≫(1852)를 발표했다. 1816년 요양차 방문한 온천지 엑스레뱅(Aix-les-Bains)에서 만난 여섯 살 연상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쥘리 샤를(Julie Charles) 부인은 곧 폐결핵으로 사망했지만 라마르틴의 뮤즈가 되어 그의 시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1820년은 첫 시집인 ≪명상시집≫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데다, 나폴리 주재 대사관 보좌관으로 임명되는 등, 라마르틴이 문학적·사회적 입지를 다진 한 해였다. 그의 외교관 경력은 1830년에 사직하기까지 피렌체 대사관 대리 공사, 토스카나 상업 교류 담당관 등으로 이어졌는데, 그 시기에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병행해 라마르틴은 저명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1829년 샤토브리앙, 빅토르 위고, 생트뵈브 등의 낭만주의 문인들과 교우했고, 같은 해 샤토브리앙의 추천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당선했다.1830년의 ‘7월 혁명’ 이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입장을 밝힌 여러 편의 시와 평론을 발표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라마르틴은 정치에 집중하기 위해 문학 활동을 중단했다. 1848년 입헌 군주인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를 폐위시킨 ‘2월 혁명’에 뒤이어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 라마르틴은 외무부 장관에 선출되면서 사실상 내각의 수반으로 부상했으며 그해 4월에는 노동 계급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10개 지역에서 입법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그는 참패를 당했고, 실의에 빠진 라마르틴은 그 길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1850년에 파산한 그는 그로부터 죽기 직전까지 20년 동안 잇따라 시, 역사, 비평, 개인적인 술회 등에 걸쳐 저술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 “살기 위한,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한 문학적 중노동”이었다. 1869년 2월 28일, 라마르틴은 파리의 자택에서 그의 질녀와 양녀만이 임종을 지킨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뒀다. 1869년 3월 4일 그의 시신은 기차로 파리에서 고향 마콩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들과 파리의 작가들을 포함한 수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영결식을 치른 뒤, 마콩 가까이 라마르틴 가문 소유의 성이 있던 생푸앵(Saint-Point)의 작은 예배당 묘소의 가족들 곁에 안치되었다. 그의 묘비 머리에는 유언에 따라 ‘내 영혼은 소망했노라’를 뜻하는 라틴어 문구(Speravit anima mea)가 새겨졌다.
펼치기
폴 엘뤼아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5년 파리 외곽에 있는 생드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이고, 필명 엘뤼아르는 외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회계사였던 아버지가 부동산업으로 성공한 덕분에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엘뤼아르는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스위스에 있는 요양원에서 생활했다. 이때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휘트먼 등의 작품을 읽고 자극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갈라를 만나 1917년 결혼하여 이듬해에 딸 세실을 얻었다. 그러나 훗날 갈라가 살바도르 달리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이혼하고, 1934년 뉘슈와 결혼했다. 갈라와 뉘슈는 엘뤼아르의 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에 앞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엘뤼아르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에 평화주의 및 자유주의 사상을 품은 첫 시집 『의무와 불안』(1917)을 발표한다. 그리고 루이 아라공, 앙드레 브르통, 차라 등과 만나면서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하고, 『동물들과 그들의 인간들, 인간들과 그들의 동물들』(1920), 『삶의 필연성과 꿈의 결과』(1921) 등을 통해 다다이즘 성향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1924년에는 약 7개월간 혼자 세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잠적한 이유에 대해 별다른 해명 없이 초현실주의 운동에 앞장선다. 이후 1936년까지 초현실주의 절정기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중 걸작으로 꼽히는 시집으로는 『고뇌의 수도』(1926), 『대중의 장미』(1934), 『비옥한 눈』(1936) 등이 있다. 엘뤼아르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을 목격하고 참여 시인으로 변모한다. 시인이 현실 세계 속에 재통합되기를 바란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전념한다. 1942년 공산당에 재가입하고,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진 『시와 진실 1942』(1942)를 펴낸다. 영국 공군은 이 시집에 실린 시 「자유」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에 뿌려 희망과 위안을 전했다. 정전 후에 엘뤼아르는 세계 각지에서 강연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 의식을 고취했으나, 1946년 뉘슈가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자 깊은 절망과 공허에 빠진다. 그 후 민중의 평화와 자유, 독립을 위해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등지에서 강연하다가 1949년 도미니크를 만나 생의 기쁨을 되찾고 그녀와 세 번째 결혼을 했으나 1952년 폐렴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마지막 시집 『끊임없는 시 II』(1953)는 사후에 출간된다.
펼치기
프랑시스 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8년 피레네산맥 인근의 투르네에서 출생하였으며, 성장하며 보들레르의 시 작품에 매료되어 문학에 빠져든 것 외에 식물학과 곤충학에도 흥미를 보였다. 1888년 대학 입학시험에 불합격하고 그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정서적 불안 상태를 겪는다. 1889년에는 소송 대리인 사무소에서 수습 생활을 하였으나 법률 공부에 싫증을 느끼고 전원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심각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1890년 누나의 결혼 이후 어머니와 생활하며, 이해부터 강도 높은 시작(詩作)에 돌입한다. 1905년에는 시인 폴 클로델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하고, 1907년에는 지네트 고도르프(Ginette Goedorp)와 결혼한다. 1917년 프랑스 아카데미 문학 대상 수상, 1936년 프랑스 아카데미의 오말 상을 수상한다. 1922년의 레종 도뇌르 훈장 수여는 거절하였다. 『시편』 『시인의 탄생』 『새벽 삼종기도에서 저녁 삼종기도까지』 『앵초(櫻草)의 비탄』 『삶의 승리』 『하늘 속의 빈터』 『기독교 농경시』 『묘비명』, 소설 『클라라 델뵈즈, 혹은 한 옛 아가씨 이야기』, 평론집 『시 강의』 등을 출간하였다. 그 외에도 평생에 걸쳐 멈춤 없는 창작 활동을 하며 당시의 프랑스 시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38년 아스파랑에서 사망하였다.
펼치기
프랑시스 잠의 다른 책 >
폴 베를렌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4년 3월 30일 프랑스 로렌 주(州) 메츠에서 공병 장교인 아버지와 부농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너무도 귀하게 태어나 가족으로부터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어린 베를렌은 버릇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명민한 아이였다. 열한 살이 되자, 보나파르트 고등학교(Lycee Bonaparte)에 진학했는데,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특히 언어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7년 과정의 이 학교에서 베를렌은 처음 3년 동안은 분명 모범생이었지만, 4년째 접어들자 돌연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고 시와 소설에 몰입한 문학 소년이 되었다. 1862년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해서 가까스로 법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대학생이 된 그는 또다시 문학에만 몰두할 뿐, 정작 법률 공부는 등한시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잠시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베를렌은 이내 대학 공부를 집어치우고, 1864년 파리 시청의 직원 채용 시험에 합격해 등초본 계원으로 근무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 덕에 1865년부터 베를렌은 마음 편히 문필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으며, 1869년 친구의 이복여동생인 마틸드 모테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1년의 교제 끝에 혼인했다. 1871년 3월, 파리에 시민 혁명 정부인 코뮌이 수립되자 베를렌은 협력자로서 홍보 관련 일을 맡기도 했는데, 두 달 만에 코뮌이 진압된 후, 그 일로 인해 처벌받을까 두려웠던 그는 외가 친척들 집을 옮겨 다니며 은신하다가 결국 시청으로부터 파면 통보를 받았다. 이 무렵, 안면부지의 열일곱 살 문학청년 랭보가 베를렌 앞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와 함께 자작시 몇 편을 보내왔다. 랭보의 시에 탄복한 베를렌은 이윽고 랭보를 불러 처가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반항적인 랭보는 보름 만에 그 집에서 쫓겨나 베를렌의 친구들 집을 전전했으며, 이때부터 베를렌은 랭보와 아내 마틸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1873년 7월,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지내던 베를렌의 부름을 받고 랭보가 찾아왔다. 격렬한 언쟁이 이어졌고 술에 취한 베를렌은 파리로 떠나겠다는 랭보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의 탄환 중 한 발이 랭보의 손목에 경상을 입혔고, 베를렌은 벌금형과 함께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곧장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듬해인 1874년 4월, 파리 법원은 마틸드의 청원을 받아들여 베를렌 부부의 법적 별거 선고를 내렸는데, 벨기에 몽스(Mons) 감옥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해 7월에 영성체 의식을 치렀다. 1875년 1월이 되자 마침내 베를렌은 석방되었고, 그 뒤 188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사립학교 몇 군데를 오가며 교사 일을 하는 동시에 꾸준히 시를 써 나갔다. 1882년 7월, 파리 근교의 한 호텔에 거처를 정한 베를렌은 지난 10년간 소원했던 파리의 문인들 곁으로 돌아왔는데, 그간에 완성한 그의 시들이 ≪현대적인 파리≫를 비롯한 여러 문학잡지를 통해 연이어 소개되었다. 나날이 깊어 가는 병세에도 불구하고 베를렌은 왕성한 필력으로 여러 편의 산문집과 시집, 희곡 작품을 발표했으며, 어느덧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1892년에 들어서면서 젊은 숭배자들의 초청으로 베를렌은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를 돌며 시학 강연을 이어 갔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가장 훌륭한 시인을 뜻하는 ‘시인의 왕’이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빅토르 위고에게서 그 칭호를 계승한 르콩트드릴이 1894년 세상을 떠나자 시인들은 새로운 ‘시인의 왕’을 뽑아야 했는데, 400명 가까운 젊은 문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당대의 유명 시인들 중에서 베를렌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시인의 왕’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살아생전의 영광도 잠시뿐. 1896년 1월 8일, 폐울혈 증세를 보이던 베를렌은 급기야 52세를 일기로 그 자신이 표현했던 “저주받은 시인”다운 처량하고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이틀 뒤 수천 명의 장례 행렬이 애도하며 그의 유해를 파리 북쪽의 바티뇰(Batignolles) 묘지로 운구했으며, 그와 절친했던 여러 문인들이 애절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시인 말라르메는 베를렌 추모비를 건립하기 위한 기금조성위원회를 발족했고, 그 결실로 마침내 1911년 파리 뤽상부르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그의 흉상을 새긴 추모비가 세워졌다.
펼치기
폴 베를렌느의 다른 책 >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0년 12월 11일 파리에서 출생한 알프레드 드 뮈세는 시, 소설, 희곡 등에서 두루 두각을 나타낸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뮈세의 집안은 소 귀족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혁명에 동조하는 자유사상가였고, 장 자크 루소의 생애에 관한 저술도 집필한 박식한 인물이었다. 1828년 토마스 드 퀸씨의 작품을 번안한 『아편쟁이의 고백』을 출간한 뮈세는 빅토르 위고가 이끌던 문인들의 소모임인 ‘세나클’에 가입한다.. 당대의 문인들과 교분을 쌓으면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지만, 자유분방한 뮈세는 이 유파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1833년 스물세 살인 뮈세는 당시 스물아홉 살이던 조르주 상드와 만나 열애에 빠진다. 이 둘은 함께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지만 병에 걸린 뮈세를 간호하던 상드는 의사 파젤로와 눈이 맞아 뮈세를 배신한다. 상드와의 격정적이었으나 고통스럽게 끝난 사랑은 자전적 소설인 『세기아의 고백』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1837년까지 뮈세가 격정적인 사랑을 했던 시기는 그가 가장 왕성하게 문학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와 겹친다. 1830년 7월 혁명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은 당시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던 이른바 ‘세기병’의 한 원인이 되었고, 이것이 뮈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특유의 비관적 세계관을 설명해 준다. 세련된 유행의 첨단에 섰던 댄디의 전형인 뮈세는, 1839년 이후, 즉 그의 젊은 시기가 지나간 이후에는 문학적 영감을 잃게 된다. 1852년 뮈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이미 보들레르를 위시한 새로운 세대는 뮈세를 과도한 주관적 정서의 과잉을 보여주던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폄하하게 된다. 병들고 친구들에게도 잊힌 존재가 된 뮈세는 1857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펼치기
알프레드 드 뮈세의 다른 책 >
마리 로랑생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로 시작되는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명시(名詩) ‘미라보 다리’의 실제 주인공인 마리 로랑생(1883~1956)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태어난 마리 로랑생은 제1·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 한가운데 살았다. 무자비하게 몰려드는 전란의 시기에도 그녀가 품은 절대가치는 사랑이었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로부터 뜨거운 애정의 헌사를 받았으며 피카소와 샤넬, 장 콕도, 까뮈 등과 예술적, 지적 영감을 교류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색채에 대한 자신만의 매혹적인 감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핑크와 옅은 블루, 청록, 우수가 감도는 회색 등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누구나 보면 한 번에 알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마리 로랑생의 그림에는 한 여성의 내면에 여리고 앳된 소녀와 열정을 앓았던 처녀, 삶을 관조하는 중년 시기 등 시간대별 이미지들이 중첩돼 있다. 마리는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감싸 안아주는 여성을 그려 자신의 고통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이 도처에 있고 고통이 세상을 잠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리의 내면은 평화와 생명의 세상을 간절히 바랐을지 모른다.
펼치기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