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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르틴의 예루살렘

라마르틴의 예루살렘

알퐁스 드 라마르틴 (지은이), 최인경 (옮긴이)
  |  
그린비
2010-08-15
  |  
3,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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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르틴의 예루살렘

책 정보

· 제목 : 라마르틴의 예루살렘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여행에세이 > 해외여행에세이
· ISBN : 9788976821195
· 쪽수 : 80쪽

책 소개

'작가가 사랑한 도시' 10번째 책으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라마르틴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며 쓴 여행에세이다. 오랫동안 꿈꿔 온 근동여행이자, 병에 걸린 딸아이의 회복을 빌며 떠난 여행이었다. 그는 이 ‘평화의 도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나날에 느꼈을 인간적 고뇌와 인류를 위한 숭고한 사랑에 깊이 교감한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편’의 서정시인 다윗의 아름다운 영혼과 순수한 신앙심을 떠올린다.

목차

라마르틴의 예루살렘 여행지도

1832년 10월 28일
1832년 10월 29일

옮긴이 해제
알퐁스 드 라마르틴 연보

저자소개

알퐁스 드 라마르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완전한 이름은 알퐁스 마리 루이 드 프라 드 라마르틴(Alphonse Marie Louis de Prat de Lamartine)이다. 그는 1790년 10월 21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마콩(Macon)에서 가톨릭 귀족이자 기병대 대위인 아버지 피에르 드 라마르틴(Pierre de Lamartine)과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귀족 출신의 어머니 알릭스 데 루아(Alix des Roys)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콩 근처의 시골에서 자유롭게 자라난 그는 리옹의 기숙 학교를 거쳐 벨레 중학교에서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그리고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 등을 탐독하면서 문학적인 소양을 키워 나갔다.학업을 마친 후에는 어머니의 사촌 집이 있는 나폴리에 머물면서 젊은 여공 안토니엘라(Antoniella)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후 그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 소설 ≪그라치엘라(Graziella)≫(1852)를 발표했다. 1816년 요양차 방문한 온천지 엑스레뱅(Aix-les-Bains)에서 만난 여섯 살 연상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쥘리 샤를(Julie Charles) 부인은 곧 폐결핵으로 사망했지만 라마르틴의 뮤즈가 되어 그의 시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1820년은 첫 시집인 ≪명상시집≫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데다, 나폴리 주재 대사관 보좌관으로 임명되는 등, 라마르틴이 문학적·사회적 입지를 다진 한 해였다. 그의 외교관 경력은 1830년에 사직하기까지 피렌체 대사관 대리 공사, 토스카나 상업 교류 담당관 등으로 이어졌는데, 그 시기에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병행해 라마르틴은 저명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1829년 샤토브리앙, 빅토르 위고, 생트뵈브 등의 낭만주의 문인들과 교우했고, 같은 해 샤토브리앙의 추천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당선했다.1830년의 ‘7월 혁명’ 이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입장을 밝힌 여러 편의 시와 평론을 발표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라마르틴은 정치에 집중하기 위해 문학 활동을 중단했다. 1848년 입헌 군주인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를 폐위시킨 ‘2월 혁명’에 뒤이어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 라마르틴은 외무부 장관에 선출되면서 사실상 내각의 수반으로 부상했으며 그해 4월에는 노동 계급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10개 지역에서 입법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그는 참패를 당했고, 실의에 빠진 라마르틴은 그 길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1850년에 파산한 그는 그로부터 죽기 직전까지 20년 동안 잇따라 시, 역사, 비평, 개인적인 술회 등에 걸쳐 저술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 “살기 위한,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한 문학적 중노동”이었다. 1869년 2월 28일, 라마르틴은 파리의 자택에서 그의 질녀와 양녀만이 임종을 지킨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뒀다. 1869년 3월 4일 그의 시신은 기차로 파리에서 고향 마콩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들과 파리의 작가들을 포함한 수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영결식을 치른 뒤, 마콩 가까이 라마르틴 가문 소유의 성이 있던 생푸앵(Saint-Point)의 작은 예배당 묘소의 가족들 곁에 안치되었다. 그의 묘비 머리에는 유언에 따라 ‘내 영혼은 소망했노라’를 뜻하는 라틴어 문구(Speravit anima mea)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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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경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4대학(소르본 대학)에서 중세문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박물관연합(RMN) 한국 지부에서 근무하면서 각종 미술전시를 기획하였으며, 전시도록 및 아동미술도서의 출판을 기획하고 번역하였다. 현재는 프랑스어 및 프랑스문화와 관련하여 인하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논문으로 「12세기 중세문학에서 명예라는 감정」, 「궁정풍 소설에서의 명예와 감정」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몽쁘띠 미술관』 시리즈, 『새싹미술관 화가 이야기』 시리즈, 『샤갈이 그린 라퐁텐 우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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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저 멀리 확 트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가 있는 유대 산맥의 마지막 봉우리와 아라비아 산맥 사이의 풍경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곳은 벌써 아침의 뿌옇고 출렁이는 햇살로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의 발 아래 크고 작은 회색빛 돌들이 부서진 채 굴러다니는 낮은 산등성 너머는,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아 마치 넓은 바다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조용한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뿜어내기 시작하는 빛과 어둠이 만들어 내는 짙은 그림자와 불투명한 은빛의 출렁임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환상이었다. 이 상상의 바다 끝으로 지평선에서 조금 왼쪽 방향으로 한 4킬로미터쯤 떨어져 보이는 곳에 수많은 사각의 종탑들과 이슬람 사원의 우뚝 솟은 미나레트(minaret, 이슬람 사원의 첨탑)와 낮은 언덕의 꼭대기를 빼곡히 메우고 있는 건물들의 노랗고 넓은 성벽 위로 태양이 반짝이고 있었다. 낮은 언덕에 가려져 다른 언덕의 기슭은 보이지 않았다. 미나레트의 꼭대기, 성벽의 총안(銃眼), 종탑 뒤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서 있는 돔의 검고 푸른 꼭대기를 보자, 산허리를 따라 내려온 도시의 위쪽 부분만 볼 수 있었지만 어떤 도시인지 알 수 있었다. 예루살렘 말고는 다른 곳일 수 없었다. 예루살렘은 아직 멀리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우리들 모두 환영이 깨져 버릴까 두려워 안내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도시를 처음으로 훔쳐보는 즐거움을 조용히 만끽했다. 도시의 모든 것이 예루살렘이란 이름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그곳이었다. 광택 없는 짙은 누런색의 예루살렘은 창공의 푸른색과 올리브산(Mount of Olives, ‘감람산’)의 검은색을 배경으로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다._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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