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88976822383
· 쪽수 : 46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_ 간더스하임
2부_ 길
3부_ 끝
옮긴이후기
리뷰
책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아직 죽음과 친숙하지 않았다. 아무튼 수용소의 죽음과는 친숙하지 않았다. 그의 언어, 그의 강박은 온통 죽음으로 절어 있었다. 그의 침착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들로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런 식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문제에 처하면 끝내 우리의 권리를 관철할 수 있을 거라고, 무엇보다도 ‘속수무책으로’ 동료가 죽는 것을 구경만 할 수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어둠을 뚫는 이 소리의 멜로디. 그것은 고요하고 지속적이다. 우리는 그 지붕 아래 있다. 자, 시작이다. 한 시간 전에 그들은 저곳에 있었다. 한 시간 후면 그들은 저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꿈을 꿔 본다. 초원에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한다. 비행기는 우리를 태우고 날아간다. 두 시간 후에 나는 우리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때 시각은 새벽 두 시일 것이다. 잠시 후 새벽 두 시, 내가 이곳에 있을 시각. 나는 저곳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여러 번 우리는 이런 계산을 해본다. 우리는 거리를 소멸시키는 모든 것, 거리는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정말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는 모든 것에 매달린다. 걸어서 닷새면 우리는 네덜란드에 도착하고, 걸어서 일주일이면 쾰른에 도착한다. 내 다리로 거리를 주파하고 이곳에 있는 그대로의 내가 단순히 두 발로 걸어서, 얼마간의 시간 안에, 아직도 나는 만일 비행기가 데려가 주었다면 새벽 두 시에 자신의 집 문을 두드렸을 바로 그가 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들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불태워도 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당 안에 갇혀 있어도, 밤은 우리 주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들 머리 위, 별들 또한 고요하다. 그러나 이 고요함, 이 부동성은 더 바람직한 진실의 정수도 상징도 아니다. 그것들은 최종적 무관심의 치욕스러움이다. 다른 어떤 밤보다도 그 밤은 끔찍했다. 성당의 벽과 친위대의 바라크 사이에 나는 홀로였고, 오줌에서는 김이 올라왔고, 나는 살아 있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다시 한 번 나는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렇게 어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 혼자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줌의 김 속에서, 허공 아래 공포와 싸우며, 그것은 행복이었다. 필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이 밤은 아름다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