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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94442325
· 쪽수 : 235쪽
· 출판일 : 2026-03-30
책 소개
이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시(詩) 작품 중 걸작만을 엄선해 엮었다. 전근대 지식인답게 다산은 시, 서, 화는 물론 각종 학문과 기예에 능했다. 심지어 다산은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역임한 정치가이자 거중기(擧重機)를 만든 과학자인 동시에 행정학·법학·의학·서지학·언어학 등 온갖 학문을 망라한 저서를 500권이나 쓴 학자이자 저술가였다. 이 경탄할 만한 업적과 나란하면서도 학문적 업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진정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다산의 시(詩)이다. 이 책은 시인 다산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산의 평생의 삶과 다산이 꿈꾼 세상이 오롯이 담긴 시만을 뽑아서 ‘시인 정약용’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중의적 의미가 담긴 ‘다산의 풍경’
‘다산의 풍경’은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전라남도 해남 강진의 지명인 다산 주변의 풍경이다. 그리고 ‘다산의 풍경’은 다산이 자신의 시에서 쓴바 “한평생 백성 걱정”으로 가득했던 다산이 바라보았던 민생(民生)의 풍경일 것이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선집에 실린 시들을 다산 내면의 풍경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의 시를 읽으면 다산의 처지가 애처로워 울게 되고, 다산이 바라본 백성의 삶이 아파서 울게 된다. 이 선집을 통해 다산이 본 조선 후기 민생의 풍경과 다산의 내면 풍경을 함께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
다산은 1762년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해당하는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다산이 10대와 20대에 쓴 시들을 보면 학문을 연마하여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풋풋한 포부가 드러나는 것이 많다. 다산은 15세 되던 1776년에 한 살 연상의 풍산 홍씨와 혼인했는데,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하기 전인 28세 이전까지는 경제적 어려움도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집에 먹을거리가 떨어지자 여종이 옆집의 호박을 훔쳐 온 일이 있었는데 아내가 종을 크게 꾸짖자 다산이 이를 무마한 일을 쓴 시가 있다.
어허, 아이는 죄 없으니 이제 그만 화 풀고
이 호박은 내 먹으리니 더 이상 말을 마오.
밭 주인한테 솔직히 얘기하는 게 낫지
오릉중자(於陵仲子)처럼 결벽한 건 싫다오.
나도 언젠간 출세할 날 있겠지만
그게 안 되면 가서 금광이나 파야지.
책 만 권을 읽는다고 아내가 배부르랴
이 경(頃)이면 아이종도 그런 일 안 할 텐데.
—「호박 훔친 종」 중에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는 다산의 무마에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지 못하는 자괴감이 보인다. 독서가 아내를 배불리지 못하니 출세길이 막히면 금광이라도 파야겠다는 자조 어린 탄식 속에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그즈음 다산의 심리가 읽힌다.
다산은 22세 되던 1783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정조를 알현하게 된다. 다산은 33세 되던 1794년 10월에 정조의 은밀한 명을 받고 경기 지역의 적성·마전·연천·삭녕 등을 돌아보는 암행어사가 되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산이 백성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연민과 안타까움은 더욱 구체적이고 절실한 것이 되었다.
냇가 부서진 집 바리때같이
북풍이 띠지붕 걷어가 서까래만 앙상.
오래된 재 위에 눈 쌓인 부뚜막은 썰렁하고
체 눈처럼 숭숭 뚫린 벽 틈으로 별빛이 비치네.
집안 살림 초라하기만 해
팔아도 일곱 푼이 안 되네.
삽살개 꼬리 같은 조 이삭 셋
닭 염통 같은 매운 산초 한 꼬챙이.
항아리 깨져 새는 곳은 베로 막았고
떨어지려는 시렁은 새끼줄로 묶었네.
놋숟가락은 접때 이장(里長)이 가져가고
무쇠솥은 오래잖아 이웃 부자가 앗아 갔지.
이불이라곤 다 해진 비단 이불 한 채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은 말이 안 되지.
구멍 난 저고리에 어깨 팔꿈치 드러낸 아이들
태어나 바지 버선은 걸쳐 보지도 못했지.
큰애는 다섯 살에 기병(騎兵)으로 등록되고
작은애는 세 살에 군적(軍籍)에 올라
두 아이 세금으로 오백 푼을 바쳤으니
어서 죽었으면 싶은데 옷과 신이 다 뭐람.
— 「시골집」 중에
인용한 부분은 적성 지방을 암행하다가 쓴 시의 첫머리로, 백성의 극심한 가난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뼈대만 남은 초가집은 며칠째 밥을 짓지 못해 부뚜막의 재 위에 눈이 쌓여 있고, 벽은 무너져 저녁이면 별이 훤히 보일 지경이다. 계절이 겨울인지라 추위 또한 극심한데 이불은 한 채뿐이고, 아이들은 굶주린
데다 옷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헐벗었다. 다산은 생존을 위협하는 이 가난의 원인을 관리와 땅을 가진 토호(土豪)들의 착취, 그리고 군정(軍政)의 문란으로 보았다. 관리와 토호는 돈이나 곡식은 물론이고 생존의 기본적인 도구인 솥과 숟가락까지 앗아갈 정도로 가혹한 착취를 일삼았다. 또 관아에서는 세 살배기 다섯 살배기 아이까지 군인의 명부에 올려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거두어 갔는데, 이것이 소위 군정의 문란이다. 조선 후기 경제의 혼란상을 설명하는 데 흔히 ‘삼정(三政)의 문란’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조선 후기 국가 재정의 기본이 되었던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의 세 조세제도가 상식 밖의 가혹한 수탈로 변질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이러한 참상을 목도한 다산은 암행어사의 소임을 다해 탐관오리들을 징치(懲治)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에 더욱 밀착하여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걱정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다산이 오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지속된다. 오랜 유배 생활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고달픈 것이었지만, 이 시기 동안 역설적으로 다산의 위대한 저작들이 많이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에 대한 다산의 관심과 이해도 그들 가까이에서 생활한 이 시기 동안 더욱 심화될 수 있었다. 유배지에서 쓴 시 가운데는 백성의 삶에 보다 밀착하여 그들의 애환을 그려 낸 시들이 많다.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아들들은 아버지인 다산을 가끔 방문하여 『주역』과 『예기』 등 경서를 배우기도 하고 함께 시를 짓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유배지까지 찾아올 수 없었기에 다산은 「아내에게」라는 시에서 “그리워 않노라, 그리워 않노라 슬픈 꿈속의 그 얼굴”이라 노래하며 절절한 그리움을 반어적으로 털어놓기도 하였다. 떨어져 있던 18년의 시간이 부부의 사랑을 더 깊게 했던 것일까. 다산의 아내 사랑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이 선집에 실린 마지막 시의 원제는 「회근시」(回巹詩)인데 ‘회근’이란 회혼(回婚)의 다른 말로 결혼 60주년을 의미한다. 실로 숱한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었던 두 사람의 사랑과 믿음이 “60년 풍상(風霜)의 바퀴 눈 깜짝할 새 굴러왔지만, 복사꽃 화사한 봄빛은 신혼 때와 같네”라는 구절 속에 잘 녹아 있거니와 다산은 공교롭게도 이 회혼일을 맞아 친지와 제자가 모두 모인 가운데 고단하고 위대했던 생을 평화롭게 마쳤다.
이 책의 구성: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본 다산의 시 세계
이 책은 다산의 시 세계를 여섯 개의 큰 주제로 나누었다. 이 선집에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른바 다산의 사회시(社會詩)나 애민시(愛民詩) 외에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시를 균형 있게 소개하였다.
1장 ‘세상을 향한 뜻’ - 세상에 대한 다산의 포부와 열정, 좌절과 실망이 드러난 시들을 수록했다.
2장 ‘오징어와 해오라비’ - 우화적인 어법으로 세태를 풍자하고 삶의 원리를 노래한 시들을 수록했다.
3장 ‘백성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 - 수탈당하는 백성들의 참상을 고발한 다산의 대표적 사회시들을 수록했다.
4장 ‘하늘 끝에 홀로 앉아’ - 유배지의 풍광과 풍속, 일상과 감정들을 읊은 시들을 수록했다.
5장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네’ - 감성적이고 함축적인 단편의 서정시들을 수록했다.
6장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며’ -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드러난 시들을 수록했다.
목차
간행사
책머리에
세상을 향한 뜻
금강산
입춘 단상
무등산에 올라
동림사에서
내 마음을 읊노라
서울을 떠나고 싶네
손자병법을 읽고
봄날에 글 읽다가
과거에 낙방하고
배 타고 소내로 돌아가며
임금을 뵙고서
승정원에서
숙직하는 날
과거 보는 선비들에게
파직되어
성호 선생을 기리며
퇴계 선생의 글을 읽고
나의 운명
근심에 잠 못 들고
노래로 근심을 푸노라
오징어와 해오라비
둥근 도낏자루는 모난 구멍에 끼울 수 없네
아름다운 난초
천리마
범고래
오징어와 해오라비
수선화
송충이
병든 쇠북
당귀를 캐다
고양이
승냥이와 이리
백성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
저물녘 광양에서
사공의 탄식
호박 훔친 종
시골집
장인과 기녀
굶주리는 백성
해녀
보리타작
스스로 거세한 사내를 슬퍼함
단비
소나무 없애는 승려
쑥
모를 뽑아 버리다
보리죽
하늘 끝에 홀로 앉아
사평의 이별
하담의 이별
홀로 앉아
담배
장맛비
마음
유배지의 여덟 취미
그리운 고향집
단옷날에 슬퍼서
살짝 취하여
칡을 캐다
백발
율정의 이별
탐진 나그네
모기
궁궐을 그리며
대를 심다
다산의 여덟 풍경
어버이 무덤가에서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네
가을밤
책을 판 뒤에
시름겨워도
그림에 쓰다
반딧불이
어촌 풍경
밤에 부용당에 앉아서
산속 깊은 집
흰 구름처럼
거문고
벗을 그리며
못가에서
작은 배를 타고
연꽃
산문을 나서며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며
마마
어린 아들
집에서 온 편지
어린 자식이 보낸 밤을 받고서
누에 치는 아내
아들에게
새해에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사무치는 소리
아내에게
8년 만에 아들을 만나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책속에서
아가는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 맑은 연못인 양 바다를 드나드네. / 엉덩이 들고 머리 박고 물로 쑥 들어가 / 오리처럼 아무렇지 않게 잔물결에 노니네. / 소용돌이 사라지고 사람도 안 보이고 / 박 하나만 둥실 물 위에 떠 있더니 / 물쥐처럼 홀연히 머리를 내밀고 / 휘파람 불며 휙하니 몸을 따라 구부리네. / 구멍이 아홉에 손바닥만한 깨끗한 소라는 / 귀한 양반 댁 부엌에서 술안주로 만드는데 / 어떨 땐 바위틈에 꽉 달라붙어 있어 / 캐려다간 솜씨 좋은 사람도 죽고 만다오. / 아아! 아가의 죽음에 무슨 말을 하겠나만 / 벼슬길 속물도 헤엄치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해녀」)
아버님 아시는지요 / 어머님 아시는지요? / 집안이 갑자기 쓰러져 /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지경입니다. / 남은 목숨 비록 부지한다 해도 / 몸은 슬프게도 이미 망가졌습니다. / 부모님 날 낳아 기뻐하시고 / 수고로이 안아 기르셨지요. / 하늘 같은 은혜 꼭 갚으렸더니 / 뜻밖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 세상 사람들에게 바라노니 / 자식 태어났다고 기뻐들 마오.(「하담의 이별」)
사나운 호랑이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 나는 드르렁 코골며 잘 수 있고 / 긴 뱀이 처마 끝에 매달려 있어도 / 누워서 꿈틀대는 것 볼 수 있지만 / 모기 한 마리 앵앵거리는 소리 귓가에 들리면 / 기겁하여 간담이 서늘하고 애가 탄다네. / 뾰족한 입을 박고 피를 빨면 그만이지 / 뼛속까지 독한 기운 넣는 건 어째서인가. / 면 이불 꽁꽁 덮고 이마만 내놓으면 / 금세 올록볼록 혹이 돋아 부처님 머리가 되고 / 내 뺨을 내가 쳐 봐도 헛손질이요 / 허벅지를 재빨리 때려도 이미 늦었네. / 열심히 싸워 봐야 소용없고 잠만 설치니 / 기나긴 여름밤이 일 년과 같구나. / 너는 안 보일 만치 작고 하잘것없으면서 / 왜 사람만 보면 그렇게 달려드는 거니? / 밤에 다니는 건 도둑한테 배운 거고 / 피를 먹는 건 옛날의 제사를 따르는 건지. / 그 옛날 규장각의 교서(校書)로 있을 때엔 / 그 앞에 청송(靑松)과 백학(白鶴)이 벌여 있었고 / 6월까지 파리도 날리지 않아 / 푸른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쓰르라미 소리 들었는데 /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자리 /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게 무슨 잘못이 있겠니.(「모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