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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76827906
· 쪽수 : 268쪽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1장 / 서론
1. 인민의 정체성 찾기
2. 행위하는 주권 인민과 신화로서 주권 인민
2장 / 인민과 그 역사
1. 로마에서의 서곡: 행위하는 인민
2. 예비적 권력으로서 인민: 그림자에서 실체로
3. 영국 내전에서 미국 혁명으로: 저항에 나선 영국 인민
4. 우리, 인민 : 미국 혁명과 그 중요성
5. 인민 주권과 19세기 영국의 의회 개혁
6. 인민 정부와 인민
결론
3장 / 우리 자신과 타자들: 인민, 민족, 인류
1. 인민과 민족
2. 인민-건설
3. 인민들과 사람들
4장 / 부분과 전체: 인민, 대중영합주의, 민주주의
1. 평민
2. 당대 자유민주정체들에 나타나는 대중영합주의
3. 대중영합주의의 정체성 찾기
4. 대중영합주의, 민주주의, 인민
5장 / 우리 주권 인민
1. 인민 주권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2. 인민 주권은 행사될 수 있는 것인가?
결론
6장 / 주권 인민의 신화
1. 인민의 신화들
2. 꾸며 낸 이야기로서 인민
3. 신화와 정치적 실재로서 인민
결론
7장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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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렉스 레기아라는 로마의 유산은 예비적 권위로서 인민이라는 입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예비적 권위는 지속적으로 현존하는 권력이라기보다는 비상시에 이끌어 낼 수 있는 원천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하게 인민에 의존했던 유형은 영국 내전과 미국 혁명 양자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경우 모두 애초에 다툼은 헌법률(constitutional law)의 문제로 이해됐다. 영국 내전의 경우엔 왕과 의회 각각의 권리와 관련이 되어 있었고, 미국 혁명의 경우엔 의회와 식민지들 각각의 권리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자 모두, 힘이 약했던 쪽이 인민 주권이란 기반에 서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던 발상들을 끌어내고 이를 확장시켰다. 미국인들은 영국 내전과 잇달아 일어난 1688~1689년 명예 혁명 과정에서 발전되었던 강력한 주장들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비록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미국인들이 이 발상들을 가지고 한 일이, 주권 인민에 대한 근대적 이해를 특징짓는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 내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 인민이 실제 정치 권위의 원천이라면 주권 인민이란 말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야 하고 인류와 동일한 범위의 것이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일상적 정치 담론에서 주권이 부여되거나 또는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동의가 요구되는 세력은 언제나 하나의 인민이다. 이 ‘하나의 인민’은 인민 일반(people in general)과는 어떻게든 구분된다. 그렇다면 하나의 인민을 정치적 목적들을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만 할까? 하나의 인민은 하나의 민족 혹은 하나의 인종문화 집단과 동등한 것일까? 하나의 인민은 민족적 혹은 인종문화적 고리와 단절되거나 혹은 이를 초월하는 다른 종류의 공동체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의 유대가 어떠하든 간에, 결속되고 배타적인 인민의 권리가 인민을 인류 일반이라 보는 주장과는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인민들’을 현존하는 국가들에 살고 있는 전체 인구들과 동등하게 여기는 정치 담론 내에서 종종 간과되어 왔다. 그러나 당대에 제기된 정치 문제들로 인해 이런 질문들을 무시하고 넘어가긴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경계들이 자칭 인민들[이라 부르는 세력]의 분리독립 주장 및 유럽연합 같은 초국가적 프로젝트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다. 동시에 급증하는 이주는 (민주적 권리와 정치 권위의 궁극적 원천을 보유한 이들로서) ‘우리 인민’(our people)과 이런 ‘우리 인민’에게 합류하길 원하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other people) 간에 놓인 경계들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민이라는 주제를 두고 내려온 고전적 유산은 이것저것 많이 뒤섞인 것이다. 우리는 2장에서 최고 권력으로서 포풀루스(the sovereign populus)에 대한 로마인들의 생각이 그 자체로 심오하면서도 모호한 형태로 전해 내려온 것임을 보았다. 그러나 혼란스럽지만 고원한 전체 정치 공동체로서 인민(people-as-whole political community)이라는 개념 곁엔 평민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17세기 영국에서 왕과 의회 간의 투쟁으로 인해 인민 주권이란 원칙의 중요성이 새로이 부각되었을 때, 이 원칙을 활용했던 이들은 스스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는데, 인민의 두 가지 측면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의 정치 공동체라는 좀더 영광스러운 외피를 두른 인민은 왕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데 적합해 보였다. 그러나 거대한 전체 주민 집단이란 두려운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신사 계급은 자신들이 전체 정치 공동체의 천부적인 대표자들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왕에 반대하여 인민 주권이 제기되자, 수평주의자들도 전체로서 인민이란 이름 아래 배제된 자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이 원칙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