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고전 읽기의 즐거움

고전 읽기의 즐거움

(한국고전산책)

박지원, 정약용, 강희맹 (지은이), 신승운, 박소동 (옮긴이)
솔출판사
8,8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로딩중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고전 읽기의 즐거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고전 읽기의 즐거움 (한국고전산책)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고전
· ISBN : 9788981337353
· 쪽수 : 246쪽
· 출판일 : 2004-11-29

책 소개

이 책은 「민족문화추진회보」의 '고전의 향기' 코너에 실렸던 글을 묶은 것이다. 강희맹, 박지원, 이규보, 이이, 정약용, 정철 등 한 시대를 살다 간 선조들의 지혜롭고 훈훈한 글 마흔일곱 편이 실렸다. 2004년에 새롭게 낸 개정판이다.

목차

서문을 대신하여
일러두기

제1부
자득의 묘 ㅣ 강희맹
낚싯바늘에 매달린 도 ㅣ 남구만
원망할 수 없는 비난 ㅣ 이시발
스스로 고치는 병 ㅣ 이이
마음을 지키는 이름 ㅣ 정약용
난하의 교훈 ㅣ 박지원
마르는 병 ㅣ 김석주
병귀와의 논쟁 ㅣ 오도일
분수를 지킨 도둑 ㅣ 권필
영리한 나무꾼 ㅣ 강희맹
너무 먹어도 탈 ㅣ 강항
혹 떼려다 혹 붙이기 ㅣ 강항
가래 때문에 두 눈 잃고 ㅣ 이상적
과음을 반성함 ㅣ 정철
밥과 술이 다른 까닭 ㅣ 남용익
한 삼태기의 흙 ㅣ 성현
경계해야 할 것들 ㅣ 이규보

제2부
쥐와 노는 고양이 ㅣ 최연
현자의 매 기르기 ㅣ 강재항
굽어야 좋은 재목감 ㅣ 장유
버려진 나무 ㅣ 홍우원
삼에 독이 든 이유 ㅣ 유계
공자와 나나니벌 ㅣ 신광한
둘이 하나가 된 뜻은 ㅣ 신광한
닭 이야기 ㅣ 이익
개 이야기 ㅣ 최자.권두인.김낙행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물건 ㅣ 안정복
이름없는 꽃 ㅣ 신경준

제3부
늙은 의원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ㅣ 이호민
솥뚜껑을 여는 묘수 ㅣ 고상안
늙은 말의 소원 ㅣ 홍우원
효자 왜가리 ㅣ 이선
아버지의 훈계 ㅣ 강희맹
책 속에 돈이 있으니 ㅣ 홍만종
사기당한 어린 종 ㅣ 유몽인
명지휘자 ㅣ 장유
시내 위에 평상을 걸쳐놓고 ㅣ 장현광
술 예찬 ㅣ 박윤묵

제4부
별난 관상술 ㅣ 이규보
흑과 백 ㅣ 홍우원
그물코에 얽힌 세상 이치 ㅣ 이건명
청나라와 왜국에 대한 견해 ㅣ 정범조
병객에게서 얻은 경계 세 가지 ㅣ 최충성
돌싸움 ㅣ 홍성민
뇌물 먹은 소 ㅣ 성현
명당설의 허실 ㅣ 김주신
시세와 기수에 관한 이야기 ㅣ 이현석

지은이 소개

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펼치기
정약용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조 때의 문신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 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76년 정조 즉위 호조좌랑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 보고 그 학문에 감동받았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가 되었고,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 교인이라 하여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고, 1799년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 신유교난 때 장기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저서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다산전서』 『아방강역고』 『마과회통』 『자찬묘지명』 『맹자요의』 『논어고금주』 『춘추고징』 『역학제언』 『상서지원록』 『주역심전』 『사례가식』 『상례사전』 『악서고존』 『상서고훈』 『매씨서평』 『모시강의』 『삼미자집』 등이 있다.
펼치기
강희맹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자는 경순, 호는 사숙재.국오.운송거사, 본관은 진주. 집현전직제학을 거쳐 이조판서, 좌찬성을 지냈다. 문장과 서화에 능했고, 문집 외에 <촌담해이>, <금양잡록> 등이 저서를 남겼다.
펼치기
신승운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성균관대학교 문헌정보학과(서지학) 및 동 대학원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 교수, 동아시아학술원장 겸 대동문화연구원장, 한국서지학회장, 한국고전번역학회장, 전통문화연구회 부회장 등 역임. 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분과위원장, 한국고전번역원장.
펼치기
박소동 (엮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난포蘭圃 서한봉徐漢奉 선생을 사사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및 상임연구부,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 · 편찬실장 · 교무처장, 한국고전번역원 한학교수, 성균관대학교 한문고전번역 석박사 통합과정 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고전번역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이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논문으로 「고전국역사업의 회고와 전망」, 「퇴계 사서석의四書釋義의 경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고전국역의 실제」, 「조선왕조의궤 번역의 현황과 과제」, 「예禮와 악무樂舞의 상호관련성」, 「한국 고전번역의 역사」가 있고, 역서로 『가례도감의궤』, 『친경·친잠의궤』, 『고종임인진연의궤』와 실록 등 다수의 공역서가 있다. 현재는 고향인 구례에서 향토사 자료를 정리하는 한편, 인문학 · 한학 강좌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누에는 고치를 만들고 고치 속에서는 번데기가 생겨나고 번데기는 다시 나방이 되며 나방이 교배한 후에는 알을 낳고 알에서는 다시 누에가 태어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다른 벌레를 유사하기 변화시킬 줄 아는 벌레는 오직 나나니벌뿐이란다."

"벌레는 벌레이니까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좋은 질문이구나. 공자는 추나라 사람의 자식으로 성자였고, 안회는 안로의 자식으로 현자였다. 그런데 고자는 남의 자식인 안회로 하여금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기와 유사하도록 하였으니 ,이것도 역시 변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이면서 사람을 변화시킨 일은 공자만이 할 수 있었다. 공자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남에게 변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