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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84316447
· 쪽수 : 268쪽
책 소개
목차
발간의 글 _‘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정출헌|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점필재연구소 소장)
머리말 _자연미의 시인이자 정치 논객, 극단적 대비로 가득한 윤선도의 삶 읽기
1장 고산의 진면목을 찾아서
남도 답사 일번지, 해남에서 보길도로|고산, 그 복합적 초상
2장 청년기의 삽화들
왜란이 발발, 그리고 작은아버지 댁으로의 입양|해남 윤씨 가문의 중흥자, 어초은 윤효정|호남 사림파의 거물, 귤정 윤구|생부와 양부, 두 아버지 슬하에서|‘고고한’ 청년기, 고산의 작품들|유학의 실천 지침, <소학>에 심취하다|고산의 학문적 개성, 박람강기|해남 땅과의 조우, 「남귀기행」
3장 정치적 노정, 그 상승과 하강의 파노라마
광해군 시대, 붕당의 소용돌이가 시작되다|「병진소」가 초래한 파란|유배지에서 시작된 시조와의 만남|해배의 권유를 물리치다|인조반정, 정계의 대반전|해배 이후의 방황|득의의 시절, 중앙 정계에 나아가다|좌천, 그리고 자연으로의 은거|호란의 발발과 경과|병자호란을 계기로 부용동을 발견하다|전란 후유증으로 인한 두 가지 스캔들|해배 후에 다가온 또 다른 슬픔
4장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 「산중신곡」
세상만사 온통 시름뿐!|하늘이 선사한 비경, 금쇄동|산림과 현실 사이의 동요, 「만흥」 여섯 수|산수시의 다양한 파노라마|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오우가」의 세계|「산중속신곡」, 그리고 몇 편의 여음
5장 부용동에서 꽃핀 강호미학의 정점, 「어부사시사」
환갑을 넘어서서|봉림대군, 왕위에 등극하다|「어부사시사」의 산실, 부용동 원림|「어부가」, 동아시아의 전통으로 자리하다|조선에 뿌리내린 「어부가」의 계보|현실은 끊임없는 미련이어라|참을 수 없는 흥취의 미학
6장 노년의 불꽃, 예송논쟁
다시 정계의 소용돌이 속으로|‘정개청 복권’을 둘러싼 회오리바람|효종의 죽음, 그리고 산릉 논쟁|제1차 예송논쟁|패배, 그리고 삼수로의 유배|해배,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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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대부분의 사대부들에게 시조는 단지 ‘시여(詩餘)’, 다시 말해 한시를 짓다가 남은 여흥으로 짓는 ‘하위 장르’에 불과했다. 그런데 고산은 이 양식에 한시에 비견될 만큼의 서정적 힘을 불어넣은 것이다. 요컨대 한시의 주변부를 떠돌던 시조 양식에 아름다운 서정의 호흡을 불어넣은 것, 이것이 고산이 고산이 된 이유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글은 분명 위대한 발명품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문이라는 ‘보편문어’에 맞서 실질적인 표현 형식이 되려면 감성과 담론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담론이야 중세가 해체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노릇이지만 감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한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시인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경우 시인이란 한글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삶의 현장과 연결시켜주는 전령사라 할 수 있다. 고산은 그 전령사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낸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산의 생애를 탐구하게 된 이유도 오직 거기에 있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시절이 아니라 정쟁에서 패배하여 유배지에서 고단한 일상을 보낼 때 시조가 산출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마지막 시조 작품인 「몽천요(夢天謠)」도 정쟁의 한가운데서 지어졌다는 점이다. 시작과 끝이 기묘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다소 도식적인 추측일지 모르나 어쩌면 그가 한시보다 시조에 더 특장을 보이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시란 모름지기 세계와의 심각한 불화 속에서 그 서정적 빛을 발하게 되는바, 고산은 바로 그 극한 상황에서 한시가 아니라 시조를 택했던 것이다. 자신의 정서적 심층을 드러내기에 시조가 더 적절하다고 여긴 것일까. 유배당한 정객과 시조라는 양식의 마주침! 이 또한 운명적 조우라 해도 좋으리라.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바다! 혹은 강호자연을 향해 던지는 은유의 그물망! 이것이야말로 「어부사시사」를 규정하는 가장 뚜렷한 미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바다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시인은 다만 그 바다를 향해 무심히 그물을 던졌을 뿐이다. 또 그 그물에는 싱싱한 언어들이 펄떡거리고 있었을 뿐이다.